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고등학교 여학생이 혼자서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챠트를 보고 얼굴을 보니 기억이 나는 얼굴입니다. 감기 때문에 또 배탈 때문에 몇 번 진료를 봤던 여학생이었지요. 오늘은 보호자도 없이 혼자 왔습니다.

'무슨 일로 왔어요?' 라고 물었더니 3일전부터 숨을 쉬면 가슴이 아프답니다. 기침은? 콧물은? 열은? 등등의 동반증상을 물어봤지만 아무 것도 없다고 하고요.

'혹시는 숨이 좀 차는 느낌은 없어요?' 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약간 있답니다.

간단한 진찰을 하면서 호흡음을 들었지만 별 이상이 없었고 어디 맞거나 다친 적도 없다고 합니다. 마침 작년 여름 경에 흉부 x-ray를 찍은 것이 있어 확인해 봤지만 역시 정상. 어떻게 할까 조금 고민했습니다. '그냥 보낼까? 아니면 x-ray를 찍어볼까?'

마침 고민 중에 뭔가 떠오르는 게 있었습니다.

  • 마른 체형의 어린 학생
  • 갑자기 생긴, 숨을 쉬면 가슴이 아프다 (pleuritic pain이라고 합니다. 흉막이 자극이 될 때 생기는 증상이지요)는 증상
  • 열이나 동반 증상이 없고
  • 숨이 약간 차는 듯한 증상

제 머리 속에 '혹시 기흉(pneumothorax)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호흡음이 정상이라는 점이 걸리지만, 기흉이 약간 생겼다면 정상으로 들릴 수도 있으니까 기흉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여학생에게 혹시는 기흉일 지도 모르니까..(기흉이 어떤 병인지 설명을 해 줬습니다. 갑자기 생길 수 있고..풍선이 터지듯이 폐에 구멍이 생겨 공기가 새 나가는데 그 공기가 흉곽내에 들어차니 폐는 쪼그라들고..어쩌구..) 간단하게 x-ray만 찍어보자고 했습니다. 힘든 검사도, 비싼 검사도 아니니 확인해 보는 게 좋겠다구요. 다행히도 쉽게 동의를 해주더군요.

X-ray를 보니 아! 정말 기흉입니다. 다행히 크지는 않아 증상이 심하지 않았던 것 뿐이고. 얼른 어머니께 전화통화를 하고서 지금 상황을 설명 드리고 x-ray 복사해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보냈습니다. 일단 입원치료가 무조건 필요하고 좋아지지 않으면 흉관삽입도 해야 할 테니까요.


미국 Medline plus, 좌측이 기흉이 일어난 폐, 흉관을 삽관해 펴주게 된다.


생각해 보면 아찔했던 순간이었습니다. 6개월전 찍은 사진이 괜찮았다고, 고등학생이 혼자 왔다고, 증상이 가볍다고 그냥 돌려보냈으면 한참 후에나 발견되었을 것이고 그만큼 회복되는 속도도 늦어졌을테니까요. 참으로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니, 가벼운 증상으로 병원을 갔는데 의사가 사진을 찍어보자고, 또는 혈액검사를 해 보자고 할 때는 '무조건 검사시켜 돈 벌려고 하는구나!'하고 의심하지 마시고 검사를 해야하는 설명을 잘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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