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과대학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유한욱

희귀질환의 산전진단은 유전체진단의 영역에서 매우 중요하고,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은 분야이다. 먼저 환자와 그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다음 번 임신에서는 동일한 질환을 가진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미연에 예방하거나 정확하게 정상적인 아기만을 골라 낳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보다 다행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먼저 인지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로는 환자의 정확한 임상적 진단과 유전체 진단결과이다. 둘째로는 동일한 질환이 다음 임신에서 재발할 수 있는 위험도를 평가하는 일이다. 셋째로는 어떠한 산전 유전체 진단기법을 사용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네번째로는 산전진단 하려고 하는 질환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시행령에서 허용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산전진단 결과에 근거해서 환자 및 그 가족에게 어떠한 옵션을 제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많은 희귀질환들이 진단기법이 발달하면서 출생 후 조기에 진단되는 경향이다. 그러나 치료가 가능한 경우는 5% 미만이다. 또한 대부분의 희귀질환들의 원인적 배경이 유전적인 문제이어서 매우 재발위험도가 높다. 산전유전체 진단 기법은 놀랄만 하게 발전하고 있다. 임신 10주 이후 산모혈액에서 DNA 조각을 분리하여 태아의 염색체 수적이상을 스크리닝하는 비침습적산전검사(noninvasive prenatal testing; NIPT), 체외수정 후 배아에서 유전체검사를 한 후 정상 배아만 착상시키는 착상전진단(preimplantation genetic testing; PGT-A, M, SR), 임신이 진행된 경우에는 침습적인 방법이지만 진행된 임신 주수에 따라 융모막, 양수, 제대천자혈액 등을 채취하여 유전체 분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현란한 무기(?)로 무장된 의료진이라도 이 무기를 아무렇게나 휘두를 수는 없다. 여기에는 환자 가족의 힘든 경험, 종교(육체적 생명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 국내법 실정(진단 대상 질환, 태아 치료 가능성, 낙태의 허용범위 등), 사회 윤리적 통념 등 생각하고 논의해야 할 것 들이 기술적인 문제 보다 더 큰 담론으로 다가온다.  

전술한 바와 같이 국내에서는 배아 또는 태아를 대상으로 유전자검사를 할 수 있는 유전질환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시행령에서 현재 200 종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필자도 법령 제정 초기부터 전문가로 참여해 질환의 리스트를 법으로 관리하는 것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 여러 의견을 강력히 개진했으나 거의 20년 동안 이제는 시스템으로 굳어졌다. 환자와 가족들이 민원을 제기하면 특정 질환을 산전진단리스트에 포함시킬지를 결정하는데 이때의 고려사항은 치료방법이 없고, 치명적이어서 기대 수명이 짧은 질환부터 우선 순위가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질환들이 지적 및 발달장애로 치료방법 없이 가족과 타인의 도움으로 살아가야 하는 질환들이다. 환자와 이를 돌보는 가족의 삶의 질이 고려돼야만 한다. 그러나 치료방법이 있고(평생 투약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지적 및 발달 장애도 그리 심하지 않고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질환들은 산전진단의 필요성이 덜 하다고 할 수 있으나 환자가족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물론 무분별한 산전진단은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일부 급진적인 연구자는 착상전진단을 전통적인 유전질환이 아닌, 특정 질환에 대한 저항성 및 여러 소인(지능, 키 등)이 우수한(?) 배아만 골라 착상시키는데까지 확장하자고 주장한다. 또한 적응증이 되지 않는 무분별한 산전 염색체 마이크로어레이는 종종 그 결과 해석이 어렵다. 이는 산모의 많은 걱정과 불안을 야기하여 결국에는 낙태에까지 이르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환자 가족이나 의료진은 항상 산전진단의 결과가 양성인 경우 무의식적으로 낙태를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러나 이것은 그릇된 전제이다 필자의 경험으로도 산전에 유전학적인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도 임신을 유지하여 출산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또 매우 드문 예이지만 이미 여러 희귀질환에서 산전치료가 시도되고 있다는 고무적인 소식이다. 예를 들면 ‘폼페병’이란 질환은 이미 태내에서부터 근육에 당원이 축적되기 시작하는데 태아기에 효소보충치료를 시작하여 건강한 신생아가 태어났다는 최근 뉴잉글랜드의학저널의 보고가 있다. 또는 환자 신생아가 태어나면 어떻게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초기치료를 할 것인가, 미리 대비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예민한 문제인 배아 및 태아의 낙태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한다.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에 어떻게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가의 논쟁은 항상 있었다. 미국의 경우는 Pro-Life(태아 생명권)와 Pro-Choice(여성자기결정권)가 전쟁이라도 할 모양으로 첨예하게 대립한다. 작년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낙태를 쉽지 않게 하는(임신 15주 이후 낙태 전면 금지는 합헌) Pro-Life 경향의 판결을 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임신 14주 이내에는 일정한 사유나 상담 등 절차 요건 없이 여성 본인의 의사에 따라 낙태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임신 15∼24주 이내에는 기존 모자보건법상 사유 및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명시한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 낙태가 가능하도록 모자보건법과 형법을 개정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Pro-Choice에 좀 더 기울어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의학적으로는 배아는 수정된 후 8주차까지를 말하고 9주차 이후는 태아라 한다. 언제부터 진정한 생명체인가에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의학적으로는 태아가 조산할 경우 생존율이 아주 낮은 경우를 육상둥이, 즉 임신 24주 미만에 출생한 경우를 일반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의학이 발달하면서 더 어린 태아들의 생존율도 증가할 전망이다.         

이제 머리가 지끈지끈한 이야기를 맺으려 한다. 결론은 산전진단이 내포하고 있는 issue들이 모두 다 거대 담론이란 것이다. 유전체 진단 기법 차체는 어찌보면 빙산의 일부분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분당차여성병원 유한욱 교수
분당차여성병원 유한욱 교수

유한욱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 마운트 시나이병원 유태인 유전학센터에서 연수한 뒤 미국의학유전학전문의를 취득했다.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클리닉 소장을 거쳐 소아청소년병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대한소아내분비학회장, 대한의학유전학회 이사장, 복지부 선천성기형 및 유전질환 유전체연구센터장, 진흥원 희귀난치병정복사업 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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