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과대학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유한욱 교수

희귀질환의 종류는 현재 8,000종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희귀질환 환자들이 최종 진단을 받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하지만 10여년 전부터는 여러 차세대 유전학적 진단 기법들이 개발돼 빠르게 진단되는 추세이다. 그러나 문제는 진단이 된다 하더라도 치료제가 없다는 데 있다. 

현재 치료제가 있는 질환은 전체 희귀질환의 3~5%로 보고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95%의 환자는 아직도 치료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질환들은 그냥 관리만 하는 정도로 그치고 있다. 

외국의 보고를 보면 어린이병원 입원환자의 20-30% 가량이 유전학적 원인이 있는 희귀질환 환자들이라 한다. 특별한 완치법이 없다 보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경제적 부담이 크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희귀의약품(Orphan drug)은 국가마다 매출액 등에 근거를 둔 법적인 정의가 있긴 하지만 주로 희귀질환 치료에 사용되는 의약품을 말한다. 

그러면 왜 이렇게 치료약제가 없는 질환들이 많은 것인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전체적으로는 병의 종류는 매우 많고 다양하지만 개별적인 질환의 환자 수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즉 수요가 적어서 개발하고자 하는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다. 개발되어도 약가가 매우 비싸서 개인이 부담할 수 없을 정도다. 결국 국가가 제도적으로 나서서 도와 주어야만 하는데 이것은 선진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희귀약품개발 과정 자체에 여러 난관들이 있다. 우선 약품을 개발하고자 하는 질환을 지닌 환자들의 미충족 상황(unmet need)을 연구자들이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발하고자 하는 물질을 목표화 하고 전임상 시험(동물시험)을 해야 한다. 그러나 약품을 개발하려는 질환의 발병기전을 명확히 이해해야 하는데, 질환들이 드물다 보니 관심 있는 연구자가 적어 충분히 연구가 안된 질환들이 많다. 별로 경쟁이 없다는 측면에서는 이점이 될 수 있으나 아주 기초적인 실험실 연구부터 시작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일 수도 있다. 희귀질환의 동물모델이 없는 경우도 많아 전임상 시험을 하려면 동물모델부터 구축해야 한다. 물론 동물에서의 임상적 효과가 항상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임상 시험이 성공적이었다 하더라도 임상시험에서 약품의 안전성, 적절한 용량, 임상적 효과 등을 과학적(통계적)으로 입증해야 하는데 환자수가 굉장히 적다. 필연적으로 국제공동연구를 필요로 한다. 

또한 환자수가 충분하더라도 먼저 진단이 정확한지 검증돼야 한다. 그리고 치료하거나 개선시키고자 하는 임상적인 일차 목표(primary endpoint)를 설정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질환의 자연경과(natural history)를 먼저 연구해야 한다. 즉, 환자들이 임상적으로 어떤 문제를 지니고 있으며, 얼마나 희귀한 병인지, 치료하지 않으면 자연 기대수명은 얼마인지, 주요 사망 원인은 무엇인지, 삶의 질은 어떠한지 등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대상 환자들이 대개는 연령이 어린 소아라는 것이다. 임상시험에서 소아를 대상으로 하는 질환들은 그 규제가 더 엄격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아직 완전히 성숙되지 않고 발달하는 과정에 있다. 약물의 대사에 따른 부작용이나 중추신경계 등에 미치는 영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약품이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약가가 너무 비싸다 보니 개인이 구입하기에는 너무 경제적 부담이 크다. 공적 영역(국내의 경우는 보험, 산정특례, 희귀질환 의료비지원사업)에서 이를 담당하는 것이 국제적 추세이다. 현재 환자 치료에 사용되는 약제비용 중 희귀질환 치료에 사용되는 희귀의약품의 매출이 차지하는 부분은 10%를 상회한다. 누가 약가를 지불하느냐는 각 나라의 경제수준, 보험급여제도, 환자의 수에 따라 정책이 천차만별이다. 

이렇게 어려운 희귀약품개발을 독려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여러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임상시험 연구프로토콜을 빠르게 심사하고 심사비도 면제해준다. 연구비의 지원 및 세제혜택도 있다. 임상시험 2상(약품의 부작용여부와 적정 용량의 결정, 소수의 환자에서의 효과를 입증하는 임상시험)만 성공하더라도 한시적으로 약품을 판매할 권한을 준다. 성공적으로 모든 임상시험이 완료되어 승인되면 국가에 따라 다르나 7~10년간 시장판매 독점권을 준다. 어찌 보면 연구자나 제약업계의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시장인 것이다. 

소위 ‘바이오벤처’라는 기업들이 간혹 주가를 띄우기(?) 위해 여러 매체에 희귀의약품 지정(orphan drug designation)이 되었다고 홍보를 하는데 이는 희귀의약품 승인(orphan drug approval)과는 구별될 필요가 있다. 희귀의약품 지정은 임상시험 초기에, 앞서 이야기한 여러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좋은 소식임에는 틀림없으나 임상시험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어 완전한 판매허가를 받을 수 있는 희귀의약품 승인과는 별개이다. 실제로 미국 FDA에서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고 성공적으로 임상시험이 완료되어 승인 받는 비율은 15%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도 이는 희귀의약품이 아닌 약제의 승인비율보다 높다. 

희귀의약품 개발에는 중요한 여러 이해 당사자(stake holder)들이 있다. 환자 자신들(환우회 포함)의 적극적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더해서 연구비 제공(funding) 주체, 의사-과학자, 기초의학 연구자, 제약사, 연구를 모니터할 거버넌스, 국제적 공동연구네트워크 등이다. 필자는 특히 젊은 의사-과학자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희귀질환에 대한 관심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분당차여성병원 유한욱 교수
분당차여성병원 유한욱 교수

유한욱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 마운트 시나이병원 유태인 유전학센터에서 연수한 뒤 미국의학유전학전문의를 취득했다.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클리닉 소장을 거쳐 소아청소년병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분당차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대한소아내분비학회장, 대한의학유전학회 이사장, 복지부 선천성기형 및 유전질환 유전체연구센터장, 진흥원 희귀난치병정복사업 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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