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과대학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유한욱

지난 ‘떼려야 뗄 수 없는 희귀질환과 유전자검사’에서는 유전체 검사의 종류, 정의, 임상적으로 사용되기 위한 유전체 검사의 조건들을 살펴봤다. 이번에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이나 염색체 마이크로어레이 방법으로 검사를 해서 얻은 결과들의 의미를 정확히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루어 보고자 한다. 

한 개의 유전자가 잘못되어 발생하는 단일유전자 질환(single gene disorder)은 약 7,000여종으로, 이들은 거의 희귀질환이다. 약 5,000개에 이르는 유전자들의 이상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유전자를 담고 있는 염색체의 미세한 결실이나 중복 질환도 그 수가 적지 않다. 임상의사가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증후군성 염색체 미세결실, 중복 질환도 50여종이나 된다. 그러나 최근 염색체 마이크로어레이가 활발히 사용되면서 그 질환의 종류가 급속히 늘고 있다. 

먼저 단일유전자 이상에 의한 희귀질환의 유전자 진단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희귀질환 환자들은 정확한 진단을 위해 수년간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진료와 수많은 검사를 한다. 이를 ‘진단을 위한 방랑(diagnostic Odyssey)’이라 한다. 

십여 년 전부터 유전체 분석방법이 발전하고 보편화 되면서 이 방랑여행도 단축되는 경향이다. 왜냐하면 임상의사들이 손쉽게 유전자 분석을 의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많은 유전자 검사의 급여화와 여러 연구과제에서 희귀질환 환자들을 위한 유전자 검사를 연구목적으로 무료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아무리 희귀한 질환이라도 정확한 진단을 할 수가 있다. 이런 경우는 이미 그 질환에 관한 여러 데이터(임상증상, 유전자의 돌연변이 양상)들이 축적되고 공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희귀질환의 진단이 질환의 자세한 임상양상의 기술에서부터 시작되었다면(phenotype-driven) 지금은 유전자의 이상을 먼저 알아내고(genotype-driven) 환자로 되돌아가서 맞추어 보는 형국이 된 것이다(reverse phenotyping). 

그러나 더 많은 경우는 결과가 음성이거나, 무엇인가 결과가 나왔는데 임상적 해석이 어려워서, 발견된 이상이 병의 원인인지 아닌지 잘 모르기도 한다. 일부 유전자군을 분석하는 패널검사에서는 물론이고, 특히 전체 유전체를 분석하는 전장엑솜, 전장지놈 검사를 했을 때 그러하다. 이들은 외국의 경우에는 이미 임상검사로 보편화 되어 있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연구검사로만 제공이 가능하다. 전장엑솜검사를 하면 수 만개의, 전장지놈검사를 하면 수 백만개의 염기서열 변이가 발견된다. 어느 것이 질병의 원인이 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여러 알고리즘을 이용한 생물정보학적 분석, 인공지능을 위한 분석기법 등을 사용하여 검사실에서는 기계적으로 보고한다. 이 유전자 검사 보고서에 근거하여 임상적 결정을 해야 하는 임상가는 보고서의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염색체 마이크로어레이 검사결과 해석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잘 알려진 증후군성 염색체 미세결실, 중복 증후군 등은 해석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아주 희귀한 이상의 경우에는 문헌보고나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되어 있는지도 알아보아야 하고, 부모 검사도 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정말 병의 원인이라고 할 만한 염색체의 미세결실 또는 중복이 있어도 어떤 사람은 증상이 나타나고 어떤 사람은 정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질환들이 많다. 이를 질환의 투과성(penetrance)이라 하는데 이러한 질환들의 종류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질환마다 다른 투과성이 상담을 더 어렵게 한다. 질환자체가 증가한다기 보다는 검사를 많이 시행함으로 새로운 염색체 미세결실 또는 중복질환들에 대한 인지도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은 우성방식으로 유전되어 다음세대에서도 50%가 동일한 문제를 발생시킬 위험성이 있다. 이런 상황이 산전진단에서 발생한다면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의사나 환자는 모두 패닉에 빠지게 된다. 

희귀질환 환자나 보호자는 다시 방랑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 묶음의 진료기록과 깨알 같이 적힌 분석한 유전자들의 명단과 복잡한 영어로 되어 있는 결과들이 나열되어 있는 검사보고서를 들고서 인터넷에 물어 물어 소위 전문가라는 의사들에게로 다시 진료받기 위해 전전한다. 다시 ‘유전자검사해석을 위한 방랑’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의사의 입장에서도 사실 속으로는 엄청 짜증이 난다고들 한다. 특히 유명한 의사로서 많은 환자를 보는 분이라면 더욱 그러하리라. 짧은 시간에 진료기록과 검사보고서를 리뷰해야 하고 여러 데이터와 문헌 검색도 해야 하고 환자의 병력과 가족력도 물어보고 진찰도 하고, 잘못하면 해석의 법적책임도 짊어져야 하고…. 정말 복잡하고 너무 희귀한 질환이라면 반나절도 모자라다.

그러나 달랑 초진 진료비 정도 받는다면 병원 경영자 입장에서는 진료실 문닫으라고 할지 모른다. 물론 심층진료비라는 것을 책정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수가인 것은 사실이다. 임상의사, 검사실 의사, 유전상담사가 원팀으로 유전체 분석 전과 후에 정확한 상담을 하고 이를 현실적으로 수가에 반영하는 방법밖에는 대안이 없다. 외국의 경우를 보아도 유전체 분석 비용의 3~4배를 의학적 결과해석에 할애한다. 

분당차여성병원 유한욱 교수
분당차여성병원 유한욱 교수

유한욱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 마운트 시나이병원 유태인 유전학센터에서 연수한 뒤 미국의학유전학전문의를 취득했다.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클리닉 소장을 거쳐 소아청소년병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대한소아내분비학회장, 대한의학유전학회 이사장, 복지부 선천성기형 및 유전질환 유전체연구센터장, 진흥원 희귀난치병정복사업 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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