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

블로그를 다시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 글이 무색하게 그 이후로 글쓰기가 뜸했지요. 세상에 안 바쁜 사람이 어디 있나요. 이렇게 양치기 소년이 되어가나 봅니다. 이런저런 일들로 바쁘다는 것은 아무래도 그저 핑계가 되겠지만, 와이프의 임신으로 내년에 아마도 제가 애 아빠가 되리라는 점이 다소간의 이유는 될 듯합니다.

지난주 금요일 오전에 산부인과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 말씀도 듣고 초음파 사진을 보며 기쁜 것도 잠시, 주치의 선생님이 날짜주기로 계산한 것과 비교했을 때 초음파 사진 상의 아기가 너무 작다고 잘못될 확률이 10프로는 된다고, 다음 주에 다시 확인하기 전까지는 지금 아는 사람까지만 알고 있고 주변에 더는 알리지 말라고 말씀하시네요.

이 무슨 청천 벽력같은 말씀이신가 싶기도 하지만 확률은 확률일 뿐이라고 괜히 겁준다고 애써 가볍게 흘려보려고 하고... 아이를 만들고, 낳고, 키우는 동안에 이 정도도 마음 졸이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으랴 는 생각에 기운을 내봅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오후 진료를 들어갑니다.

꼭 이런 날에는 보는 환자들이 늘 내 문제와 겹치기 마련입니다. 아니, 아마 내가 환자들 안에서 내 고민을 보려하고  발견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공교롭게 임신 중에 내원했다가 계획만 세워놓고 출산 후 직장에 다시 나가기 전에 치과치료를 몰아서 받던 여성 환자의 치료 마지막 날입니다. 신경치료도 잘 되었고, 보철 치료도 잘 되었고... 공들여 치료한 보람이 있게 환자와의 관계가 좋아서 치료 종료가 섭섭할 만큼 뿌듯합니다.

맨 처음 어금니가 금이 간 상태로 내원하셔서 신경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걱정하시는 그 분께 임산부에게 가능한 치과 치료가 어떠어떠하다고 잔뜩 설명 드린 기억이 납니다. 한창 임신과 치과치료를 관련해서 여기에 글로 나름대로 정리하면서 최근  논문을 수십 편은 뒤지면서 관심 갖고 공부할 때죠.
- http://blog.naver.com/morua/20107902774
- http://blog.naver.com/morua/20108308727
- http://blog.naver.com/morua/20109435692

본인이 임산부다라는 말에 신이 나서 이것저것 잔뜩 주워 담았던 게 생각납니다. 사실 작년, 그리고 올해 왔던 그 많은 임산부들에게 늘 그렇게 했던 것 같네요. 내 딴에는 설명해주고 싶고 설명해야할게 너무 많았으니깐.

더 공교롭게도 그 바로 다음 환자가 신경치료를 받으면서 임신을 계획 중이던 여성 환자네요. 몇 달 간의 시도를 하던 끝에 드디어 임신에 성공했다고, 치과치료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보시네요.

무슨 산부인과 옆에서 치과 하는 것도 아니고, 연달아 산모와 임산부가 번갈아 오는 건 흔한 일은 아닙니다. 항상 임상은 지루한 일상의  반복 같다가도 어느 순간 휘몰아쳐서 다그치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르침을 줍니다.

"축하합니다."

나도 모르게 나온 첫 마디에 내 스스로 가슴 속에서 뭔가 울컥하는 느낌이듭니다. 아무리 환자는 치과 유닛체어에 앉아있고 나는 흰 가운을 입고서 만난 사이지만, 자신의 임신 사실을 말하는 임산부한테 건네야 할 첫마디가 무엇인지 깨닫는 게 너무 오래 걸렸네요.

자기 와이프가 임신을 하고 아빠가 되는 과정에서의 마음고생을 시작한 후에야 느낄 수 있는 게 있는 것인지.
에이. 그것보다는 그저 내가 둔해서 그런 듯 싶기도 하고.
 

2줄 요약
1. 세상의 모든 임산부들, 그리고 앞으로도 내 환자로 올 모든 임산부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2. 치과와 임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축하한 다음에 설명해도 되더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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