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모 대학병원에서 늦은 조치로 인하여 장중첩증으로 어린이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를 교훈으로 응급의료체계, 환자이송체계를 점검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런데...
 
역시나 공무원들의 관료주의는 탁상행정을 넘어 사회주의 통제형태를 보이고 있다.
 
'중증응급환자를 위한 실시간 응급의료 정보시스템 체계 구축'이란 명목으로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을 살펴보자.
 
1. 11개 중증질환과 관련돼 전문 과목의 당직 일을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입력
2. 1339에 환자가 보고되면, '응급실의 전문의를 거치지 않고,' 막바로 해당과의 당직의에게 전화
3. 30분 내로 응급시술, 수술이 가능한지 확인

위의 내용을 보면 '빨리빨리'라서 좋아 보일 수도 있다. 딱 여기까지... 좋아 보일 뿐,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유를 살펴보자

1. 식도이물이 추정되는 환자가 있거나 정신질환자로 의심되는 환자가 응급실에 오지도 않았는데, 하루 종일 진료하고 다음날 진료를 또 해야 하는 집에서 자고 있는 전문의를 깨워서 '당신 30분 내로 병원에 나올 거야 말 거야?'를 묻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나?

식도이물이 정말 있는지, 그리고 응급실에 와서 수액을 달거나 엑스레이 검사를 하고, 목에 걸린 것이면 응급실에 그냥 후두경으로 빼면 되는 것이 대부분이며, 정말 큰 식도이물은 제거 시 천공의 위험으로 흉부외과와 협의를 해야 하고 CT 등의 사전 검사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8시간 내 제거를 교과서 및 학회에서도 권고하는 것이며, 실제로 임상에서도 무조건 내시경을 들이밀다가 환자를 죽이지 말고 사전 검사를 철저히 하도록 교육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응급실에 환자가 올지 안 올지도 모르고 있으며, 정말 식도이물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시도 때도 없이 전화질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의사의 기본권은 안중에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오는 전화 중 상당수는 '장난전화'처럼 실제로 환자가 오지도 않는 실정이라고 한다. 뇌출혈이나 심근경색 같은 촌각을 다투는 질환이 아닌 거의 대부분의 질환을 이런 식으로 분류하는 덕에.... 그럼 간호사, 기사 등의 의료 보조 인력들 또한 밤새 잠을 자지 말거나, 밤에 근무하는 직원과 의사를 2배씩 뽑으라는 말인가?
 
더구나, 응급의학과와 응급실의 존재가치는 무엇인가? 이런 식으로 제도를 운영하려면 응급의학과는 그냥 폐지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뭐 하러 밤에 응급실에 앉아있으란 말인가?
 
2. 지역에 따라서 1339의 직원들의 횡포는 편차가 있는데... 내가 아는 어느 병원에 전화질을 하는 직원은 평일 낮에 전화를 해서는 '##대학병원 응급실 내시경 담당의사세요?', '예.' 그럼 그냥 전화를 뚝 끊는다고 한다. 근무시간에 놀고 있는 의사는 거의 없다. 내시경을 하고 있거나, 수술을 하고 있거나, 외래진료를 하거나, 회진을 돌고 있다. 그런데 하루에도 몇 통씩 이런 전화를 받고 있다. 아니, 낮에 응급내시경이 불가능하여 환자가 죽은 사례가 있기라도 한가? 당직의사가 있다하여도 내시경실 근무 중인 의사가 응급실환자는 내시경을 하기 마련인데, 공무원들의 감시전화질이 무슨 환자 진료에 보탬이 된단 말인가?
 
다른 곳에서는 한밤중에 전화를 해서는 '당신 지금 30분 내로 나와서 내시경 할 수 있어요?' '???' '해요 못해요?'
이런다고 한다.
 
나는 단연코 전 세계의 응급의료 선진국 어느 곳도 이따위로 응급실과 관련된 의사들을 범죄자 취급하고 괴롭히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충북으로 예를 든다며, '소아외과'를 전공한 외과의사가 단 한명이다. 그런데 이 의사에게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질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또한 응급실과 연관된 의사들에게 모두 이런 식으로 한다고 상상을 해보자.
 
가뜩이나 3D과를 기피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아예 모두 사표내고 그만 두란 말인가? 지금 하고 있는 사람들은 도망을 못가지만, 앞으로 응급환자와 연관된 길을 가는 사람의 씨를 말리자는 것인가?
 
가장 큰 문제는 쓸데없는 전화질로 중요한 행정력과 의사인력을 소모시킬 것이 아니라, 실제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응급내시경이 필요하지 않으며 대부분 환자를 위험에 빠뜨려서 진중해야할 질환의 치료들을 30분이란 전혀 근거 없는 시간을 정해놓고, 대입 시험처럼 통제하는 우스운 발상이 어디서 나왔는지 너무 한심하다. 이런 무책임한 보건복지부의 행정을 답습하는 지자체들과 부화뇌동하는 각 병원들의 행태 또한 반성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1339와 복지부의 응급의료에 대한 투자미비와 미숙한 행정으로 벌어진 여러 사태들을 개별 병원의 의사들의 잘못으로 전가시키며, 전화질로 때우려 해서는 응급환자들에게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응급진료와 수술, 시술 등에 대한 의료수가의 합리화와 인력에 대한 보강은 하지 않으며, 거의 대부분의 질환을 응급환자인 것처럼 조작하고 의사/간호사/기사들을 장난전화로 뺑뺑이 돌리는 것, 이런 무소불위의 전화질을 거침없이 행하는 사회주의적 발상... 도대체 너무 황당하여 어디부터 지적해야할지도 모르겠다.
 
각 전문과별 질환의 적정 진료시간과 응급시술이 필요한 범위 등은 전문 학회에 문의라도 하였을까? 아니라는데 10표.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통제하는 것도 어느 정도가 있다. 이렇게 근거 없이 규칙을 만들어 국민을 통제하는 것이 건전 우파를 자처하는 한나라당과 진수희복지부장관의 평소 신념인가?



추신 : 어느 공무원이 입안해서 강행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 30분이란 망상은 아마도 심근경색과 뇌졸증에서 응급실 도착에서 혈관조영술까지의 시간이 빠를수록 좋아서 30분 내로 시술하는 것이 이상적이란 것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질환에 따라 치료방법이 다르듯이, 질환에 따라 적절한 검사와 조치의 우선순위는 완전히 다르다. 현 보건복지부의 1339 전화질은 '프로쿠루스테스의 침대'의 횡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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