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명절이면 떠오르는 두 환자가 있다. 워낙 이런 기억에 둔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두 환자 모두 해는 달라도 명절연휴에 만난 환자들이었다.

두 환자 중 첫번째 환자는 40대 정도되는 한 남자였다. 아마도 3년전 명절 연휴였던 것 같다. 명절 오전에 도심지의 응급실은 늘 한가하다. 많은 사람들이 시골이라고 하는 고향으로 내려가고 차례를 지내고 하니 응급실에 올 만한 사람들이 도심지에 남아있지 않으니 말이다.

그 한가한 아침 한명의 환자가 119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황급히 들어왔다.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환자는 의식이 없었다. 침대에 누이고 살펴보니 심각한 두부 손상으로 의식이 없고 호흡도 불안한 상태였다. 급히 기관삽관을 시행하고 간호사에게 급히 이런 저런 처치 오더를 내었다. 환자는 두부 손상 외에도 심각한 흉부, 복부 손상이 의심되는 환자였다. 혈압도 낮고 심박동도 불안해지고 있었다.

환자를 이송한 구급대원의 말에 의하면 병원 인근의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인부인데 7층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하는 것이었다.

'아니 추석날 오전에 남들 다 차례를 지내는 시간에도 일꾼을 불러서 일을 시키는 경우라니!'

물론 그 시간에 나도 병원에서 일하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환자의 상태는 너무 좋지 않았다. 추가적으로 흉관 삽관을 하고 어느 정도 회복되는 듯 했으나 흉관으로 쏟아지는 출혈량은 도저히...따라 갈 수 없는 양이었다. 또한 복강내 출혈은 어느 정도일지 짐작 할 수 없었다. 어찌어찌하여 CT를 시행하였으나 결과는 참혹했다. 흉부나 복부의 손상은 수술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두부는 두개골 골절과 더불어 출혈이 발생하고 뇌의 상당 부분이 손상을 받은 상황이었다. 신경외과 의사의 소견은.....수술 불가였다.

그 즈음 환자의 보호자가 연락이 되어 응급실에 나타났다. 간호사의 안내를 받고 내 앞에 선 보호자를 보는 순간 '아...'  하는 한숨부터 나왔다. 보호자라고 나타난 사람은 환자의 아버지뻘 되는 칠순의 노인과 환자의 아이인것으로 보이는 예닐곱살의 사내아이였다. 부인은 집을 나간지 오래이고 다른 형제들은 어디에서 무얼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보호자이시군요....***환자는 추락사고로 응급실에 오셨는데 상태가 많이 않좋습니다. CT를 찍었는데 수술해도 살아날 가망이 거의 없고, 현재 환자 상태가 수술까지 갈 수 있을 지도 알 수 없는상태입니다."


할아버지는 내 말을 알아들으신건지 아닌지, 지팡이를 짚고 있던 한손을 내밀어 내 손을 꼭 잡으시면서

"살려 주시오"

아....... 그때 나는 정말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그 마르고 굽이진 손이 내 손을 잡았던 그 순간, 내가 뭔가를 할 수 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그 순간 환자는 결국 심정지가 발생하여 급히 심폐소생술을 시행해야만 했고 어색하지 않게 할아버지의 손을 뿌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환자의 심장을 누르면서도 할아버지의 그 손과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눈을 떨칠 수가 없었다.

결국 환자는 소생되지 않았고 나는 그 어떤 환자에게 보다 더 어려운 사망선언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환자의 사망을 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설사 보호자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병원을 혹은 나를 비난하더라도 그들의 절망을 이해하리라 생각하고 할아버지를 만났다. 대기실에 있던 할아버지는 내가 나가니 의자에서 일어나 나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할아버지의 발치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할아버지의 바지자락을 붓잡고 장난이라도 하듯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보호자분, 정말 유감스럽지만 ***환자에게 저희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심폐소생술까지 시행했으나 결국 사망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한동안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가만히 땅을 바라보셨다. 그러다가 다시 내 손을 살며시 잡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오늘은.....그래도.....명절이니까......하루만....쉬라고...했는데..........끅.....그래도....해야.....한다고.......나가더니만................................"

내 손을 잡은 할아버지의 손등에 눈물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 위에 뒤늦게 포갠 내 손등에도 눈물이 떨어졌다. 난 뭐라 할 말도 없고 너무 서글퍼서인지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 명절에도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들중에는 다치고 죽는 사람도 있다. 그 환자를 만난 그 날을 나는 절대로 잊지 못한다. 유난히도 환자가 적어 조용했던 명절날 아침 응급실에서 만났던 그 환자와 그의 아버지....그리고 그의 아들... 그 어느 삼대의 명절은 풍요롭지도, 즐겁지도, 흥겹지도 않았다.

그저..그저...그들의 삶의 질곡속에서 또 하루를 보내는 것이었다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