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과대학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유한욱

희귀질환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면 자주 경험하게 되는 것이 유전자검사에 대한 큰 기대감과 때로는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실망감들이다. 이는 환자는 물론 의료진의 입장에서도 그러하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질까? 이는 아마도 유전자검사를 최첨단의 기술을 이용하는 만능의 요술지팡이로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유전자검사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물론 매우 많은 희귀질환들이 유전적인 원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최종적인 확진에는 유전자검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학문적으로나 법적으로 정의되어 있는 넓은 의미의 유전자검사란 단백질을 분석하는 생화학적 검사(예: 선천성 대사질환검사, 산모혈청 단백검사)와 염색체의 수와 큰 구조적 이상을 검사하는 일반적인 염색체 검사, 염색체의 미세한 구조적 이상을 검사하는 염색체 마이크로 어레이, 형광제자리교잡 등이 있다. 또한 DNA 서열 자체를 분석하는 DNA 검사, DNA의 전사산물인 RNA 검사 모두가 유전자 검사에 포함된다. 좁은 의미로는 염색체 검사와 DNA 검사로 나눌 수 있다.

비유를 들자면 염색체는 도서관의 서가에 해당하고 서가에 진열되어 있는 책은 유전자라 할 수 있다. 책의 내용을 설명하는 글자는 DNA 염기서열이라 할 수 있다. 

23쌍, 46개 서가의 크기는 서로 다르고 각 서가에 진열되어 있는 책의 수도 서로 다르다. 물론 책의 두께도 각각 다르다. 일반적인 염색체 검사란 서가의 숫자가 맞는지, 서가에 큰 손상은 없는지 확인하는 기본적인 검사이다. 최근 들어 흔히 사용되고 있는 마이크로 어레이 검사란 서가에 진열된 책들의 배열이 옳게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염기서열분석법(DNA sequencing)은 서가에 배열된 책을 꺼내어 잘못된 글자가 있는지, 책장이 제본은 잘 되어 있는지 보는 검사이다. 책 한 권을 콕 집어 검사를 할 수도 있고 여러 권의 책을 한꺼번에 검사할 수도 있다. 심지어는 서가에 배열된 전체 책을 검사할 수 있다. 이는 2000년대 중반부터 개발된 차세대 염기서열분석법 때문이다 

유전자검사는 검사 목적에 따라 질병진단(출생 전 및 출생 후), 보인자 진단, 질병 감수성 및 소인 유전자검사, 약물반응에 대한 유전자검사, 개인식별 유전자검사 등으로 나뉜다. 또한 대부분의 유전자검사는 의료진에 의해서 검사가 의뢰 되어야 하지만 어떤 검사(친자감별, 카페인에 대한 감수성, 모발 굵기 등)는 소비자가 의료진을 거치지 않고 직접 검사를 요청할 수 있다. 이를 소비자직접의뢰(Direct to Consumer, DTC) 유전자검사라고 한다.

유전자검사가 임상진료에 편입되어 연구목적이 아닌 진단목적으로 일정한 비용을 환자가 지불하고 행해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검사가 얼마나 기술적으로 오류가 없는가(정확한가) 하는 ‘분석적 타당성’, 검사결과가 양성 또는 음성으로 나왔을 때 정말로 환자일 확률, 또는 아닐 확률이 얼마인가 하는 임“상적 타당성’, 그리고 검사결과에 근거하여 얼마나 환자의 건강(치료, 예방 등)을 개선시킬 수 있는가 하는 ‘임상적 유용성’이다. 

이와 같이 유전자검사 기법이 다양하기 때문에 의료진은 특정 환자에서 어떤 검사를 의뢰할 것 인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설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해석에 어려움을 겪는다. 종종 필자에게도 환자들이 유전자검사 결과지를 가지고 방문한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병과 연관이 있다는 것인지, 없다는 것인지) 알고 싶다는 것이다. 많은 비용을 지불했는데 검사를 의뢰했던 의료진도 설명을 제대로 못해준다는 불만과 함께. 난감한 일이다. 

유전체 검사방법의 발전에 따라 유전자검사는 많은 데이터를 생성하게 된다. 즉 너무 많은 정보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발견된 유전체 변이의 등급은 여러가지를 고려해 결정된다. 이는 생물정보학적 기술의 도움을 받는다. 등급은 ‘병의 확실한 원인(pathogenic)’, ‘병의 원인일 가능성이 큼(likely pathogenic)’, ‘의미가 불분명함(variant of uncertain significance; VUS)’, ‘병의 원인이 아닐 가능성이 큰 양성 변이(likely benign)’, ‘확실히 병의 원인이 아닌 양성 변이(benign)’로 나뉜다. 얼마나 자세하게 환자를 진찰하고, 얼마나 충분한 임상정보를 가지고 검사를 의뢰했냐에 따라 진단할 확률이 달라진다. 최근 사용하는 차세대염기서열 분석법으로 검사할 때 최대 30~50% 정도의 양성률을 보인다고 한다.

이렇게 복잡한 유전자 검사를 받기 전에 반드시 동의서를 잘 읽고 본인이 직접 서명해야 한다. 18세 미만의 아동도 소아용에 서명하고, 보호자 서명도 필요하다. 유전자 검사결과는 소중한 개인정보임으로 보안도 중요하다. 유전자 검사를 받기 전과 유전자 검사 결과를 받은 후에 반드시 유전상담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검사방법과 결과의 의미를 이해하고 본인과 자녀 및 다른 가족 구성원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의료진 본인도 잘 이해하지 못 하는데, 하물며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정보를 옳게 전달할 수 있을까? 교과서에서는 중학교 2학년 정도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소통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환자는 물론, 의료진들 조차도 ‘유전학 문맹률(Genetic Illiteracy)’이 높은 것 같다. 외국의 유전학관련 학회에서는 매년 ‘의학유전학 알기(Medical Genetics Awareness)’ 주간을 설정하고 여러 행사들을 한다. 우리도 필요하지 않을까. 

분당차여성병원 유한욱 교수
분당차여성병원 유한욱 교수

유한욱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 마운트 시나이병원 유태인 유전학센터에서 연수한 뒤 미국의학유전학전문의를 취득했다.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클리닉 소장을 거쳐 소아청소년병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대한소아내분비학회장, 대한의학유전학회 이사장, 복지부 선천성기형 및 유전질환 유전체연구센터장, 진흥원 희귀난치병정복사업 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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