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반복되는 일상에 삶이 무료해 질 때가 있다...
나 또한 봄이 지나고...
무더운 여름이 훌쩍 다가온 순간...
반복되는 나날에 슬슬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도 세상이 무심하지 않은 것은...
그런 반복되는 삶에서 무언가 교훈을 준다는 것...
여튼 그랬다...
그 날도 출근을 하고...
밀려드는 검진자들에게 시달리다가...
사업장 방문을 하기 위해... 차에 올랐다...

적게는 두 군데에서 네 군데 까지...
남동 공단에서 멀리는 주안까지...
이렇게 외근(?) 하는 것이 내 삶의 숙명...
그 날도... 잡혀있는 스케줄을 수행하기 위해 차를 타고 가는데...
간호사님께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신다...

"지금 가시는 사업장 회장님 혹시 기억나세요?
그 분 있으시잖아요 아드님이 많이 편찮으시다고 하셨던 분..."

3개월 만에 가는 것이기에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기억을 더듬어 한참을 떠올려보니...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아 그 나이 많으신 회장님이시죠? 전에 아드님 이야기 한참 했었던..."

그랬다...
건강 상담을 위해 사업장을 방문하는 경우에 대부분의 경우는 근로자들과 만나는 경우가 다수 였는데, 이곳의 경우 회장님과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었기에...
그.래.도. 기억을 해낼 수 있었던 것...
당시에 대장암으로 아드님이 입원해 계셔서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자 이어지는 말...

"그 분 아드님이 돌아가셨데요... 갑자기... 그래서 참 오늘 상담 진행이 잘 될지 모르겠네요..."

그랬다... 불과 며칠 전에 그런 일을 겪으시고...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할 것은 보지 않아도 짐작이 되었다...

"혹시 회장님 뵙게 되면 선생님이 위로를 잘 해드려야겠어요..."

그렇게 부담을 느끼며 가는 시간은 또 왜 그리도 길게 느껴지던지......

회사에 도착해 보건 관리를 담당하시는 분과 만나자 마자...
주제가 자연스럽게 그 쪽으로 넘어갔다...

회장님이 너무 충격을 받으셔서... 체중이 쏙 빠지셨다고...
발인이 불과 이틀 전이었는데도... 출근을 하셨다고 하신다...

오늘은 뵙지 않으시길 바랬지만...
불편한 현실이 나의 기원처럼 될 리 없다...

상담을 마치고 주섬주섬 정리를 하고 있는데, 회장님이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3초의 정적이 흐르고...
일견 보기에도 예전의 활달하시던 눈빛이 사라진 회장님의 모습...
주름이 그날따라 더 깊어 보였던 것은 왜였을까?

정적을 깨신 것은 역시나... 회장님이셨다...

"아 일이 그렇게 되었어요..."

단 한 마디가 그렇게 무겁게 다가올 수 있을까?
어렵게 말을 이어 나가신다...

"갑자기 안 좋다고... 검사 좀 해보겠다고...
입원 하고 일주일 남짓 있었나... 그런데... 그렇게 되었어요..."

무거운 분위기에...
그저 회장님의 입만 바라볼 뿐이다...

"그래요...
이런 일이 지나고 보니 후회가 되는 일이 참 많아요......."

"아니... 그냥 검사 해 보고...
이상이 있으면 이상이 있나보다... 하면 되지...
뭐하려고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고...
아니 그렇잖아요?
전이가 잘 되는 거라면서요...
조직검사 해서 전이가 되었다... 확인하면 뭐 해요?
뭐 그냥 되었나보다 하고 마는 거지...
그걸 굳이 하겠다고 해본 게..."

"그리고 항암 치료 인가...
그거 한다고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아니 나는 뭐라도 좀 먹이고 싶은데...
우리들 생각이 그렇잖아요...
몸이 이겨내려면 뭐라도 먹어야 힘을 낼 텐데...
아니 저리 갈 거면 뭐하려고 그렇게 먹지도 못 하게 했는지...
그게 후회가 되요...
말을 너무 잘 들었던 거지..."

항암 치료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주변인들이 보기에 얼마나 안 되었을까?
물론 나는 의료인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다 보니...
치료 순응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상황에서 무어라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저 그 날 만큼은 그 감정 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의사들은 왜 그렇게도 시간이 없고 바쁜지...
모 병원의 모 교수가 명의라는데...
그래서 그리로 갔어요...
가서 하지 말라는 거 하지 말고... 말 잘 들었지...
그런데 교수라는 양반은 얼굴이 보이지가 않아...
아니 우리 같으면 말이야...
와서 간단히 말이라도 해주고...
의욕이라도 주고 해야 뭐 이 사람에게 몸을 맡겨야겠다 생각이 들것 아니야...
그런데... 뭐 만나보려고 하면 만나주기를 하나...
이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는 학회를 갔데...
그냥 뭐 치료 하겠다는 생각이 없는 거지...
지나고 나니 그런 것도 다 후회가 돼..."

순간 흰 가운을 입고 있는 내 자신이 얼마나 민망했던가...
바쁜 일상을 보낸다고 백 번 말을 해 본들...
환자가 자신을 맡기는 의사는 한 사람인 것...
우리가 바쁘다는 이유로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우리네 집단에 대한 따가운 시선과 비판은... 어떻게 본다면...
우리의 선배들... 나 자신이 만들어 온 것은 아니었을까?

말 한마디 말 한마디에도 웃고 우는 것이 우리네 마음일진데 말이다.......

회장님께서는 눈물이 맺힌 눈으로 말씀을 이어가셨다...

"주변에 보면 식이 조절만 하고도 낫는 사람도 있던데...
우리 아들은 그런 것 하나 못 하고 그런 게 너무 후회가 돼...
말을 잘 들으면 낫기라도 하던가...
젊은데... 이렇게 빨리 데려 가는 게 너무 후회가 돼..."

먹먹해졌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 건가...

회장님의 길게 말씀을 하시는 동안...
무거운 공기는 방 안을...
그리고 내 주변을 너무나도 누르고 있더라...
거기에...
반성의 마음 또한.......

"늙은 사람이 너무 말이 많았어...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데...
참 세상일이 쉽지가 않아......."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남기시고 돌아서는 모습이...
왜 그리도 작게만 느껴지던가...
불현 듯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버님과...
오매불망 나의 안부를 걱정하고 계실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참으로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었다...

'당신들의 뒷모습은 항상 나보다 컸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내가 가야 하는 일정 중 하나였을 뿐인데...
들어가기 전과 후의 마음이 확연히 달라지더라...
부끄럽고... 한심하고...
복잡한 감정.........

가장 좋은 스승은 사람...
그리고 세상인가보다...
그렇게 배워 나간다... 나 자신은 여전히 부족한 의사라는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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