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창원 쓰리빌리언 대표

쓰리빌리언을 창업하고 얼마 되지 않은 2017년 9월 글로벌 최대의 희귀질환 단체 글로벌진스(Global Genes)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도시 어바인(Irvine)에서 개최한 희귀질환 환우회 행사(Rare patient advocacy summit)에 희귀질환 진단 혁신 기술에 대한 발표 기회를 얻어 참가한 적이 있다.

환자와 환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 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제약사들, 진단회사들, 학계의 스타 과학자들이 총출동해 희귀질환 기초 과학 연구에서부터 최신 치료제 개발에 대한 내용들까지 수준 높게 다루어지는 것을 보고 환자와 환자 가족들의 희귀질환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하고, 최신 의학 연구에 대한 이해도 자체도 왠만한 전문가 못지 않다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생각해 보면,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의 희귀질환에 대한 높은 전문성은 너무나 당연하다. 고통을 겪고 있는 가족이 빠르게 진단되고 치료될 수 있도록 최신 의학 연구 논문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정보를 섭렵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능한 방법들을 하나씩 시도해 나가는 것이 환자를 위한 최선일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성을 갖춘 환자 가족들은 환자 단체를 만들고 가족이 겪고 있는 희귀질환에 대한 치료제 개발을 위해 다양한 자선 활동을 통한 자금을 확보한 후, 필요한 기초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고 임상을 위한 환자 모집을 협력하고, 치료제 개발사에 투자를 통해 지원하는 등 더욱 직접적으로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을 위한 활동을 공격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2003년 척수성 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 SMA)에 걸린 딸 아야(Arya)를 위해 부모가 설립한 SMA재단은 제약사 PTC 및 로슈(Roche)와 협력해 치료제 에브리스디(Evrysdi)의 개발에 성공했다. SMA 재단은 에브리스디의 성공을 통해 확보된 자금을 바탕으로, 2021년 SMA를 포함한 신경 근육 관련 희귀질환 연구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신경 근육 희귀질환에 대한 기초 의학 및 치료제 개발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최대 약 780억원($60M)의 자금을 지원해 더 많은 희귀질환 치료제가 개발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실명퇴치재단(Foundation for fighting blindness)’은 희귀 망막 질환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 기술 개발을 하는 스타트업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망막변성펀드(Retinal degeneration fund)’를 만들어 투자를 통해 지원을 하기 시작했는데, 2018년 이 펀드를 통해 약 250억($19M)를 지원 받은 오퍼스 제네틱스(Opus genetics)는 현재 2개의 희귀 망막 질환에 대한 유전자 치료제 개발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거대축삭신경병증(giant axonal neuropathy)은 현재까지 50명 환자만 보고 되었을 정도로 희귀질환 중에서도 매우 희귀한 질병이다. 이렇게 희귀한 질병의 경우,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의향을 가진 제약사를 찾기도 어렵고, 그런 제약사에 투자를 하려는 기관을 찾기도 어려워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 자체를 시작하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한다.

거대축삭신경병증에 걸린 딸 해나(Hannah)를 위해 부모는 이 질병을 위한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 의향이 있는 곳에 자금을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해나희망펀드(Hannah’s Hope Fund)’를 만들고 다양한 행사를 통해 80억의 자금을 확보했고, 당시 거대축삭신경병증 유전자치료제 연구를 하고 있던 유일한 기관이었던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연구실에 자금을 지원했다. 

3년 후인 2015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유전자치료제는 FDA의 임상승인을 받고 비로소 임상 시험군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제를 처방할 수 있게 되었고, 해나는 치료제 처방을 받은 첫번째 환자가 될 수 있었다.

위에 소개한 3개의 성공적인 환자단체 주도 신약개발 사례의 핵심을 뽑아 보자. 첫번째로, 환자단체는 자금을 마련했다. 다양한 방식의 기부금 마련 행사를 통해 적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의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첫번째 단계였다. 두번째, 타겟하는 희귀질병의 치료제 개발 연구를 진행 중이면서 자금 지원이 필요한 기업이나 대학 연구실을 찾았다. 세번째, 자금 지원을 했다.

그런데 자금 지원에 특이한 점이 있는데, 두번째 단계에서 찾은 연구기관이 여러 군데라면 최대한 많은 기관을 지원했다는 점이다.

왜 그 중에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곳을 선별해 지원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기관을 지원했을까?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가족을 살리기 위해선 최대한 빠르게 치료제가 개발되어 처방되어야 한다. 소아희귀질환의 경우 수년 내로 치료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자금을 아껴가며 하나를 지원해 실패하면, 다시 다른 치료제 연구를 지원하는 식으로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 동시에 가능한 많은 치료제 연구를 지원해 그 중 하나라도 임상시험 단계까지 가는데 성공, 내 가족이 처방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환자 단체는 여러 연구기관을 동시에 지원하는 편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국내에도 여러 희귀질환 환자 단체들이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의 단체들처럼 치료제 개발기업이나 연구기관에 자금 지원을 하거나 투자를 해서 치료제 개발에 직접적으로 관여해 성공적인 진전을 이뤄낸 사례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기금을 마련 하는 것도 쉽지 않고, 글로벌 전역을 뒤져 치료제 개발 연구를 하는 기업이나 연구 기관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런일에 풀타임으로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환자 가족도 흔치 않다. 희귀질환 환자들이 겪는 문제가 무엇이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우선 희귀질환을 알리고, 환자와 환자가족들이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사회에 대중에 알리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좋지 않을까? 실제로 해외의 성공적인 환자 단체들도 모두 이 단계부터 시작했다. 해나희망펀드 기금 모금을 위해 부모는 해나를 위한 5km 달리기 챌린지, 골프 토너먼트, 갈라쇼 등 다양한 기금 모금 이벤트를 개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꾸준히 대중에 알렸고, 이를 통해 초기 80억원의 기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마침, 다음주 화요일인 2월 28일은 세계 희귀질환의 날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희귀질환에 대해 인식하고, 환자들을 위해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알게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쓰리빌리언 금창원 대표
쓰리빌리언 금창원 대표

쓰리빌리언은 인공지능 유전변이 해석 기술을 기반으로 희귀질환 유전자검사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현재 50개 이상의 국가에 인공지능 기반 희귀질환 유전자 진단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금창원 대표가 지난 2016년 창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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