박민선 Northwestern Memorial Hospital 유전상담사

가만히 있다가도 심장이 갑자기 100미터 전력 질주를 한 것처럼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식은땀이 흐르고, 갑자기 이러다가 죽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걱정이 떠오르며 참을 수 없이 괴롭다. 몇 달 전 고혈압 진단을 받고부터 간혹가다 이런 짧지만 지옥 같은 시간들이 찾아온다. 상담도 받기 시작했다.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간간이 즐거운 일들도 하며 잘 조절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기어이 공황장애가 오고 만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누가 봐도 이 환자는 일에 관련된 스트레스로 인해 공황장애에 걸린 환자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게 심리적인 요인이 아닌 종양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

실제로 얼마 전 우리 클리닉에 방문한 환자분의 이야기다. 고혈압이 생겼는데, 약물 치료나 생활 습관 개선으로도 잘 조절이 되지 않았고, 가만히 있다가도 심장이 두근거린다든지, 식은땀이 나곤 했다고 하셨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내분비학 의사분이 혈중 카테콜아민 수치를 재 봤더니 정상수치의 3~4배나 높은 수치가 나온 것이다. 그리고 CT를 찍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신장 위에 위치한 부신이라는 장기에 크롬 친화적 세포종(pheochromocytoma)으로 보이는 덩어리가 보였다. 곧바로 수술이 예약되었고, 환자는 부신적출술을 받았다.

크롬 친화적 세포종은 백만 명 중 2~8명 정도가 진단되는 꽤 희귀한 종양이다. 그렇지만 주로 양성인 경우가 많고, 악성인 경우는 약 10% 미만 정도로 흔하지 않다. 이 종양은 앞서 말한 것처럼 부신(adrenal gland)이라는 장기에 생길 수 있는 종양인데, 부신은 우리 몸에 카테콜아민(에피네프린 또는 아드레날린, 놀 에피네프린 또는 놀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는 장기이므로 종양이 생겼을 때 이 호르몬들을 과잉 생산하게 되곤 한다. 원래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신호를 받았을 때 카테콜아민을 생성하지만, 종양이 생기면 외부 요인이 없을 때도 생성을 하는 것이다. 때로는 카테콜아민이 과분비 되면서 혈압이 위험수치까지 올라갈 수 있고, 드물게는 심정지가 올 수 있기 때문에 조기진단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자료에 의하면 크롬 친화적 세포종의 25~30% 정도가 유전적 요인이 발견되고 있고, 그 중 제일 많은 케이스들이 Hereditary Paraganglioma Pheochromocytoma syndrome(HPGL-PCC)으로 인해 발병된다. 덜 흔하게는 본 히펠린다우 증후군(Von Hippel Lindau syndrome or VHL), 제2형 다발성 내분비 선종증(Multiple Endocrine Neoplasia type 2 or MEN2), 제1형 신경섬유용증 등이 요인으로 발견된다.

HPGL-PCC는 SDHA, SDHAF2, SDHB, SDHC, SDHD, MAX, TMEM127 유전자들에 병적 변이가 있을 때 발병되는 증후군이다. 그 중에서도 SDHB와 SDHD 유전 변이로 인해 일어나는 케이스들이 대략 절반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이 두 유전자와 관련된 HPGL-PCC는 또 특이한 점이 있는데, SDHB 유전 변이로 일어나는 케이스들은 주로 흉부, 복부, 그리고 골반 쪽에 부신경절종이 나타나게 되고, 안타깝게도 종양이 악성이 되는 케이스가 많다(30~90%). 그 때문에 부신경절종이 발견되었을 때 초기 발견이더라도 방사선치료나 주시 대기보다는 절제술이 권장되곤 한다. 그래서 학생 시절 HPGL-PCC에 대해 배울 때 SDHB 유전자는 'B as in bad'라고 외웠던 기억이 있다.

SDHD 유전자와 관련된 HPGL-PCC는 주로 두경부 쪽 부신경절종으로 나타나게 된다. 더 특이한 점은 SDHD 유전변이의 유전 양식인데, 그 유전 변이를 엄마에게 유전 받았느냐 아니면 아빠에게 유전 받았느냐에 따라 이 증후군이 발현되느냐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남자면 유전을 받고, 여자면 유전을 받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SDHD 유전 변이를 엄마에게서 물려받을 수도 있고, 아빠에게서 물려받을 수도 있지만, 아빠에게서 물려받았을 때에만 HPGL-PCC가 나타나게 된다. 정말 드물게 엄마에게서 물려받았는데도 질병이 나타난 케이스가 몇 케이스 발표된 적은 있지만, 거의 그런 경우는 없다고 보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SDHD 유전 변이는 간혹 몇 세대에 걸쳐서 유전되었는데도 발견이 되지 않다가(모계 유전이어서) 가족력이 없는 환자에게 발견되기도 한다. 그런 케이스들에서 부모님 검사를 해보면 백이면 백,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것을 알게 되곤 한다. 혹시나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두 분 다 검사를 받아보시라고 권장하긴 하지만. 그래서 SDHD는 'D as in dad'라고 외웠더란다. 

암 증후군들을 배울 때에 제일 어려웠던 증후군들이 HPGL-PCC처럼 신경 내분비 종양에 관련된 증후군이었는데, 환자분들께 “가족 중에 암에 걸리셨던 분이 있으신가요?”라고 물어봐서는 가족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해드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HPGL-PCC가 의심되는 환자분이 내원했을 때 가족분들 중 약물로도 조절이 잘 안되는 고혈압이 있으신 분이 있는지, 아무런 외부적 요인 없이도 투쟁 도피(fight or flight) 반응(심장이 두근거림, 식은땀이 흐름 등), 두경부 쪽 수술을 받으셨던 분이 없는지 등을 여쭤보면 의아해하시곤 한다. 본인은 유전적 암에 대한 진단을 받으러 왔는데 왜 암에 관련되지 않은 질문을 하느냐는 거다. 

신경 내분비 종양에 관련된 증후군들뿐만이 아니라 다른 암/종양 관련 증후군에서도 암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증상들이 보일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유전성 혈액 암 증후군에서 폐섬유증(pulmonary fibrosis)이 나타나는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이런 증후군들에 대한 교육이 더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많은 환자분들이 필요한 의학적 평가와 진단을 받을 수 있을 테니.

유전적 암 증후군에 대한 지식이 늘어나면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이 묵은 학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몸소 느낀다. 환자분들께 더 정확한 지식을 알려드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을 검토하고, 내가 전에 알던 것과 상반되는 것이더라도 명확한 증거가 있다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유전 상담학 석사과정 입학 면접을 보러 다닐 때 나는 이 분야를 선택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배움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꼽았었다.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피부로 깨닫는 요즘 벅차기도 하다가도 그때를 생각하면 참 감사하단 마음이 든다.

박민선 유전상담사
박민선 유전상담사

박민선 유전상담사는 시카고에 위치한 Northwestern University 대학원의 유전상담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18년 미국 유전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졸업 후 같은 지역의 Northwestern Memorial Hospital에서 암 유전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Northwestern University의 faculty로서 유전상담 석사과정 입학 심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유전상담 석사과정 학생들 실습과 논문 지도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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