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로그 인사이트]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성기웅 이사장
2월 15일 ‘세계 소아암의 날’…국내 소아암 퇴치 해법을 듣다
40여년 전 항암제 계속 써도 소아암 완치율 성인 보다 높아
성인용 '최신 항암제', 연구 현실 반영해 소아에 일부 허용을
"국가 암 연구비 지원서 '소아암 부문' 별도 운영 필요하다"

2월 15일은 ‘세계 소아암의 날(International Childhood Cancer Day·ICCD)’이다. 이 날은 지구촌 전체가 소아암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소아암 퇴치에 힘을 모으고자 소아암국제협력(Childhood Cancer International) 주도로 지난 2001년 제정됐다.

소아암 퇴치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아주 많다. 그러나 소아암은 사회의 관심을 이제껏 제대로 못 받아왔다. 성인암에 비해 소아암은 연구도 적고, 새로운 치료제 보급도 늦다. 소아암 진료체계는 일부 지역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만큼 무너져 내렸다. 강원과 경북에서는 소아암 진료를 위해 지역 대학병원을 가도 의료진을 만날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악화된 것이다.   

소아암은 전체 암의 1% 미만으로, 전체 암의 99% 이상을 차지하는 성인암과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을 지닌 암이다. 다행인 것은 소아암은 연구도 적고 최신 치료제 보급도 늦지만 치료 성적이 성인암보다 많게는 10%가량 더 높다는 사실이다. 

희망은 더 있다. 소아암 치료 여건이 개선만 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국내 소아암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성기웅 이사장(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혈액종양분과 교수)을 만나 국내 소아암 치료 현실과 소아암 퇴치를 위한 현실적 해법을 들어봤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성기웅 이사장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성기웅 이사장

국내 소아암 완치율 70~80% 수준…A급 진료 받을 수 있어 

- 소아암은 성인암과 다른 점이 많은 것으로 안다. 어떤 차이점이 있나?

소아암은 성인암에 비해 굉장히 적다. 전체 암의 1%도 안 된다. 국내 한 해 암 발생자는 25만여명 되는데, 소아암 발생 환자는 한 해 900명 전후로 추정된다.

소아암은 급성림프모구백혈병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희귀암이다. 성인암과 암 발병 원인도 조금 다르다. 소아암은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유전적 요인이 성인암에 비해 아주 크게 작용할 것이라 여겨진다. 대표적으로 성인암은 흡연 등 생활습관 요인이 어느 정도 작용하지만 소아암은 그런 게 거의 없다. 

암 종류도 소아암과 성인암은 다르다. 성인에게 다발하는 폐암, 유방암, 위암, 대장암 등과 같은 암이 소아에게는 거의 없다. 소아에게 다발하는 신경모세포종과 같은 암은 성인에게 거의 발병하지 않는다. 

치료 면에서는 소아암이 성인암에 비해 치료 반응이 더 좋다. 실제 암 완치율이 성인보다 소아에게 더 높다. 성인암은 완치율이 70%대 초반인데, 소아암은 70~80%다. 

- 국내 소아암 치료 환경에 대해 평가한다면?

국외와 비교하면 국내 소아암 치료 환경은 굉장히 좋다. 교통이 굉장히 발전해 서울 주요 병원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다. 국내 대부분 지역 소아암 환자가 당일 진료로 서울에서 A급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또 산정특례 제도로 입원비 등 본인부담의료비 5%만 내고 보험 급여로 암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경제적 여건이 힘들 때 신청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치료 지원 프로그램들도 많다.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한국소아암재단,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등에서 지원하는 것도 있고, 각 지역 보건소나 동사무소 등에서 비급여 진료비 지원을 해주는 것도 있다.   

- 수도권의 소아암 치료 환경과 지방은 사뭇 다른 것 같다. 지난해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가 발표한 데 따르면, 강원, 경북, 세종 등에는 소아암 환자를 진료할 전문 의료진이 없었다. 지방에서부터 소아암 진료체계가 붕괴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는데, 왜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인가? 

교통의 발달로 서울에 소아암 환자가 집중된 데다 인구가 줄면서 지방 병원의 소아암 환자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

또 소아암은 성인암에 비해 중증도가 높다. 그런데 소아암을 비롯해 전체 소아 파트는 진료를 할수록 병원이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단적으로 병원 원가에서 인건비가 제일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똑같은 처치를 해도 소아는 성인에 비해 인력이 1.5배 든다.

1997년 삼성서울병원에 와서 이제껏 소아암 진료를 보며 병원에 안긴 적자만 1,000억원쯤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렇게 소아암 진료를 볼수록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은 소아암 진료에 최소한의 투자를 해왔다. 병원 명성이 있고 소아암이라는 사회적 함의가 있는 데다, 의료진들이 연구를 통해 꾸준히 우수한 성과를 내왔던 덕분이다.

지방 병원은 진료하면 할수록 적자가 불어나는 속에서 이처럼 소아암 진료에 투자하기 쉽지 않다. 지방 병원 소아암 환자가 줄면서 소아암 전문의도 줄었고, 치료 시설 등도 낙후되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지방 소아암 진료 체계가 붕괴되고 있다. 

현재 강원, 경북 등에 소아암 의료진이 없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영남권에서 제일 큰 부산대병원도 현재 소아암 신환을 더는 안 받는다. 소아암 진료 교수 2명 있는데, 실제 일하는 교수는 1명밖에 없다. 다른 교수는 은퇴를 앞두고 있다. 주니어 교수 혼자 모든 환자의 외래를 보고 입원 환자도 보면서 야간당직도 혼자 선다.

외래 진료를 보다가 병원 입원 환자 중 심폐소생술(CPR)을 해야 할 상황이 터지면 그 교수는 외래 진료를 멈추고 그 환자에게 가야 한다. 그런 환자가 있으면 당연히 집에도 못 가고 밤새 지켜봐야 한다. 여기에 신환까지 추가되면 그 교수는 365일 아예 집에 못 간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앞으로 소아암 진료를 하겠다는 의사들도 확연히 줄고 있다. 소아암 진료 체계가 붕괴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성기웅 이사장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성기웅 이사장

근본 원인, 낮은 수가…'만성 병상 부족 NICU' 개선 사례서 배워야

- 이 문제는 앞으로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병원에서 현재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복안을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서울 큰 병원에서 아이 진료를 보다가 지역 병원으로 가겠다는 보호자가 있는데, 대부분 다시 돌아온다. 과거에는 지역도 서울만큼 환자가 많았기 때문에 서울과 지방의 소아암 진료 수준 차이가 크지 않았지만, 이제 실제적 차이가 날만큼 상당히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은 소아 종양 부분의 낮은 수가 때문이다. 진료할 때 적자가 나지 않는다면 병원에서 그 분야에 투자하게 될 것이다. 실제 과거 소아청소년과에서 적자 규모가 가장 심각한 세부 분야가 종양과 더불어 NICU(신생아중환자실)였다. NICU의 경우 낮은 수가 때문에 국내 신생아 미숙아가 한때 갈 곳이 없게 돼 사회 문제가 됐는데, 정부가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NICU 수가를 확 올려줬다.

그러면서 신생아 미숙아가 NICU 병상을 찾아 떠도는 일이 사라졌다. 병원에서 NICU 병상을 넓히고 인력을 뽑고 시설에도 투자하면서 의료서비스도 좋아지고 치료 성적도 향상됐다. 소아암도 현재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NICU 사례처럼 수가를 올려야 한다고 본다.  

- 정부에서도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것으로 안다. 소아암 문제는 필수의료 지원 대책에도 포함돼 있는데 상황을 어떻게 보나?  

현재 보건복지부가 이니셔티브를 갖고 지방 소아암 진료체계 개선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고 소아혈액종양학회가 의견을 피드백하는 과정에 있다. 복지부는 지역 거점병원을 육성하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은데, 수가 문제를 그대로 두고 지역 거점병원을 육성하면 권역별 외상센터와 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권역별 외상센터도 외상 환자가 생각만큼 오지 않으면서 그 병원에서 외상외과 전문 인력을 일반 외과진료로 돌리는 일이 벌어졌다. 어떻게 지원해야 지역 소아암 진료체계를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을지 복지부와 학회가 의논해 풀어야 할 숙제다.

- 정책적으로 풀어야 할 소아암 문제만이 아니라, 소아암 퇴치에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국내 개선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또 성인암 치료 성적 향상에 국가암검진이 기여한 것처럼, 소아암에서도 스크리닝이 필요한 항목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소아암 조기 진단을 위해 특정 스크리닝 검사를 하는 것은 가성비가 좋지 않다고 본다. 

지금보다 소아암 치료 성적을 높이기 위해서는 성인에게 사용이 허가된 최신 항암제를 예외적인 상황에서 소아 환자에게 허용할 필요가 있다. 소아암은 1970년대, 1980년대 개발된 암 생존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온 항암제들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으로 미흡하다. 

최근 유전학 발달로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 등이 활발히 개발되면서 성인은 치료 옵션이 굉장히 많아졌고, 그것이 실제로 생존율 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소아에서는 똑같은 유전체 이상이 발견돼도 현재는 그 약을 못 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못 쓰는 게 제약사가 소아에 대한 임상시험을 하지 않아 소아용으로 허가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임상시험에 큰 돈이 드는데 비해 소아암 치료시장이 너무 작으니까 아예 제약사들이 소아암에 대한 임상시험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특수한 소아 임상연구 상황을 반영해 다른 치료가 없는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소아에게 성인용 약을 쓸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또 국내에서 임상시험을 하지 않았더라도 국외에서 소아에게 효과가 입증된 치료제의 연구 보고가 있으면 국내에서 쓰도록 해주길 바란다. 이것만 해도 10년 내 생존율이 지금의 70~80%보다 5~10%는 올라갈 것이다.      

또 국내 취약한 소아암 임상시험 인프라를 감안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성인암 연구에서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적인 임상시험의 메카라고 할 만큼 임상시험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인프라도 잘 구축돼 있지만, 소아암은 그렇지 못하다.

소아암의 임상시험 개수는 성인암에 비해 턱도 없이 적다. 소아암은 대부분 희귀암이라 연구 참여자도 적고 신약 임상이 활발하지 않아 성인암과 달리 치료 수준이 A급에서 특 A급으로 점프하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이런 상황인데 국가 암 연구비 지원사업에서 연구 공모를 할 때 성인암과 소아암이 계급장 떼고 같은 심사대에 오른다. 성인암의 경우 이미 많은 연구 경험과 선행 연구 등으로 축적돼 있는 것이 많은 까닭에 더 우수한 연구 제안인 경우가 많다. 소아암은 그에 비하면 맨 땅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동일한 심사 체계로 오르니 성인암에 밀리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소아암에 대한 연구 지원 지분을 10~20% 따로 만들어서 소아암 내에서만 경쟁할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 연구와 진료는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연구가 성공하면 진료가 개선된다.  

- 소아암 퇴치도 중요하지만, 치료 성적이 올라가면서 소아암 완치 뒤 겪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현재 관심이 필요한 것 같다. 

지금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소아암 환자를 살릴지에 연구 초점이 맞춰져 있기는 한데, 소아암 생존자의 치료 후기 부작용 관리에 대해 사회적 관심은 필요하다고 본다. 이 분야는 사회적으로 방치된 분야이기도 하다. 

어릴 때 암 치료를 통해 완치됐다 해도 후유증으로 장애 등이 생기면 본인과 그 가족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문제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소아 뇌종양 같은 경우 방사선치료가 주요 치료 수단인데, 뇌가 발달하기 전 방사선치료를 하면 인지기능이 떨어지고 머리뼈와 함께 등뼈에도 방사선이 가다 보니 키 성장에도 문제가 온다. 또 뇌하수체에 방사선이 노출돼 다양한 내분비계 문제도 초래된다. 이런 경우 대학 가기도 어렵고 직장생활도 어렵다. 때문에 이런 후유증을 줄이기 위한 의학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은 결국 임상시험을 통해 개선된다. 

또 한편으로는 치료가 끝난 아이의 문제가 더 악화되지 않게 잘 모니터링하고 관리해야 한다. 현재는 이런 환아들에 대한 상황 파악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현재 학회 내에 생존자위원회를 만들어서 소아암 생존자 문제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표준프로토콜을 만들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제대로 돌아갈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결국 데이터를 모으는 사람도 소아암 진료 교수들인데, 지방 병원은 인력이 없어 소아암 교수들이 데이터를 보내줄 여력이 없는 상황이고 그 병원에 소아암 교수가 모두 사라지면 어렵게 모아온 데이터마저 끊긴다.

현재 소아암 진료현장에 있는 의사들은 더 많은 소아암 환아를 살리고 더 안전한 치료를 하기 위해 어려운 상황이지만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아암 진료환경에 대한 사회적 주의가 촉구되고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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