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요양병원협회 노동훈 홍보위원장

평소 자문을 받던 노무사에게 전화가 왔다. 말기 암으로 고생하는 아버지가 계실 요양병원을 찾는다고 했다. 부산대병원에서 추천해준 인창요양병원 호스피스병동에 입원했다. 인창요양병원은 주 3회 면회가 가능하고 대중교통이 편리해 입원을 결정했다고 한다. 면회 과정은 1회 30분이 원칙인데, 애틋한 마음에 1시간이 넘는 경우도 많았다. 병원 측에서는 눈치를 주지 않고 편안하게 면회하도록 배려했다.

대한요양병원협회 노동훈 홍보위원장
대한요양병원협회 노동훈 홍보위원장

그의 아버지는 처음 입원 당시 간호사에게 호통을 치기도 했다. 그런데 간호사는 아버지가 예민한 상태라고 가족에게 설명했다. 환자가 요쿠르트를 먹고 싶다고 말하니, 간호사는 주치의와 상의 후 보호자에 연락하고 요쿠르트를 제공했다고 한다. 기력을 회복한 아버지는 집으로 가고 싶다고, 그게 안 되면 바깥 구경이라도 해달라고 했다. 가족들이 휠체어에 앉히고 나가려 했지만 이를 발견한 간호사가 달려와 자신들이 할 일이라고 했다.

가족들은 요양병원이라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환자를 배려하고 가족의 마음을 이해는 요양병원 호스피스였다.

환자의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 새벽 시간 보호자에게 연락했다. 의식이 없는 아버지에게 작은 형은 계속 대화를 했다. 아버지에게 고마웠고 사랑한다고. 의식 없는 아버지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본 작은 형도 큰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8일간 입원했고 병원비는 30만~40만원 선이었다.

반면 20년 전 간암으로 돌아가신 큰아버지의 경우는 달랐다. 대학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할 게 없으니 진통제를 주고 퇴원을 시켰다고 한다. 진통제 패치를 붙였지만, 통증이 심해 손가락으로 벽을 긁었다고 한다. 죽음으로 향하는 길은 차갑고, 어둡고, 무서운 길이다. 환자도 그렇고 남겨진 가족도 그러하다. 무수한 임종 선언을 하면서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었다. 대한민국 의료가 발전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호스피스도 발전한 것이다.

지난 2020년의 사망자 30만4,900명 중 65세 이상 사망자는 25만8,000명이다. 그 중 78%가 의료기관에서, 23%가 요양병원에서 사망했다. 호스피스에서 사망한 분은 단 5%뿐이다. 호스피스 의료기관의 숫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호스피스의 필요성은 누구나 안다. 재택의료, 커뮤니티 케어를 하다가도 통증이 심해지면 병원을 찾기 마련인데 환자를 받아주는 곳은 요양병원 밖에 없다. 때문에 요양병원은 호스피스에 최적화된 기관이다.

요양병원형 호스피스-완화의료를 해야 한다. 지난 2016년 9월부터 요양병원 호스피스 시범사업을 하고 있지만, 7년째 시범사업만 진행 중이다. 마침 여야는 병원 내 임종실 설치를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우선 심사 처리키로 합의했다. 요양병원은 임종실 설치 의무화를 전향적으로 수용하고 임종이 가까운 환자를 임종실로 옮겨 가족이 돌보게 해야 한다. 그래야 남겨진 사람도 덜 아프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시간이 갈수록 환자의 의식은 흐릿해질 것이다. 하지만 청각은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감각이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좋은 책과 글귀를 들려주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거나 혹은 조용히 앉아서 손을 잡고, 피부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면 된다. 생의 마지막 호스피스는 가족이 해야 한다. 임종을 앞둔 환자는 웰다잉을, 남겨진 가족은 위로와 치유의 시간이 될 것이다.

정부는 요양병원 호스피스 시범사업을 확대해야 한다. 괴롭고 힘든 죽음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편안한 환경에서 삶을 마무리할 시간과 여유를 주는 게 요양병원형 호스피스의 역할이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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