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그리고 어금니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2008년작 헬보이2는 국내에도 번역되어 출간된 만화 '헬보이'를 원작으로 하는 나름(?) 다크히어로물입니다. 영화 1편의 흥행에 힘입어 속편으로 제작된 헬보이2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만화와 이것저것 설정은 다른 점이 있지만 만화 원작자인 마이크 미뇰라의 참여로 인해 비록 세부적인 설정은 다를지라도 그 특유의 맛은 살아있는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마치 러닝타임 2시간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설명도 없이 스쳐지나가는 풍부한 배경 설정들과, 지저분한듯 괴기스러운듯 freak하면서도 스크린에서 살아숨쉬는 캐릭터들의 디자인들이 묘한 현실감을 자아냅니다.

설명이 길어지는 이유는? 넵. 제가 좋아하는 영화입니다.ㅋ

이 헬보이2가 요즘 케이블에서 하루가 멀다하게 틀어주네요. 벌써 두어번 이상은 본 듯 합니다. 그러다보니 영화 속의 몇몇 장면들에 대해 치과의사로써 몇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점들이 있어 글을 써 봅니다.


TRAUMA, 그리고 어금니

헬보이가 브룩클린교 아래 트롤 시장에서 누아다 왕자의 심복인 '윙크'라는 녀석과 싸우는 장면입니다. 이 녀석이 헬보이와 싸우는 도중에 거의 모든 영화에 클리셰처럼 나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도 바로 요 장면. 아.. 많이 봐오던 장면이죠?

주먹에 맞고 입안을 우물우물하다가 툭 뱉어내니 어금니가 하나 나오는 장면입니다. 이렇게 뱉어낸 어금니를 헬보이는 쿨하게 윙크한테 집어던져버립니다. 성질머리하고는..;

헬보이가 치아를 던져버리는 순간, 그걸 지켜보던 치과의사의 마음은 철렁했다는... 누가 따라할까봐 그렇기도 하지만, 다시 붙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소중한 신체 일부분이기 때문이죠. 흡사 전투중에 팔이 잘린 전사가 팔을 집어던지는 느낌.(이쯤되면 고어물? 크..) 뭐, 늘 그렇듯 영화니까 그럴 수 있는 장면인거고, 현실은 전혀 다르다지요.

만일에도 그런 일은 없어야하겠지만 혹시라도 괜한 시비에 휘말려서 한 대 맞게 되거나, 운동을 하다가 부딪히거나 넘어져서 입안에서 피와 침에 섞여 나온 단단한 하얀 조각이 나올 경우, 그런 정신 없는 와중에서도 싸움이나 운동, 야외 활동은 즉시 중단하시고 그 하얀 조각은 꼭 챙기고서, 최대한 빨리 구할 수 있는 생리 식염수, 혹은 입안(삼키지 않을 것이 전제될 경우), 우유 등에 담군 상태로 최대한 빨리 가까운 병원(심야에는 치과 야간 응급실을 운영할 정도의 큰 병원 - 이른바 종합병원,대학병원급)으로 가야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역시나 다치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 사전에 두경부에 충격이 충분히 예상되는 경우엔 마우스가드/마우스피스를 하는 것도 권장됩니다.


연구의 형태에 관계없이 치아 손상의 대부분은 앞니, 그 중에서도 위가운데 앞니에 주로 외상이 집중됩니다. 이는 물체가 부딪히기 쉬운 위치의 특성상 직접적인 손상의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한편 어금니가 충격에 통째로 빠지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뭅니다. 앞니와 달리 직접적 외상보다 간접적 외상을 주로 받게되는 어금니의 특징 때문입니다.

물론 심한 잇몸질환-이를테면, 핀셋으로 잡아당겨도 뽑힐 정도로 심한 이가 흔들거릴 정도의- 이 있으면 가능하겠지만, 헬보이는 명색이 젊고 강한 싸움꾼 주인공이니까 그건 아닐테지요. '이가 흔들릴 정도의 심한 치주질환을 앓고있는 지옥에서 온 악마의 자식'이란 설정은 좀 에러인 듯 하죠? ^^

역시나 헬보이가 뱉어낸 이가 '치석 하나 없이 새하얗고 건강한 뿌리 2개짜리 어금니'였듯이, 영화나 만화에서 주인공(혹은 악역)이 맞고서 뱉어내는 이들은 거의 항상 '뿌리까지 새하얗게 건강한 어금니'입니다. 그 주인공은 치석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흔들거리는 풍치를 갖기에는 너무나 잘생기고 힘잘쓰는 젊은 나이인 경우가 많구요. 아마 앞니가 빠지면, 앞으로의 장면들에서 졸지에 영구가 되어버리니까 어쩔 수 없이 어금니를 쓰는 듯 합니다.

한창 맞다가 이빨을 하나 툭 뱉어버리고서 회심의 통쾌한 반격을 하는 영화 속 장면에서 주인공을 클로즈업을 했더니 씩 웃는 장면에서 '이빨빠진 바보 영구'가 되어있더라...는 식이면 장르가 졸지에 코메디가 되어버리겠지요.



하지만 실제 현실은 좀 더 잔인합니다. 뭐, 희극과 비극은 늘 함께하듯 말이죠. 영화 속 주인공들은 앞니를 절대 다치지 않진만, 현실에서의 일반 사람들은 앞니부터 다치게 되니.

현실에서 치아의 손상을 받게된 환자들의 경우,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어금니가 아니라 주로 앞니에 손상을 받게 됩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집중되는 위가운데앞니는 심미성에 있어서 그야말로 크리티컬한 치아죠.

유소년기,청소년기에 집중되는 치아 손상 환자군의 주연령대로 인해, 치아 손상이 단순한 신체의 손상을 넘어서 성장과정에서 정서적, 심리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특히나 손상의 원인이 우발적인 사고가 아닌 폭행(특히나 가정 폭력)등의 원인인 경우에 더 심하고, 가정,경제적 환경 또는 유치/영구치 등으로 인한 치료의 제약 등등 손상부위에 대한 심미적인 치료를 받지 못한 상태로 있게되면 더욱 심하게 됩니다.

많은 연구들에서 보고되었듯 파절된 치아를 가진 어린이들(특히 여자아이들)은 웃거나 대화하며 치아를 보여주는 것,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즐기는 것등 대외적, 사회적 활동에 확연히 더 많은 문제를 드러내며, 치과 손상으로인해 다친 이후에도 고통과 근심을 느끼게 되며, 괴롭힘/놀림의 대상이 될 경우 낮은 자신감,자존감으로 이어지는 경향도 보고됩니다. 일종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같이, 각인과 같은 강력한 기억이나 불안, 우울을 겪기도 하구요.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서 치과의사에게는 최선의 치료와 환자/보호자와의 충분한 상담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최선의 진료를 가로막는 현실적인 제약들과 최선의 치료가 최고의 심미적 결과를 보장하지는 못하는 현대의학의 한계가 있기에,  개인적으로 치과의사로써 앞니를 다친 환자들, 특히 아이들이 헬보이처럼 '이 정도쯤이야~'라는 식으로 훌훌 털고 일어서기를 내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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