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침에는 저희 병원에서 한 분의 선생님의 은퇴식이 있었습니다. 만 80세가 되신 외과 선생님이십니다. 지금까지 일선에서 집도를 하시고 환자를 보시다가 은퇴를 하시는, 저희들이 보기에는 정말 닮고 싶은 그런 선생님입니다. 인격적으로도 그렇고 또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보고 일을 하실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요. 은퇴사에서 지난 세월을 돌이키시며 눈시울을 적시는 선생님의 모습에 모두들 숙연해졌습니다.

"윤박사님"이라고 흔히 부르는 윤세옥 선생님은 사실 제가 전 직장인 제일병원에서부터 모셨던 분입니다. 1973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위내시경검사를 시작하셨던 분이고 우리나라 소화기내시경 학회를 창설하신 분이지요. 그리고 1980년대에는 제일병원에서 유방암센터를 만들어 많은 여성들의 건강을 지켜주셨던 분입니다. 이런 분을 가까이에게 모셨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영광일 뿐입니다.



늑대별과 선생님과의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1994년, 이제 막 전문의가 되어서 제일병원에 취직을 하고 환자를 보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저는 당시 내과 전문의 과정이 3년에서 4년으로 처음으로 늘어난 때 전공의 과정을 밟았고 소화기내과에서만 2년동안 지냈기 때문에 나름 위내시경검사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던 때였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는 아무 것도 모를 때였지만...^^) 그런데 이 윤박사님이 제가 당신의 환자 내시경검사를 하고 나면  꼭 전화를 하시는 것입니다.

"응...그래, 닥터 늑, 그 환자 내시경소견이 어땠어?"
"네...이건 이렇고 그건 그렇고...."

하나하나 설명을 드려야 했지요.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제가 소화기내시경의 대가이신 선생님께 이런저런 설명을 드린다는 게 식은땀이 나는 일이었지만, 어쩌겠습니까...ㅠ.ㅠ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닌게..조금 있으면 선생님은 친히 내시경실로 내려오십니다.

"그 환자 녹화된 것 있나?"
"네, 녹화해 놨습니다."
"그럼, 설명 좀 해 주겠나?"
"네..네......^^;"

 항상 이런 식이었습니다. 당신의 환자를 내시경검사를 하고 나면 항상 전화, 그리고 방문하셔서 녹화된 검사결과 확인...처음에는 저를 믿지 못하셔도 너무 못 믿으시네....하고 약간의 불만도 있었지요. 2년여가 지났나...어느 날부터 갑자기 선생님의 전화가 뚝 끊어졌습니다. 녹화된 영상을 보여달라는 말씀도 없어지고...아하~ 이제서야 선생님은 늑대별을 믿게 되신 겁니다. 2년간의 검증과 가르침을 주신 후 드디어 믿을 만하다는 인정을 해 주신 것이지요...

2000년...선생님은 지금 계시는 이 병원으로 자리를 옮기셨고..그 때 늑대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부탁을 하셨더랬습니다.

"자네....나랑 같이 그 병원으로 가지 않으려나?"

네, 제 생각에는 선생님이 자리를 옮기시면서 누군가가 위내시경검사를 할 텐데...또 다시 누군가를 검증하기는 힘들고 믿기도 어려워서 제게 같이 가자고 하신 것 같았습니다. 당시 저는 곧장 따라 나서지 못했고 1년반이나 지난 뒤에야 지금의 병원에 합류해서 다시 가까이에서 선생님을 보실 수 있었지요. 은퇴식이 끝난 후 미리 인사도 드리지 못 했기에 잠시 인사를 드렸습니다.

선생님,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십시오. 그리고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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