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병에 대해 들었을 때가 기억난다.

서울에 올라온지 한달쯤 되었을 무렵. 전화기 너머로 들렸던 그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수술까지 끝내고 중환자실에서도 며칠이 지난 후라고 하셨다.

처음 직장을 얻어 적응하느라 정신없고 바쁠 딸이 혹여나 신경쓰고 일에 지장을 줄까봐 그렇게 큰 수술을 하는데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비밀을 부탁하셨던... 내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다.

믿기지 않는 진단에 책도 많이 찾아보고 의학 논문도 많이 뒤져봤다. 하지만 췌장암 (pancreatic cancer)에 대한 예후(prognosis)는  이미 알고 있듯, 그리 좋지 못했다. 대부분의 예명이 년 단위가 아니고 월 단위로 나올 정도였다.

당시에는 혼자 이불 뒤집어 쓰고 많이 울기도 했다. 그러고도 3년 가까이 지났으니 생각보다는 긴 시간이 지났다 싶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내 꿈은 의사였다.

인류를 질병에서 구하고 싶다거나.....의료의 손길을 베풀고 싶다거나........

누군가..."왜 의사가 되고 싶어?" 라고 물었을때 대답할 수 있는 멋진 대답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그냥 의사가 되고 싶었다.

어린 마음에 스스로의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시고 최선을 다하시는 아빠가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라 아직도 믿고 있다. 나도 왠지 그런 멋있는 모습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고, 나는 결국 아버지의 뒤를 따라 의사가 되었다.

한번도 아버지에게 얘기한 적은 없지만, 내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아빠 닮은 모습'으로 생각되어 항상 잘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아빠'는 항상 내 든든한 빽이었다. 항상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고 새벽에 출근해서 밤 늦게까지 책임감과 부지런함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셨던 분이시다.

그렇게 열심히 일만 하시다가도 초등학생 딸이 서울 경시대회에 간다는 말에 의사로써는 내기 힘든 휴가를 쓰면서  함께 가주실만큼 따뜻한 분이시기도 했다.

가끔 보호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우리딸 우리딸' 말씀하시다가도 당신이 못해 보신 세계구경 열심히 하라며 언제 어디든 떠나겠다는 내 등을 떠밀며 응원해 주셨던 분. 마지막까지 큰 딸 차비하라며 얇은 지갑 털어 손에 쥐어 주셨던 분.

부쩍 여위신 모습을 보고 '조금 더 자랑스러운 모습 보여드려야지.. 조금 더 싹싹한 모습 보여드려야지..' 하는 결심을 했는데 미처 실행으로 옮기기도 전에 눈을 감으신 우리 아빠.


너무나도 갑자기 세상을 뜨셨지만, 짧았던 이틀밤동안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가셨다.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울어주다니.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해주다니.

세상에...  세상에...


정말 가시는 마지막 길까지 큰딸에게 큰 감동과 존경을 남겨주시고 가신 우리 아버지.

'어느 누가 세상을 떠나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울어줄까? 이렇게 슬퍼해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참 멋진 인생을 사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꼭 인생 마지막 날에는 저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뭉클 떠올랐다.

또 평생을 알고 지냈지만 아버지 별명이 천사인줄은 오늘에야 알았다는 작은 아버지 말씀에 또 다시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당신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시고는 가시기 전에 엄마에게 아들같은 사위 하나 선물하고 가셨다. 이번 장례 때에도 너무너무 든든한 어깨와 가슴을 빌려준 사랑하는 울 신랑.

그래도 큰 딸이 어른이 되는 모습 보고 가셔서 너무너무 다행이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 언젠가는 이 모든 슬픔과 허전함을 극복하고 'move on' 하겠지만..

이 모든 사랑과 감사와 존경과 감동은 영원히 아빠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엄마에게 하셨다는 마지막 한마디 "마누라 사랑한다" 는 아마 평생 잊지못할 내 인생의 명언 중 한 귀절로 남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

아빠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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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 연락이 전혀 안된다며 걱정해주셨던 분들께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네요..

이 일을 알고서 멀리 마산까지 날아와준 친구들에게도 감사의 말 전하구요..

이건 너무나도..지극히도.. 개인적인 글이지만..

또한 이렇게 공개적으로 포스팅 된 이 글을 보고 단 한 분이라도 더 나의 아버지 가시는 길에 기도 한마디라도 더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답니다.

그리고 요즘 정신이 없어서 전화도 문자도 잘 받지 못하는데...이해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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