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

의사도 젊은 시절에는 적극적으로 수술 치료를 우선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암 치료는 아무것도 안 하고 두고 보는 것부터 수술, 항암, 방사선 치료 등이 있는데 젊은 의사 시절에는 수술 치료를 선호하는 경향이 확실히 있다. 뭐라고 할까? 운전면허 따고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면 면 이제나저제나 운전하고 싶어 하는 그런 거라고 할까?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환자와의 관계에서 이런저런 경험을 해보면 수술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신중해지고 방어적으로 되는데,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암 전공 외과 의사가 고민스러울 때는 수술은 성공적이었는데 재발하거나 전이가 나타나는 경우다. 그래서인지 경험상 재발이 많은 종양은 수술 결정에 매우 신중해지고 환자에게 더 많은 설명을 하게 된다. 그런데 교과서 어디에도 없는 희한한 경우들이 있으니 이런 거다.

어른들이 하는 말씀 가운데 암은 건드리면 죽는다라는 것이 있다. 적극적인 치료, 특히 수술하면 안 좋다는 말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할 일도 아닌 것 같다. 드물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기는 하다.

어떤 암은 정말 교활하다. 정체를 드러내기 전에 이미 여러 군데 전이를 해 놓는 녀석들이 그렇다. 그러니까 진단 당시에 이미 전이부터 해 놓는 것들인데 이는 암도 만일을 위한 준비를 해 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암 치료의 기본은 암종을 제거하고 전이를 막아야만 하는 것인데 전이부터 해 놓고 나타나는 경우는 그야말로 전신 치료로 들어가야 하니 아무래도 이런 녀석들은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아지게 된다. 대개는 암이 어떤 주요 부위에 생기고 시간이 지나면서 주위로 전이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영리한 암은 인간의 몸 안에서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니 주 종양을 제거했을 때 어딘가에 있을 전이암 세포들이 마구 흥분해서 날뛰게 된다.

예를 들어보면, 실제로 경험한 사례인데 대퇴골의 골육종이 짱짱하게 있는 환자다. 이미 폐에 전이도 된 경우다. 어느 정도까지는 주 세력인 대퇴골 골육종의 세력에 눌려서 폐에 있는 전이암 세포들이 적극적으로 활동을 못 한다. 폐의 전이 세포가 얌전한 상태인 줄 알고 대퇴골 골육종을 제거했는데, 그러자 폐의 전이 세포들이 순식간에 기승을 부리고 자라서 손쓸 시간도 없이 환자를 잃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주 세력이 사라지면 숨죽이며 살고 있던 지방 호족들이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본토를 공격하는 것이다. 참 교활한 놈들이다.

그런데 또, 그렇지 않은 일도 있다. 이것도 일반화할 수는 없는데, 연세가 많은 환자의 암들은 같은 진단인데도 유순한 예가 많다. 80세 남자 환자분이 소개로 온 적이 있다. 허벅지 근육 세 곳에 암이 있다. 폐에도 있고. 허벅지의 암을 제거했을 때 폐의 전이 세포가 혹시 기승을 부릴까 걱정돼서 수술하지 말고 경과만 보자고 했다. 노인들의 암은 암도 천천히 자라는 경향이 있어서 말 그대로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것인데 어르신이 엄청 화를 낸다. 나이 들었다고 치료도 안 해주는 거냐고. 건드리면 오히려 화근이 될 수 있다고 설명을 해도 노여움을 풀지 않으신다. 할 수 없이 수술했는데, 어라, 폐의 암들이 몇 년이 지나도록 얌전하게 있는 것이다. 예상을 빗나갔다. 암은 정말 모르겠다. 치료하면서도 종종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물론 대부분은 예상대로 가지만 말이다. 그래서 교과서적인 치료라는 이름으로 수술을 권유하는 것이 종종 부담스럽기도 하다.

일전에 20대 두바이 여성 환자가 왔다. 좌측 대퇴골 끝, 무릎에 가까운 곳에 암이 있는데 조직 검사는 저악성도의 골육종으로 판명됐다. 어디서? 미국의 그 유명한 Mayo clinic에서. 그리고 그 병원에서는 절단을 권했다고 한다. 아무리 봐도 절단을 할 것까지는 아닌데, 설령 수술 후 재발해도 저 악성도 종양이라 충분히 수습할 여유가 있는데 왜 절단하자고 했을까? 미루어 짐작건대 재발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충분히 설명하고 또 설명하고 결정할 시간 여유를 준 뒤, 내게 맡기겠다고 해서 절단이 아닌 다리를 살리면서 종양을 제거하고 인공관절을 넣는 수술을 했다.

지금 나이쯤 돼서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와의 긴밀한 신뢰라고 생각한다. 치료와 관련한 많은 가능성에 대해 의사의 고민을 환자도 알게 하는 게 좋다. 왜냐하면 암은 정말 예측 불가하기 때문이다.

박종훈 교수
박종훈 교수

박종훈 교수는 1989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7년 정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세부 전공은 근골격계 종양학으로 원자력병원 정형외과장을 거쳐 2007년부터 현재까지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에서 근골격계 종양환자 진료를 하고 있다. 2011년 일본 국립암센터에서 연수 했으며, 근골격계 종양의 최소수혈 또는 무수혈 치료에 관심을 갖고 있다. 고대안암병원장과 한국원자력의학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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