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선 Northwestern Memorial Hospital 유전상담사

암 유전상담사로 일하면서 마음이 아픈 일들이 더러 생기곤 하는데, 그 중 하나는 내가 전에 만났던 환자분이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되었을 때다. 

3년 전, 한 부부를 만났었다. 아내분이 췌장암 말기이셨고, 이 부부의 슬하에는 딸이 한 명 있었다. 임상 실험에 참여해 항암 치료를 받고 계셨지만, 이미 암이 온몸에 퍼진 상태라 완치의 희망은 하나도 남지 않았었고, 유전상담과 유전 검사는 딸을 위해 진행을 하고 싶다고 하셨었다. 

상담이 끝난 후, 다음 항암 치료 때 혈액 샘플을 채취하는 것으로 정하고 돌아가셨는데,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지시면서 그마저도 진행을 할 수 없게 되셨다. 결국 몇 주 후 상태가 조금 나아지신 후 다시 클리닉을 방문하셔서 면봉으로 볼 안쪽을 닦아내는 방법으로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다. 

지금 우리 클리닉에서는 환자분들 상담을 모두 비대면으로 진행하고 있지만, 코로나 이전에는 대면으로 진행이 되었었다. 이 환자분을 만났을 때는 2019년 초로, 그 부부를 만났던 두번 모두 대면으로 만났었다. 처음 오셨을 때는 마음이 많이 안 좋아 보이시고 낯빛이 안 좋으시긴 했지만, 그래도 암 환자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두 번째 오셨을 때는 정말 몰라보게 수척해지고 앙상했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두번 밖에 만나지 않은 생판 남인 나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옆에 계시던 남편분의 마음은 어땠을까 상상도 가지 않았다. 

췌장암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15개의 유전자에 대해 검사가 진행이 되었고, 결과는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 결과를 알려드리기 위해 전화를 했을 때에는 남편분이 전화를 받으셨고, 남편분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환자분의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시구나. 결과가 음성이라는 말 이외에 내가 하는 다른 말들이 전해지고 있을까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고 있다면 그 어떤 말도 마음에 와닿지 않을 것 같았다. 

이 환자분의 경우처럼 예후가 좋지 않은 말기 암 환자분들을 만나면 DNA 뱅킹을 권장 드리곤 한다. DNA 뱅킹이란, 어떤 이유에서든 나중에 유전 검사에 쓰기 위해 혈액이나 침 샘플에서 채취한 DNA를 오랜 기간 보관해 두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서 뱅킹을 할 때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유전자 검사를 몇 년 후 진행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이 환자분에게도 DNA 뱅킹에 대하여 처음 만났을 때 말씀을 드렸었고, 결과를 전하면서도 다시 한번 말씀을 드렸었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관심을 보이셨지만, 결과를 전할 때에는 생각을 해볼 여유조차 없으신 것 같았다. 얼마 후 환자분의 차트를 확인해 보았더니 돌아가신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결과에 대한 통화가 그 부부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몇 주 전까지는. 

몇 주 전, 남편분이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셨다. 돌아가신 환자분의 오빠께서 최근 유전자 검사를 받으셨는데, SDHC라는 유전자에 병적 변이가 발견되었다(SDHC 유전자에 대해서는 추후 더 다루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SDHC는 췌장암과는 연관이 없는 것으로 지금까지는 알려져 있고, 환자분의 유전검사에 포함되지 않았었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환자분이 이 병적 변이를 가졌는지 검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따님이 이 병적 변이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25%이며 SDHC 유전자와 관련된 질병은 많은 다른 암 유전병과 달리 어린 나이부터 검진이 권고되고 있기 때문에 따님이 검사를 받기를 추천드린다고도 말씀드렸다. 

남편분은 머뭇거리시며 할 수 있다면 딸에게 더 이상의 짐을 지워주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혹, 전에 검사를 했던 샘플로 다시 검사를 해볼 수 없겠냐고 물어보셨다. 아빠로서 딸이 엄마를 잃는 것에서는 지켜주지 못했지만, 이것 만큼은 해주고 싶으신 것 같은 마음이 깊이 전해졌다. 나도 가능하다면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DNA 뱅킹을 해 두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잠시 생각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환자분이 검사를 받으신 지 이미 3년이나 넘었기 때문에 아마 전에 유전검사에 사용되었던 샘플로는 검사를 더 진행할 수 없을 거라 말씀을 드렸었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유전 검사를 진행했던 시험소에 연락해 보겠다 말씀을 드리고 연락을 돌려보았다. 근데 이게 웬걸! 기적적으로 검사가 가능할 것 같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검사는 가능했고, 환자분 샘플에서도 같은 병적 변이가 발견이 되어 환자분의 딸도 검사를 진행하도록 권고해 드렸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 드릴 수 있었던 것 같아 감사했다.      

가끔씩 생각이 나던 환자분의 케이스를 다시 한번 열어보면서, 이번에는 기적적으로 DNA 뱅킹이 없었음에도 추가 검사가 진행이 가능했지만, 만약 가능하지 않았더라면 남편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죽어가는 아내를 보면서 DNA 뱅킹이라는 옵션이 어떻게 보였을까도 한번 가늠을 해보았다. 모두 부질없이 느껴지지 않았을까? 감히 상상해 볼 수 도 없는 마음인 것 같다. 의학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고민을 해볼 것도 없이 좋은 옵션이라고 생각이 되겠지만, 가족의 생사의 문제에서는 감정적인 면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물론, DNA 뱅킹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게 느껴지지 않는 옵션일 수도 있고, 이 부분도 잘 고려해서 말씀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또 이 부부와 같은 환자를 만나게 되면 어떻게 상담을 해 드려야 그분에게 유익한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될지 고민해 본다. 

박민선 유전상담사
박민선 유전상담사

박민선 유전상담사는 시카고에 위치한 Northwestern University 대학원의 유전상담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18년 미국 유전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졸업 후 같은 지역의 Northwestern Memorial Hospital에서 암 유전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Northwestern University의 faculty로서 유전상담 석사과정 입학 심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유전상담 석사과정 학생들 실습과 논문 지도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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