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갑자기 강릉에 가게 되었다. 내가 다닌 의대의 대빵 선배인 박남규선생님이 군의관으로 3년을 근무한 강릉국군병원에 간다며 같이 가자고 하였다. 작년에 병원을 옮기느라 나도 휴가를 가지 못하였고, 덕분에 우리 아이들도 놀러 가지를 못한 것이 못내 미안했었다. 그래서... '그럼 내가 가는 대신, 우리 아이들이랑 집사람 숙소도 해결해 줄껴?~~~' -> '응' ^^
 
그래서 갑자기 주말에 해야 할 일은 팽개치고 집사람과 큰아이만 데라고 강릉 경포대의 어느 펜션으로 가게 되었다. 나는 토요일에 학회가 있어서 새벽에 서울에 올라가야했고, 학회가 끝날 무렵 고속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갔다. 집사람과 큰아이는 차를 몰고 강릉으로 와서 만났다. 둘째는 성당에서 한 달 동안 예비 복사를 하고, 복사가 되는 기념식인가 뭔가를 해야 한다고 해서 청주에 남겨 놓았다. 말려도 지가 하겠다는데 뭐~~. 대신 즐겁게 놀다온 것을 보여줘야지~~.
 
늦게 도착한 나를 맞이한 두 분. 이미 거나하게 취해있었다.


[좌측이 박남규 선배, 우측이 우상수 중령]
 

펜션으로 회를 떠오고 고기를 구워다 조촐하게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셨다. 거의 두 분의 15년 전 군대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남규형이 군의관 대위로 국군강릉병원에서 진료부장이란 보직으로 일하였고, 우측의 당시 우상수 대위는 시설과장으로 근무하였다고 한다. 둘이 싸우기도 엄청 싸우고... 한번은 뭣 때문에 분란이 생겨, 진료실 안에서 대못으로 문에 못질을 해놓고 원장님께 시위를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시설과장인 당시 우대위께서 기구를 동원하여 문을 열고(부수고?) 들어갔다고.... ^^;
 
관사의 바로 맞은 편 집에 살아서 부부끼리 친했다고 한다. 저녁에 할 일 없으면 소주를 까며 지내셨다나 뭐라나~. 남자들 군대이야기하면 하는 뻔 한 이야기들을 감격에 겨워하시는 두 명의 40대 중후반 아저씨들을 모시고 듣는 40대 초반의 심정은... 나름 재미있었다.
 
사람 앞에 두고 칭찬하는 것이 낮 가렵기는 하지만, 남규형은 우대위가 지금의 중령까지 진급한 것을 보며, '아직 대한민국 군대가 죽지 않았다.'는 말을 연거푸 하셨다. 우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조직에서 살아 남아야하는데, 우중령이 여기까지 올라온 것을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아무리 대한민국 군대가 문제가 많다고 하여도, 이런 것을 보면 희망이 있다고 침 튀어가며 술이 취할수록 계속 말씀하셨다.
 
당시 국군강릉병원의 병원장님은 어디서 잘 계신지를 남규형이 물어보았는데, 지금은 별 2개를 달고 국군의무사령부 소장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것도 바로 지난 목요일에. 남규형이나 우중위님이나 감격에 겨워서 또다시 군대 이야기~~~~. 좋은 군의관 넘, 나쁜 넘, 이상한 넘.....
 
그러던 중...  이 자리에 없는 사람에게 전화하는기 신공이 나왔다.
 
별 2개를 다신지 2일된 소장님께 전화를 하였다. '남택서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저 00년도 강릉국군병원 진료부장으로 근무한 대위 박남규입니다. 충성~~~. 그간 무고하게 잘 지내셨습니까? 소장으로 임관하심을 축하드립니다. 충성~~~~' 이어지는 충성~, 충성~, 축하~, 축하~~~~~. 이러다 이 사람들 눈물을 흘리지... 싶었다. 군대를 안 다녀온 나로서도 별이 얼마나 높은지는 대충 알 것 같은데, 이러다 퇴역한 대위지만 경을 치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 현역 중령님은 전화를 바꾸거나 옆에서 '끽'소리도 내지 않고 정자세를 하고 계셨다.
 
이렇게 저렇게 아직도 쌀쌀한 강릉, 경포대의 밤은 깊어만 갔고... 사진의 오른쪽에 찍히지는 않았지만, 공병 출신의 젊은 중위님의 재미난 퍼포먼스도 즐길 수 있었다.
 
다음날(어제, 일요일), 밀린 병원과 학교일을 생각하니 두 발을 뻗고 있을 수 없어, 아침 일찍 나와 바닷가를 잠깐 거닐고, 참소리박물관에 들려 큰아이 구경시켜주고, 청주로 돌아 왔다. 참소리박물관 관장님이 암으로 건강이 많이 안 좋다고 들었다. 부디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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