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맥학회, 심장 장치 원격모니터링 허용 촉구
복지부, "국내선 불법"…원격진료로 유권 해석돼

대한부정맥학회는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부정맥 환자에 대한 원격모니터링을 허용해달라고 촉구했다. ⓒ청년의사.
대한부정맥학회는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부정맥 환자에 대한 원격모니터링을 허용해달라고 촉구했다. ⓒ청년의사.

심장 전기 삽입 장치(Cardiac Implantable electronic device, CIED)를 단 부정맥 환자들에게 현재는 심장 상태에 대한 실시간 원격모니터링이 어렵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의 문제다. 현재는 병원 외래에 왔을 때 그간의 심장 상태를 확인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뒤늦게 치명적인 부정맥이 있었는데 '위험할 뻔했다'라고 하는 상황이다. 

이에 부정맥을 진료하는 의사들이 현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CIED를 삽입한 부정맥 환자에게 '원격모니터링'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대한부정맥학회는 지난 16일 서울 중구 만복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심장에 삽입 장치를 부착한 부정맥 환자의 이상 징후를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는 원격모니터링이 국내에선 원격진료로 취급돼 의료법상 제한되고 있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CIED는 환자의 치료와 관리를 위해 심장에 이식한 삽입형제세동기(ICD), 재동기화치료기(CRT), 심박기(pacemaker) 등을 의미한다. CIED를 착용한 환자는 평생에 걸쳐 주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의료기기가 감지한 심장 박동 정보를 기반으로 진료받아야 한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일본, 홍콩, 싱가포르, 대만, 중국 등 해외에서는 CIED가 보내는 정보와 신호를 의료진이 실시간으로 분석해 진단하고 필요한 조치를 안내하는 원격모니터링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선 원격모니터링이 의료법에 가로 막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의사가 환자의 심전도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환자에게 적절한 대처 혹은 내원을 안내하는 것이 원격진료에 해당한다는 보건복지부 해석 때문이다.

한국심장학회 부정맥연구회장을 지낸 노태호 원장(노태호바오로내과의원)은 "원격으로 수술도 가능한 상황인데, (국내에선) 환자의 상태를 단순히 원격으로 보는 것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며 "환자가 1년에 4번씩 병원에 와서 기계상태와 기록을 확인하다 보니 후향적 분석만 가능하다. 기록을 보니 치명적인 부정맥이 있었는데 '위험할 뻔했다'하고 마는 것이다. 우스꽝스러운 현실"이라고 했다.

부정맥학회 박상원 정책이사(부천세종병원 심장내과)는 “원격 진료는 영상이나 전화, 이메일 등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며 환자의 상태를 모니터링한 자료를 받아보는 것은 원격모니터링”이라며 “복지부가 원격모니터링을 원격진료로 해석하면서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거나 일정 조치를 안내하는 것은 금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이사에 따르면 부정맥학회가 ‘심장 전기 삽입 장치 및 원격모니터링 기기를 이용한 환자 상태 확인 및 내원 알림 서비스’를 허용해 달라고 했지만 복지부는 그 자체가 의료행위이기 때문에 안된다고 답했다.

복지부는 그 근거로 의료법 제34조를 들었다. 의료법 제34조는 의료인 간 원격의료만 허용하고 있다. 수집된 정보를 대면 진료 과정에서 참고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환자가 내원하지 않은 상태에서 관련 데이터를 확인하고 의료적 상담을 제공하거나 내원 필요성, 내원 주기를 결정하는 것은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에 해당한다는 것.

이에 지난 2020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심장질환자 재택의료 시범사업'에서도 기기에서 분석된 데이터 중 불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시범사업 수가 기준에 따르면 ‘기기분석 주요 데이터’ 항목에 배터리 교체 알람, 전극 기능 저하, 빈맥·전기충격 발생만을 기재하게 돼 있다.

복지부도 원격모니터링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고도 했다. 그 예로 지난 2020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ICT 규제 샌드박스' 1호 실증특례로 선정된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한 심장 관리 서비스’에 대한 복지부의 유권해석을 들었다. 복지부는 당시 의료기관에서 전송된 환자 정보를 통해 내원을 안내하고 내원 시 전송된 정보를 활용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해석했다.

대한부정맥학회 박상원 정책이사는 원격 모니터링을 신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의사.
대한부정맥학회 박상원 정책이사는 원격 모니터링을 신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의사.

이날 기자회견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환자 안전을 위해 원격모니터링을 신속히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이사는 “부정맥 원격모니터링은 안전하며 임상적으로 이상 징후를 조기에 발견해 신속한 조치가 가능하다고 입증됐다”며 “심부전·부정맥 환자의 병원 방문을 21% 줄였으며 사망률을 50% 감소시켰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원격모니터링에 대한 정부의 긍정적인 검토를 통해 국내에 빠르게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원격모니터링이 도입될 경우 수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박 이사는 “원격모니터링이 현실화되려면 수가가 적용돼야 한다. 데이터를 확인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데이터가 잘 전송되는지 기기를 관리하려면 새로운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미국과 프랑스는 1년 단위로 관리비를 수가로 청구하고 있다. 환자가 내원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비용 효과적일 것”이라고 전했다.

부정맥학회 이명용 회장은 “환자의 생명보다 정치적인 논리가 적용되는 것 같다. 원격이라는 단어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어 환자에게 유용한 기술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원격진료를 하겠다는 게 아니다. 원격모니터링이 원격 진료가 아님을 국민과 의사 대상으로 설득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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