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선 Northwestern Memorial Hospital 유전상담사

며칠 전, 유방암 클리닉에서 젊은 환자분을 만났다. 33살에 많이 어린 나이인데다가 1살배기 딸이 있으시다고 했다. 처음 인사말을 나눌 때에는 밝은 얼굴로 인사를 나누어서 암 진단을 받으셨는데도 굉장히 씩씩하시구나 생각했는데,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시고, 눈물까지 보이시는 거다. 그럼 그렇지, 어린 나이에 13개월짜리 딸이 있는데 암 진단을 받으면 당연히 막막하시겠지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얘기를 하다 보니, 자녀를 적어도 한 명은 더 낳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항암 치료를 시작하기 전 인공 수정을 위해 생산력 보존 치료(Fertility perservation)를 하시려고 한다 하셨다. 그런데 남편과 결혼을 하기 전, 환자분과 남편분이 둘 다 아슈케나지 유대인(Ashkenazi Jewish)이기 때문에 유전 검사를 받았고, 결과가 음성이 나왔었다고, 그래서 암에 관련된 검사도 다 음성인 줄 알았다고. 그 음성 결과만 굳게 믿고, 우리는 아무 일도 없겠구나 했는데 덜컥 암에 걸리신 거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미국에서는 요즘 들어 더 많은 사람들이 임신을 계획하는 중에 유전 검사를 받게 된다. 이 유전 검사는 'carrier screening'이라고 불리는 보인자 검사인데, 보인자일 때 본인에게는 질환이 발병하진 않지만(보인자에게도 약한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들도 있긴 하지만) 자녀에게 그 유전 변이를 물려줄 수 있고, 배우자가 같은 질환의 보인자일 경우에 ¼ 또는 25% 확률로 자녀가 그 질환에 걸릴 수 있는 질환들이 있어 임신 전 받곤 한다.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은 특히 이 검사를 많이 받는데, 이 환자분처럼 결혼하기 전에 진행하시는 분들도 많다. 그 이유인즉슨, 이 특정한 유대인들 중 같은 질환의 보인자인 경우가 더 흔하기 때문이다. 

환자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보인자 검사를 한 것을 암 유전 검사도 함께 했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물론 유전 검사가 음성이라고 해서 암에 걸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렇게 어린 나이에 암이 걸릴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셨으리라. 이 환자분이 느끼는 감정은 거의 사기를 당한 듯한 배신감인 것 같았다. 그러고는 본인이 BRCA1 또는 BRCA2 유전 변이 보인자임에 확실하다고 믿으시는 듯 보였다(BRCA1과 BRCA2 유전자에 아슈케나지 유대인에 흔한 변이가 각각 2개, 1개씩 있다). 

이 환자분 뿐만 아니라 많은 환자분들이 내원해 주실 때 “혹시 전에 암 유전 검사를 해보신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예”라고 적으셔서 검사지를 받아 보면 보인자 검사한 결과지를 보내주시는 경우가 더러 있다. 혹은 암 유전 검사를 진행하는데, '이 검사를 하면 건강에 대한 모든 정보가 나오나요?'라며 심장 질환, 신경성 질환 등 건강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 어떤 환자분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유전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면 무적의 방패 같이 생각하시는 것 같다. 유전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으니까 이제 암에 걸릴 리가 없다는 듯이. 

확실히 유전적인 의학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헷갈릴 수 있는 부분일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검사를 진행하기 전 검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진행하게 되는 유전 검사가 어떤 질환에 대해 검사를 하는 것이고, 이 검사를 통해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그리고 음성이 나왔을 때엔 그게 무슨 의미인지. 

검사 후 상담 또한 무척이나 중요하다. 검사 전에 설명을 자세히 드린다고 해도 논의되는 정보의 양이 많고, 또 이 어려운 정보들을 한번 듣고 모두 다 기억하시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검사 후에 다시 한번 검사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 그래서 이 결과가 앞으로 환자분의 건강 검진 또는 치료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를 상담 드려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며칠 전 만난 환자분 같은 케이스가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박민선 유전상담사
박민선 유전상담사

박민선 유전상담사는 시카고에 위치한 Northwestern University 대학원의 유전상담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18년 미국 유전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졸업 후 같은 지역의 Northwestern Memorial Hospital에서 암 유전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Northwestern University의 faculty로서 유전상담 석사과정 입학 심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유전상담 석사과정 학생들 실습과 논문 지도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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