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디-워커 신드롬(Dandy-Walker syndrome:DWS), 내과의사인 나에게는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병명이다. 그나마 소화기내과를 하다보니 입으로 식사가 불가능한 환자들에게 '내시경적 경피 위루술'을 의뢰받다보면 어쩌다 볼 수 있는 병명일뿐... 환자를 직접 볼 일도 없고 위루술 의뢰만 받아서 시술해주면 그만이다.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시술을 할 때는 더욱 관심을 안 가지려고 하기도 한다. 알면 알 수록 한숨이 늘기 때문이다.
 
 
 


[내시경적 경피 위루술 동영상, 참고할만한 다른 영상 링크]
 
 
얼마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년만에 처음 연락온 친구가 있었다. 나와는 1학년 적에 같은 반을 하였고 농구를 좋아해서 3학년 때까지도 농구장에서 종종 만났었다. 이 친구는 축구도 아주 잘하여 학교대항 축구시합에 대표로도 나가곤 했다. 그런 친구가 20년만에 뜬금없이 병원 앞에서 기다릴 테니 저녁 한끼를 먹자는 연락이었다. 간혹 이런 만남에 실망한 적이 있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찾아온 수고를 거절할 수 없어 근처 찌게집에서 밥을 안주로 소주를 마셨다.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었다. 고등학교 적 이야기, 농구하던 이야기, 술 마시던 이야기, 땡땡이 치던 이야기... 이 친구는 어느 지방의 전문대 전기과를 나와 전기기사로 일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작년까지 8년여를 근무하며 살던 곳이 진천의 처가집 바로 옆이였다. 진작에 만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쉬워하며 술잔이 오갔다.
 
'이 친구가 나를 찾아온 것은 분명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텐데..... 뭘까?'

여러가지 상상을 해보았지만 쉽게 짐작하기 어려웠다. 취기가 조금 오르니, 내가 먼저 운을 띄었다.
 
"야, 병원까지 찾아오고 뭐 급하게 말할 것이 있는 것은 아니구?"
"응.... 아.... 뭐 별건 아니고... 부탁 좀 할 수 있을까해서..."
 
10년 전 첫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서 움직임이 이상하여 검사를 해보니 '댄디-워커 신드롬', 그 병명의 스펙트럼에서도 아주 심한 축이었다. 유전적으로 뇌의 상당부분, 특히 소뇌가 없이 태어나다보니 사지를 웅크린 채 있을 뿐, 지적발달을 기대하기도 힘든 형편이었다. 간질발작도 끊이지 않았고, 주변에서 바스락대는 소리만 나도 밤을 세고 간질발작을 일으키기를 반복해왔다고 한다.



 
몇 년 전까지는 서울에 있는 K대병원이 유명하다고 하여 다녀 보았는데, 간질약값은 만팔천원인데, 병원에서 추천해주는 한약값이 한달에 30만원씩이 들었다고 한다. 한 3년 다니다가 도저희 힘들어 청주에서 간질약을 처방받아 먹이고 있다고 한다. 먹으라니까 먹이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왜 그 고생을 해서 서울까지 가서 돈 들여가며 간질보약을 먹였는지 화가 난다고도 하였다.
 
하지만 하소연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였다. 몇년 전 낳은 둘째도 같은 질병, 댄디-워커 증후군이라고 한다. 작은 환경 변화에도 언제 발작을 일으킬지 모르는 아이들 때문에 집은 낮에도 커튼을 쳐 놓고 산다고 한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보느라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살아온 집사람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이 친구 본인도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 10년간 친구들과 거의 연락을 끊고 살아 왔다고 하였다. 퇴근하면 집 근처 슈퍼에서 소주를 1~2병씩 사서 걸어가며 병나발로 모두 마시고 집에 들어가 쓰러져 자는 날의 연속만 있었을 뿐......
 
나한테 한 부탁은 뭐 대단한 부탁은 아니었다. 옛날 친구들 만날 때 자기도 꼭 불러달라는 것. 집사람도 요즘은 사람도 만나려고 하고, 자기에게도 나가서 친구들도 만나며 '사람 답게 살자.'고 한단다.
 
이게 무슨 대단한 부탁이라고 찾아와서 밥까지 사준다고 할까마는 짊어지며 살아 온 삶의 무게가 다른 내가 보기에 가벼운 것이 바로 나의 가벼움은 아닐지 반성도 되었다.
 
지금 사는 집도 우리 병원 바로 옆이고, 몇년 째 우리 병원에서 물리치료와 가정방문간호도 받고 있었다고 한다. 진작에 놀러오지 왜 지금 왔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사실 어렵게 찾아와 준 친구가 고마울 뿐이다. 다음에는 물리치료 받으러 오는 친구 아들을 만나야겠다. 이 가정에 앞으론 행복이 가득하기를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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