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과대학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유한욱 교수

이미 언급했듯이 유전자 검사의 종류는 그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된다.

산전이나 출생 후에 질병의 진단을 목적으로 하는 검사, 개인의 약물에 대한 반응(부작용, 약용량의 차이)을 알아보기 위해 하는 검사, 질병에 대한 감수성을 알아보기 위한 검사, 개개인을 식별하기 위한 검사(친자감별, 법의학적 검사), 보인자검사 등 매우 다양하다. 이번에는 보인자검사 중에서 결혼을 앞두거나 임신을 계획하는 건강한 커플을 대상으로 하는 보인자검사에 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는 치료방법이 없고 병의 경과가 매우 치명적인 질환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최근 치료방법이 개발된 질환들도 포함되고 있다. 특히 상염색체 열성질환들이 그러한데 이런 경우는 부부가 보인자일 경우, 위험도가 25%가 되기 때문이다. 보인자검사는 그 결과에 따라 늘 산전 유전자 검사를 염두에 두게 된다.

특히 상염색체 열성질환은 근친결혼의 경우 위험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같은 조상을 가진 사람 사이의 결혼을 근친결혼이라고 말하는데, 임의적으로는 5촌이내의 결혼을 의미한다. 근친결혼을 하면 두 부모가 희귀한 유전자 돌연변이를 동시에 갖고 있을 확률이 더 높아진다. 잘 알려진 예로서 유명한 인상파화가인 로트렉(Lautrec)이 있다. 부모가 사촌간이었던 로트렉은 경화성골질환(pyknodysostosis)이라는 희귀한 뼈질환을 앓았다. 이 질환은 키가 작고, 머리가 크며, 골절이 잘 발생하는 열성질환이다.

또 다른 대표적인 질환이 테이삭스병(Tay-Sachs disease)이다. 아직도 이렇다할 치료방법이 없는 치명적인 뇌신경질환이다. 발병빈도는 아슈케나지 유대인(Ashkenazi Jewish)에서는 1/3,600이지만 일반 인구에서는 1/360,000이다. 아슈케나지 유대인 보인자의 확률은 1/30이나 된다. 그러나 일반 인구에서는 1/300이다. 즉, 보인자의 빈도가 10배 높은 것이다. 이를 근거로 아슈케나지 유대인은 부부의 보인자검사는 물론, 임신하면 테이삭스병에 대한 산전 진단을 시행하여 발병률을 감소시켰다.

실제로 필자가 30여년 전 뉴욕의 유대인 병원에서 근무할 때 결혼을 앞둔 유대인 커플들을 위한 보인자검사 클리닉이 있었다. 보인자 검사결과를 근거로 유전상담도 받지만 그 결과를 랍비에게 보여 주고 산전의 여러 옵션들을 상의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사실 근친결혼으로 태어날 아이의 유전적 위험도는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것만큼 크지는 않다. 사촌 간에 결혼했을 때, 비정상적인 아이가 태어날 확률은(모든 열성질환 뿐 만 아니라 사산, 신생아사망 및 선천성기형을 포함한다) 3~5%로 일반인의 2배 정도가 된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7촌을 넘어가면 거의 의미가 없는 수준이 된다. 우리나라는 8촌 이내의 근친결혼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오래전에는 동성동본의 커플조차 결혼을 금지했으니 지독히도 이 문제에 대해서 엄격했던 것 같다.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이 나오기 전까지는 각 민족에게 비교적 흔히 발생하는 질환들에 국한해서 보인자검사를 시행해 왔다. 예를 들면 백인에서 흔히 발생하는 낭포성 섬유증(보인자 빈도가 30명당 1명이다), 또는 동남아시아인에 흔한 지중해성 빈혈 등이다. 차세대염기서열분석법의 비용, 정확성, 결과를 얻기까지의 빠른 시간 등이 개선되어 지금은 개인의 민족적인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여러 개 질환들에 대한 보인자검사를 학회에서도 권고하는 입장이다. 부모 모두로부터 유전되는 상염색체 열성질환뿐 아니라 모계로부터 유전되는 성염색체 열성유전질환도 포함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8~10개 질환의 보인자 상태라고 알려져 있으며, 이들 질환들의 반 정도는 동형접합체(상염색체열성질환의 경우)가 되면 치명적이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임신 전 부부의 보인자검사를 권고하는 질환들은 대개 보인자 빈도가 높은 질환들이다. 또는 치료방법이 없는 치명적 질환이거나 역설적으로 최근 치료방법이 개발된 질환들이다. 이런 경우 조기 발견하여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질환이 척수성 근위축증이다. 물론 검사 방법이 정확하고 유전자변이가 발견되었을 때 그 해석이 명확해야 한다. 권고하는 질환들도 보인자빈도에 따라 등급이 다르다. 사실 매우 드문 희귀질환들의 보인자 빈도는 매우 낮아서 권고하지 않는다. 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상업적 검사실들이 보인자검사를 비즈니스화해서 다양한 검사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결혼을 앞 둔 부부의 보인자검사에 대한 윤리적, 법적, 사회적 이슈가 산재한다. 불행히도 부부 모두가 특정질환에 대한 보인자라면 (최근 보고를 보면 사실 이런 경우는 검사를 받은 전체 부부의 1.3% 라고 한다) 임신 전후에 어떤 옵션을 선택할 건지에 관한 법적, 윤리적 문제가 따른다. 그리고 이러한 검사를 받기 전과 검사결과가 나온 후의 상담을 누가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다.  또 다른 문제는 이러한 검사들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검사의 의미를 이해 할 수 있는 '유전학 문맹(genetic illiteracy)'이 아닐 만큼 교육받은 사람들에게만 접근가능하다는 소위 '건강불평등(health disparity)'의 문제이다. 

여하튼 이제는 결혼 전 사주팔자, 궁합보는 시대에서 벗어나 건강검진은 물론 이런 검사도 해야하는가(?) 하는 골치 아픈 세상이 되었다. 가뜩이나 결혼을 기피하고 아이 낳지 않는 요즈음 세대에게 괜한 걱정 하나를 더해서 죄송스런 마음이다. 

분당차여성병원 유한욱 교수
분당차여성병원 유한욱 교수

유한욱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 마운트 시나이병원 유태인 유전학센터에서 연수한 뒤 미국의학유전학전문의를 취득했다.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클리닉 소장을 거쳐 소아청소년병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대한소아내분비학회장, 대한의학유전학회 이사장, 복지부 선천성기형 및 유전질환 유전체연구센터장, 진흥원 희귀난치병정복사업 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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