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과대학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유한욱 교수

소아청소년과 의사 중에서도 내분비 및 대사질환을 전공하는 의사들에게는 아이들의 방학기간이 제일 바쁘다. 한참 자라나는 아이들이 무슨 병이 그렇게 많아서 병원을 많이 방문하나 의아해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방문 이유는 아이가 너무 작아서라든지, 키를 좀 크게 해 달라든지, 우리 아이가 다 크면 키가 얼마나 될 것 같은지에 대한 것들이다. 그러나 부모의 손에 이끌려 방문하는 아이들이 실제로 저신장(키가 같은 연령, 같은 성별의 아이들 100명 중 3번째 이하)인 경우는 많지 않고 특별한 병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키는 매우 많은 유전자들의, 각각의 영향도는 아주 작은 다양한 변이의 합에 의한 유전적인 영향과 환경적 영향을 받는다. 인종과 시대적 환경에 따라 성인의 키는 차이가 있고 변화해 왔다. 키에 대한 관심과 큰 키에 대한 열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보편적 관심사였던 것 같다. 성서에도 예수는 누가 근심함으로 자기 키를 한 자라도 더 크게 하겠느냐 했는데, 사실 유태인들의 평균 성인 신장은 조금 작은 편에 속해서 키에 대한 관심이 많아 이런 비유를 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중국 시안의 진시황 능을 지키는 병마용 군사의 키가 184~197cm라고 한다. 이 당시(기원전 약 250년경) 중국인의 키는 이보다 훨씬 작았으나 크게 보이게 하여 외부 침입자에게 겁을 주기 위했다는 설이 있다.

지난 수 십 년간 한국인의 평균 성인의 키도 계속 커져왔으나 지난 10년간은 체중만 늘고 키는 변화가 없다. 이는 역설적으로 키가 잘 자라는데 필수적인 영양섭취 등 여러 환경적 여건이 이미 충족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탈북한 분들의 남녀 성인의 키가 우리나라 성인의 키보다 각각 9cm, 7cm 작았다는 보고도 있다. 이는 북한의 여러 사회경제적 여건이 자기의 타고난 유전적 소질 만큼의 키에 다다르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하지만 환경(영양)이 아무리 개선되어도 키가 잘 자라지 않는 무수한 희귀질환들이 있다. 필자는 진료실에서 키가 지나치게 작거나 부모님의 키는 매우 큰데 키가 작은 아이를 마주할 때는 혹시 매우 희귀한 유전질환 때문에 아이가 작은 것은 아닌지 긴장하게 된다. 먼저 아이의 출생시 체중, 부모님의 키, 아이의 현재 키, 머리둘레, 상체와 하체의 비율, 동반된 다른 기형, 얼굴 모습의 이상, 지적장애 유무 등을 자세히 물어보고, 주의 깊게 진찰한다.

이에 현재 약물치료가 가능하고 비교적 흔한 질환들을 중심으로 2회에 걸쳐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여자에게서만 발생하는 터너증후군이 있다. 여자의 2,000-2,500명당 1명의 유병률을 보이니 아주 드문 질환은 아니다. 원인은 여성 성염색체 X가 한개 밖에 없거나 두개가 있더라도 한개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 또는 정상/비정상 염색체와 섞여 있는 모자이시즘 등이다. 임상증상은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심한 경우는 임신시에 초음파상 태아의 목 부분 덧살이 두꺼워서 태아기에 산전진단으로 진단되기도 하고, 경미한 경우는 모르고 살다가 결혼해서 임신이 잘 안되어 검사하다가 발견되기도 한다. 반수 이상이 사춘기 이후에 진단된다. 키가 매우 작은 여자아이에게는, 특히 사춘기가 지연되는 아이에게는 간단한 염색체 검사를 반드시 권유한다.

터너증후군은 단순히 키가 작은 것(치료를 안 할 경우 국내 보고는 최종신장이 137~140cm)만이 문제가 아니다. 여러 기형(심혈관계, 신장계)들이 동반되고 내분비계 이상(당뇨병, 갑상선염, 골다공증)이라든지, 자가면역질환, 청력장애가 동반되어 성인기에도 잘 관리되지 않으면 삶의 질이 떨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환자는 인지기능에 문제가 없어서 매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가임 능력도 천차만별이다. 드물게 자연임신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특별한 방법으로 가임력을 보존하지 않으면 임신은 어렵다. 성장호르몬 치료는 일반적으로 최종키를 약 7~8cm 크게 할 수 있다. 일찍 진단하여 장기간 투여할 수록, 부모님 키가 클수록 최종 키가 더 커진다. 만 11세 정도가 되어서도 이차성징이 없으면(대개는 사춘기가 시작되지 않는다.) 여성 호르몬 제제를 함께 투여하게 된다.

다음으로는 남녀 모두에서 발생하는 누난증후군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질환 역시 비교적 흔한 질환으로 보고에 따르면 1,000~2,500명당 1명의 빈도로 유병률을 보인다. 이 질환은 1960년대 후반에 누난(Jacqueline Noonan) 박사에 의해서 처음 보고됐다. 터너증후군의 모습을 보이나 염색체 검사는 정상인 아이들이었다. 누난 박사의 제자가 이후에 이 질환을 누난증후군으로 명명했다.

필자도 수년전에 80대 후반의 누난 박사를 국내로 초청하여 심포지움을 개최한 바 있다. 단아한 키에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소아심장전문의사로서 연세가 80대 후반인데도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2년전 91세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론이 길었다. 누난증후군은 목이 짧고 넓은 어깨가 마치 물갈퀴 모양인 익상경을 보인다. 저신장(출생 후 성장지연), 짧은 목(익상경), 처진 눈꺼풀, 흉곽모양의 이상(윗쪽은 오목하고 아래 쪽은 움푹 파인 가슴뼈), 폐동맥 협착증 또는 비후성 심근병, 잠복고환, 지속되는 안과적 문제 등의 특징을 나타내는 상염색체 우성 유전질환이다. 상염색체 우성유전이라는 말은 환자가 다음 세대에도 질환을 물려줄 확률이 남녀 상관없이 50%임을 의미한다. 임상증상의 경중은 개인마다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다행히 일부 환자에서만 학습장애, 발달장애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유전형에 따라 다르다. 증상이 경미하여 모르고 지내는 사람도 많다고 여겨진다.

진단은 특징적인 진찰소견들을 점수화 하여서 특정 점수 이상이면 진단할 수 있다. 임상적인 소견에 근거를 둔 진단이다. 누난증후군이 처음 보고된 후 35여년이 지난 2000년 대 초반 처음으로 이 질환의 유전적 배경이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는 15개 이상의 서로 다른 유전자의 이상이 누난증후군을 초래한다고 알려져 있다. 유전자 진단이 가능하나 아직도 25%의 경우는 그 유전학적 배경을 모르는 상태이다. 대부분 출생 시의 체중과 키가 정상이나 생후 첫 2년 동안 잘 안 먹고 성장이 지연된다. 사춘기도 지연되어서 저신장이 50~70%에서 동반된다. 성장호르몬 치료로 최종신장이 개선되기도 하지만 개인 차이가 크다. 치료하지 않은 누난증후군 성인 남자의 평균 신장은 160cm 초반, 여자의 평균 신장은 150cm 내외가 된다고 알려져 있다. 장기간의 성장호르몬 투여는 최종신장을 5~8cm 정도 개선시킬 수 있다.

언급한 두 질환은 산정특례라는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질환들이다. 성장호르몬 투여비용은 남자의 경우 165cm가 될 때까지, 여자의 경우 153cm가 될 때까지만 보헙급여가 가능하다. 이후에는 자기부담으로 치료받아야 하는 것이 환자들의 불만이나 제한된 의료재정을 효율적으로 분배하여야 하는 정부의 고충도 이해할 만하다.

분당차병원 유한욱 교수
분당차병원 유한욱 교수

유한욱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 마운트 시나이병원 유태인 유전학센터에서 연수한 뒤 미국의학유전학전문의를 취득했다.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클리닉 소장을 거쳐 소아청소년병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대한소아내분비학회장, 대한의학유전학회 이사장, 복지부 선천성기형 및 유전질환 유전체연구센터장, 진흥원 희귀난치병정복사업 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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