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잘 안 들리는 환자분이라 늘 소리를 꽥꽥 지르며 설명해야 했다.
오늘 회진에는 할 얘기가 많은데 소리를 꽥꽥 지르며 설명하게 되면
병실 내 다른 환자들도 자연히 우리 환자의 형편을 알게 되니,
소리 지르며 얘기할 조용한 공간을 찾아 환자를 모시고 갔다. 특별히 상담실이 없으니 찾은 공간이 하필 임종 직전에 이용하게 되는 소망실이다.

환자는 1979년 왼쪽 유방암 1998년에 오른쪽 유방암으로 각각 수술하셨다.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각각.
그리고 2007년 재발되어, 이제까지 여러 약제를 시도하며 치료받으셨다.
HER2 양성인데, HER2를 타겟으로 하는 표적치료제에 별로 반응이 없으셨다.

오히려 호르몬제에 1년 이상 병이 진행되지 않고 잘 견디신 기간도 있고,
독성이 강한 아드리아마신 투여에 효과가 좋았다. 그러나 심장독성 때문에 아드리아마이신은 오래 쓸 수 없었다.
그렇게 효과가 있다가도 저항성이 생기면 다시 병이 나빠지기를 반복하며 지난 4년 동안 지내셨다.

기록으로만 보면 무시무시하다. 왼쪽 폐에 물이 차서 유착술도 받고, 뇌와 뇌막으로도 전이가 되어 머리에 방사선치료도 받았다. 이번에 찍은 복부 CT를 보니 간에 병이 너무 나빠져서 크기도 커졌거니와 간 기능이 남아있을 것 같지 않다. 오늘 황달 수치가 4가 넘었고 간수치는 1000 이 넘었다.

그래도 환자는 겉으로 보면 그럭저럭 괜찮았다. 뇌에 전이되었을 때도, 그냥 좀 어지러운 정도. 폐에 물이 차도 걸으면 좀 숨차는 정도. 절대 입원 안하려고 했다. 본인 연세도 60이 넘었는데 90이 넘은 노모를 본인이 봉양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파킨슨병에 걸려 잘 움직이지 못하는 노모를 본인 혼자 모시고 계시기 때문에 입원하시기 싫다고 했다.

병이 나빠지고 있으니 약을 바꾸겠다고 하면, '알아서 잘 해줘. 어떻게 되겠지 뭐. 병이 왜 이래? 죽는 것도 아니고...'라며 너무나 흔연스럽게 병에 대처해오셨다.

환자분 성향이 긍정적이고, 의료진에게도 호의적이고, 병도 꿋꿋하게 잘 이겨내시고, 정말 '좋은 환자'셨다. 그런 분께 오늘은 더 이상 항암치료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 조용한 공간을 찾으려니 마음이 별로 안 좋았다.

환자 귀 상태가 안 좋으니 소리를 꽥꽥 지르며 더 이상 치료하는 게 도움이 안 될 거라는 둥, 앞으로 병원에서는 보조적 치료를 하며 경과를 보겠다는 둥 (사실 이번에는 환자 상태가 급격히 좋지 않아 병원을 왕래할 컨디션도 안 된다) 이런 '선고' 에 해당하는 설명을 하는 게 참으로 부적절해 보였다.

간이 커져서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숨이 차다. 왼쪽 폐로 물이 차서 숨이 찬 것도 있겠지만...
환자와 이야기를 다 나누고 - 아주 솔직히

환자분을 모시고 다시 병실로 천천히 돌아오는데
"어쩜 이렇게 담담할까? 아무렇지도 않아. 나 얼마나 남은거야? 신변정리를 해야지..."
"그래도 다행이야. 두 달 전에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내가 먼저 안가서. 불효할 뻔 했어"
"나 그래도 선생님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갑자기 마음에 싸한 바람이 불면서 뭔가 울컥한 것이 올라오려고 한다.
아직 쓸 수 있는 항암제가 꽤 많이 남아있는데, 황달 때문에 할 수 없다는 게 속상하다.
4기 환자가 말기 환자가 될 때, CT를 찍어보지 않아도 환자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항암치료 못하겠구나... 그냥 보고 얘기 나눠보면 알 것 같다.

사실 앞으로 1달 넘기시기 어려울 것 같은데
2달쯤 되지 않을까요? 라고 거짓말을 했다.
환자는 아직 특별한 통증이 없으시다.
내 거짓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통증 없이 최대한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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