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과대학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유한욱 교수

식이요법은 희귀유전질환의 치료에 어떻게 사용되고 있을까. 식이요법은 유전질환이 아닌 일반적인 질환들의 관리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예를 들면 당뇨병, 만성신부전, 고혈압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질환들은 치료약제를 병용해야 하고 식이요법은 부차적일 수 있다. 물론 식이요법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흔한 질환도 있다. 비만이 그 예이다. 물론 최근 효과가 좋은 치료제도 개발돼 식이요법에 큰 신경을 쓰지 않을 것 같은 전망이기도 하지만…. 

조금 드문 질환이지만 약제에 잘 반응하지 않는 소아의 경련성 질환 일부는 고지방, 저탄수화물 및 저단백질 식이요법(‘케톤생성 식이요법’)으로 치료한다. 

그러면 희귀한 유전질환으로서 식이요법이 중요한 질환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유전질환들의 약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유전성대사질환들의 상당 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몇 가지 질환들을 나열해보면 먼저 페닐케톤요증을 들 수 있다. 이 질환은 부모가 보인자인 자녀의 25%에서 발생한다. 페닐알라닌 수산화효소의 유전적인 결핍 때문에 필수 아미노산인 페닐알라닌 농도가 체액에서 너무 증가하여 점진적으로 뇌손상을 유발한다. 조기에 진단하여 페닐알라닌 제한식이를 하지 않으면 지적장애를 피할 수 없다. 서양, 중국, 대만은 신생아 1만~1만5,000 명당 1명꼴로 발생한다고 하나 한국, 일본은 약 5만 명당 1명의 빈도로 발생한다. 

1920년대에 작가 ‘펄벅(Pearl Buck)’ 여사의 딸이 이 질환을 앓고 있었지만 그 당시는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본인의 딸을 대상으로 한 ‘The Child Who Never Grew’라는 책을 썼다. 1930년대가 되어서야 노르웨이의 한 과학자에 의해서 이 질환은 페닐알라닌이라는 필수 아미노산이 대사 되지 않고 축적되어서 ‘페닐케톤’이라는 특수한 대사물질로 변환되어 체액으로 배출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페닐케톤요증이라 명명했다. 페닐케톤이 체액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정상인에서는 맡을 수 없는 독특한 냄새가 환자에게서 난다. 그러나 페닐알라닌 제한식이가 지적장애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195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그리고 1960년대에 들어서 모든 신생아를 대상으로 이 질환을 스크리닝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1996년도에 모든 신생아를 검사하게 됐다. 이 당시 우리나라의 일반인들에게는 ‘지적장애아 예방검사’라고 알려졌었다. 현재까지도 유일한 치료는 페닐알라닌을 제한하는 식이요법이다. 

페닐알라닌은 필수아미노산이기 때문에 전혀 먹지 않아도 문제가 생긴다. 마치 당뇨병 환자가 혈액의 혈당 수치를 조절하듯 혈액 내의 페닐알라닌 수치를 감시하면서 식이요법을 한다. 페닐알라닌 식이제한을 위해서는 평생 동안 페닐알라닌이 전혀 없는 특수분유와 함께 일반적인 식이 중에서 페닐알라닌의 양을 계산하여 식사를 해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페닐알라닌혈증 환자가 우리나라보다 5배 정도 많은 서구의 국가들에는 이들이 쉽게 계산하여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음식, 스낵, 특수분유들이 다양하게 있다. 다행히 국내의 한 유업회사에서도 오래전부터 특수분유를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 최근에 반가운 일은 식이요법이 불량하여 조절이 안되는 소아기가 지난 페닐케톤요증 청소년, 어른들을 적응증으로 효소치료제가 주사제로 개발되어 미국과 유럽에서는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승인되어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올해부터 환자들에게 사용되고 있다. 

또 다른 유전성 대사질환으로는 식이 중에 단백질을 제한하는 저단백식이를 해야 하는 질환이 있다. 단백질은 우리 몸에 필수불가결한 영양분인데 사용되고 남는 물질은 대사되어 요소라는 물질로 소변으로 배출된다. 요소를 생성하는 대사회로에 문제가 있어서 요소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혈액내 암모니아가 증가한다. 환자는 경련, 구토, 의식소실을 보인다. 불행히도 치료가 늦으면 사망하거나 뇌병변 장애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가야 하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완벽한 치료는 아니지만 고암모니아혈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일반인들보다 단백질을 50%이상 적게 먹어야 한다. 

갈락토스형증이란 질환은 유당의 구성원인 갈락토스가 제대로 대사되지 않아서 간손상, 지적장애, 백내장 등이 동반되는 질환인데 환자들은 평생 락토스가 있는 유제품은 먹으면 안된다. 신생아와 영아시기에도 모유나 일반적인 우유는 먹지 못하고 콩으로 만든 두유를 먹어야 한다. 

단풍당뇨증이란 질환도 있는데 이 질환은 로이신이라는 특수한 아미노산 대사장애로서 식이 중에 로이신을 제한해야 한다. 혈액 내 로이신이 증가하면 의식소실, 경련이 발생하고 회복되더라도 지적 장애가 동반된다. 환자의 상태는 엉망인데(?) 소변에서는 달콤한 메이플시럽향이 난다. 

유기산 혈증이란 질환도 있다. 분지화된 아미노산들의 대사 장애로 혈액이 산성화하고 암모니아가 증가하며 적절한 치료가 되지 않으면 이 질환 역시 치명적이다. 지방산을 산화시켜 우리 몸에 에너지를 공급시키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지방산산화대사 장애도 있는데 이들은 일반적인 지방보다는 각 질환에 적합한 특수한 지방(예: MCT기름, 트리헵타노인 기름)을 섭취해야 한다.

당원병 1a형의 경우는 일반적인 탄수화물을 먹으면 포도당 생성에 이용되지 않고 곧 바로 당원의 형태로 주로 간에 저장된다. 이런 환자들은 생래적으로 탄수화물이 풍부한 밥, 면, 떡 등을 매우 좋아하나 실상은 혈당이 낮아 에너지가 늘 부족하고 잘 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가열하지 않은 생옥수수전분을 섭취하면 비교적 혈당이 잘 유지된다. 

지금까지 너무 학문적인 내용만 무미건조하게 이야기했다. 위에서 열거한 질환은 식이요법이 중요한 질환들 중 일부분이다. 이들에게는 각 환자에 적합한 맞춤 식이요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질환들의 종류는 많고 각 질환의 환자수는 적어서 국내에서 만드는 특수분유, 식이제제만으로는 각 환자들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기가 힘든 것이 국내 현실이다.

국내 분유회사가 적자를 무릅쓰고 사회공헌차원에서 특수분유를 제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냄새나 맛 등에서 환자가 먹기 좋은 특수분유와 다양한 질환과 연령에 맞는 좀 더 다양한 제품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환자들의 요구가 크다. 현재 국가에서는 모자보건지원사업의 일원으로 특수분유를 무상보급하고 있으나 현재 만 18세까지로 연령제한을 두고 있다. 환자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평생을 먹어야 하는 특수분유는 ‘의학식품(Medical Food)’인 것이다. 

분당차병원 유한욱 교수
분당차병원 유한욱 교수

유한욱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 마운트 시나이병원 유태인 유전학센터에서 연수한 뒤 미국의학유전학전문의를 취득했다.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클리닉 소장을 거쳐 소아청소년병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대한소아내분비학회장, 대한의학유전학회 이사장, 복지부 선천성기형 및 유전질환 유전체연구센터장, 진흥원 희귀난치병정복사업 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