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과대학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유한욱 교수

대다수의 희귀유전질환들은 특별한 치료방법이나 약제가 없고 약제가 개발되더라도 환자개인이 오롯이 부담하기에는 너무나 고가의 희귀의약품이다. 이에 몇 회에 걸쳐 희귀의약품 개발의 전략들을 구체적으로 하나씩 들여다보면서 적응이 되는 질환과 기전들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다소 무미건조한 현학적인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 이야기는 희귀유전성 대사질환군 중 하나인 리소솜축적질환의 효소대치요법에 대한 것이다. 

리소솜축적질환은 일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의사들도 의과대학 시절에 한번 들어봤을까 말까 한 질환이다. 이 질환군에 속하는 질환들은 70여종에 이른다. 이들 중 대표적인 질환들이 고셔병, 파브리병, 폼페병, 뮤코다당체축적증(여기에는 여러 형이 존재한다) 등이다. 이런 질환에서 효소대치요법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단지 증상만을 완화시켜주는 대증요법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환자의 생명을 연장 시킽 수는 없었다. 

효소대치요법이 처음으로 도입된 질환은 고셔병이다. 1990년대 초반은 유전자클로닝과 유전자재조합술 등의 분자생물학적기법이 매우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아울러 인간유전체프로젝트도 시작되었다. 게다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첫 유전자치료가 시도됐다. 모두들 유전자의 산물인 단백질로 치료하기보다는 유전자를 교정하면 이제 모든 유전병은 치료할 수 있다는 환상(?)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묵묵히 고셔병, 파브리병, 테이-삭스병 등에서 유전자의 산물인, 결핍된 효소를 직접 주입해서 환자를 치료할 수 없을까 고민한 걸출한 생화학자이며 의사인 분이 계셨다. 미국 국립보건원의 브래디 박사다. 브래디 박사가 소위 신약개발에서 기본적으로 중요한 ‘개념의 증명(proof of concept)’을 리소솜축적질환들에서 보여주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1990년대의 연속적으로 발생한 유전자치료의 부작용은 2010년대 초반까지 유전자치료의 암흑기를 초래했다.(최근 10년 여러 유전자교정기술, 벡터의 개발 등으로 유전자치료의 시대가 열리는 듯하다. 이는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

고셔병은 이미 1800년대 후반에 임상적, 병리학적 소견이 잘 정립됐으나 1960년대에 들어서야 특정 효소(글루코세리브로시다제)의 결핍으로 여러 전구물질들이 축적이 되어 병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질환은 임상적으로는 3가지 형태가 있다. 1형은 신경증상은 없고 주로 뼈, 간, 비장 등에 전구물질이 축적되어 골절, 출혈경향, 빈혈 및 종양 발생의 위험도가 증가하는 임상형이고, 2 형과 3형은 경련, 신경학적 퇴행 등의 신경증상이 급성적으로 또는 만성적으로 동반되면서 1형의 신체증상도 있다. 브래디 박사가 처음으로 환자에게 결핍된 효소를 주입했는데 이 당시는 유전자재조합술로 만든 것이 아니라 산모의 태반에서 추출한 효소를 농축하여 사용했다. 임상시험이 끝나자 이 제품은 상용화되어 1990년 초기까지 사용되다가 1994년부터는 유전자 재조합술로 만들어진(효소의 재조합된 유전자를 중국 햄스터의 난소에서 추출한 세포주에서 발현) 약제가 상용화되어 지난 30년간 사용되고 있다. 30년 전 보스톤에 위치한 이 회사의 공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건물이 대부분 유리로 되어 있고 미술관의 건축물 같이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사람은 별로 없고 모든 바이오탱크와 약제 생산이 컴퓨터로 제어됐다. 이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보스톤시에서는 강물의 흐름을 일부 바꾸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물론 지난 30년간 여러 회사(국내 회사 포함)들도 약제를 개발하여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필자가 고셔병과 이 약을 개발하는 과정(회사이름은 명시하지 않음)을 길게 기술하는 이유는 국내에서는 희귀질환에 대한 일반인 및 의료진의 인지(awareness), 희귀의약품에 관한 치료접근성의 문제에 큰 반향을 일으킨 매우 원형적인 질환(prototype disease)이기 때문이다. 

아주의대를 은퇴하시고 현재 한국희귀질환재단 이사장으로 계신 김현주 교수와 필자가 환우회를 결성하고 모 방송국의 장기적인 도움으로 fund raise를 하여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가 있었다. 필자가 1995년도 처음 효소치료를 시작했던 그 당시 2살 아이는 30대가 되었다. 보호자는 이 자녀를 치료하기 위해 약값으로 거의 1년에 아파트 1채 값을 지불해야만 했다. 치료효과가 눈에 보일 정도로 좋아서 치료를 중단하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1998년도에 이르러서야 의료비지원사업의 도움을 받게 되었고 2009년도에 이르러서야 희귀질환 산정특례제도라는 것이 생겨서 모든 환자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치료를 받게 되었다. 지난 30년간 고셔병의 치료는 놀랄만하게 발전되어 왔다. 효소대치요법의 미충족 요구(unmet need)도 크다. 분자량이 커서 중추신경계를 투과하지 못하여 신경증상의 개선에는 효과가 없다. 따라서 경구 투여가 가능한 여러 화학적 합성물들이 사용되거나 임상시험 중이다. 

국내에 몇 명 되지 않는 고셔병 환자들의 긴 여정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낀다. 의사의 학문적 입장에서는 우선 진단법을 개발하고 국내의 역학(유병률, 유전자형, 임상형)을 규명하고, 의료진을 교육하여 질환의 인지도를 높여서 환자들을 발견하고 치료하는 일종의 알고리즘을 다른 희귀질환들에도 적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장기간의 치료가 전통적으로 알려진 고셔병의 임상경과를 바꾼다든지, 과거에는 조기에 사망하여 임상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합병증이 동반된다든지, 종양과의 연관성이라든지, 보인자에서 조기 파킨슨병의 위험도를 증가시킨다든지 하는 새로운 의학적 사실들이 알려지고 있어서 매우 희귀한 질환이지만 이 질환의 연구를 통해 비교적 드물지 않은 종양, 파킨슨병의 발병기전에 관한 의학적인 통찰을 준다. 환자의 입장과 사회적인 면에서 보면 희귀질환과 희귀의약품에 관한 일반대중의 인지가 증가했고, 환자들의 고가 희귀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게 되었으며, 2016년 희귀질환관리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분당차여성병원 유한욱 교수
분당차여성병원 유한욱 교수

유한욱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 마운트 시나이병원 유태인 유전학센터에서 연수한 뒤 미국의학유전학전문의를 취득했다.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클리닉 소장을 거쳐 소아청소년병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대한소아내분비학회장, 대한의학유전학회 이사장, 복지부 선천성기형 및 유전질환 유전체연구센터장, 진흥원 희귀난치병정복사업 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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