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진료는 절대 항암치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진료 중 발생하는 무수한 사건들은 다른 과 선생님들과의 협진을 통해 다차원으로 진행되어야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소위 '다학제간 진료'라고 표방하지만 실제 다학제간 진료라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병원의 뒷받침도 있어야 하고 의료진간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 하며 모든 문제를 환자 중심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진료의 철학이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재 진료과정이 다 이렇게 이상적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협진을 내 보면 자기가 처음부터 보던 환자는 아니지만 감쪽같은 시술,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방법을 적용하여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켜 주시는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다. 물론 모든 선생님이 그렇지는 않는다.

얼마 전 방사선종양학과에 협진을 드린 환자가 있었다. 환자는 다른 병원에서 유방암 치료를 10년 이상 받고 우리병원에 오셨다. 치료의 무기가 항암제인 나로서는, 그동안 환자가 쓴 항암치료제를 보니, 나에게 더 이상의 뾰족한 대안이 없을 만큼 항암제를 거의 다 쓰고 온 상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전이가 피부에만 국한된 상태이다. 기타 신체 상태도 양호하다.

그러나 피부로의 전이는 매우 심각한 상태. 진물도 많이 흐르고 그로 인해 냄새도 많이 나고 일상생활도 어려운 지경이다. 병이 번져가는 것, 악화되어 가는 것이 눈으로 확인된다.

병이 진행되고 있는 피부 면적이 넓어 방사선 치료가 가능할까 싶었지만 일단 항암제를 선택하기 보다는 방사선 치료로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이 있는지 의견을 여쭈었다. 방사선 치료를 하시겠다는 답변이 왔는데, 실재 환자의 병변을 다 커버하지는 않는다고 하셨다.

일단 치료를 시작한 환자, 4번의 방사선 치료를 받고 내 외래로 오셨다. 방사선이 들어가는 쪽 팔이 많이 부어서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고 힘들다고 오셨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몇 번 치료를 안했는데도, 피부 상태가 좋아진 것 같다. 벌겋게 짓물렀던 피부들의 활성도가 좀 잠잠해 진 것 같은 느낌이다.

진료를 담당하시는 방사선 종양학과 선생님을 연결시켜 드렸다. 선생님은 환자에 대해 몇 가지 코멘트를 하시면서, 반응을 보아가며 방사선 치료가 도움이 되는 걸 확인하면 치료 범위를 확대하시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농담처럼 전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기구를 이용해서 치료하고 계신다는 말씀을 하신다.

어떤 기구인지 궁금해서 환자 방사선 치료시간에 가보았다. 저녁 8시가 넘는 시간, 이 환자의 치료는 좀 특수해서 늦은 시간으로 치료시간이 잡혀있다.

피부에는 방사선이 들어가지만 다른 장기나 병이 없는 곳으로는 방사선이 들어가지 않는 게 좋고, 입체적으로 방사선이 골고루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커다란 상자에 물을 채우고 환자는 비닐로 둘러싼 팔을 그 상자 안에 넣은 채 방사선 치료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런 상자와 구조를 이용할 경우 방사선이 좀 더 골고루 피부에 들어갈 수 있어서 방사선 용량을 높이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해 주신다.

나는 방사선의 전문가가 아니라 정확하게 잘은 모르겠지만 환자의 조건을 고려하여 상자를 제작하고 특수 과정을 접목해서 환자에게 딱 맞는 방법을 찾아 치료해주시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항암제에는 거의 반응하지 않는, 서서히 자라는 연골육종을 가지고 10년 이상 지내오신 환자분.그동안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육종을 제거하기 위해 4번이나 수술을 했다. 나에게 감동을 주신 윗 선생님이 방사선 치료도 하셨다. 원래 방사선에는 별로 효과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는 병인 것을 알지만, 자꾸 재발을 하니 계속 수술을 할 수는 없고 해서, 시도해보셨던 것 같다.

수술을 하면 종양은 제거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어디선가 남아있던 종양들이 모여 재발로 나타난다. 환자도 자신의 병과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런 시간이 수년간 지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종양이 자라면서 주위 방광과 대장을 침범하였다. 병이 침범하니 환자는 3개월 넘게 설사를 하는 바람에 몸무게가 10kg이 넘게 빠져서 아주 쇠약해 졌다. 종양이 커지면서 사타구니 쪽에 자리를 잡아 혈액순환이 되지 않으니 다리도 퉁퉁 붓는다. 병이 나빠지면서 피부와 누공이 생겨 사타구니 쪽으로 생긴 누공으로 변이 새어 나온다. 함께 진료해 오신 비뇨기관, 정형외과, 방사선 종양학과에서 모두 난색을 표한다. 이번에는 외과 선생님께 도움을 청한다. 종양 덩어리 자체는 주위에 혈관이 많아 수술적으로 건드리기는 어렵다고 하신다. 병변보다 위쪽에 있는 장을 밖으로 빼내는 장루 수술을 해 주셨다.

환자는 변을 항문으로 보지 못하고 장루로 보게 되었지만, 병변을 더 이상 건드리지 않으니 설사도 안하고 병변의 염증도 가라앉기 시작한다. 알부민 수치가 1.5 까지 떨어져서 알부민 주사를 맞아도 그때뿐이던 그가, 잘 먹고 통증도 가라않고 변 상태도 설사가 아닌 형태로 보면서 몸무게가 늘기 시작한다. 잘 드시니 알부민도 3.0이 넘는다. 아파서 걷지도 못하던 그가 장루 수술 후 자기 힘으로 걸어 외래를 올 수 있게 되었다.

의뢰된 환자를 위해 여러 가지 고민을 하여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선생님을 만나면 너무너무 고맙다. 그리고 이미 표준적인 어떤 방법을 도입하기 어려운 난치성 환자들을 위해 위험을 감안하고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여 환자 상태를 호전시켜주시는 걸 보면 의사인 나로서 큰 감동을 받는다. 나는 생각도 못했던 새로운 방법, 그만큼 손이 더 가는데도, 환자를 위해 아이디어를 내 주신다.

개인별 맞춤 치료라는 게 반드시 새로운 장비, 새로운 신약으로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걸 배울 수 있다.

정작 환자는 그러한 시도가 얼마나 새롭고 성의 있는 진료인지 잘 모를 수도 있다.
굳이 환자가 꼭 알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말하고 싶다. '정말 최고의 치료였다고요!'

나도 이런 선생님들처럼
성의 있고 최선을 다하며 효과적인 치료를 할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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