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

6개월 전이다. 두바이에서 온 25세의 여자 환자가 있었다. 수년 전에 이미 좌측 대퇴골에 발생한 저()악성도의 골육종으로 진단을 받고 두바이에서 수술도 받은 적 있다. 골육종은 대개 악성도가 아주 높은데, 간혹 악성도가 낮은 저 악성도의 골육종도 있는데, 보통의 골육종에 비해 전이나 재발이 적어서 예후가 좋은 편이다.

여러 나라에서 치료 상담을 했다고 한다. 가지고 온 각종 병원의 검사 서류만 해도 꽤 많았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미국 메이요 클리닉의 서류들인데, 저 악성도의 골육종이라는 병리 보고서였다.

메이요 클리닉에서는 어떤 치료를 권하더냐고 묻자 대뜸 하는 말이 하지 절단을 권했다는 것이다. 가져온 영상 자료를 볼 때 절단을 할 이유가 없는데, 왜 절단을 권했을까? 저 악성도의 골육종에서? 그럴 리가 없는데. 재차 물었더니 정확하다고 한다. 교과서적으로 봐도, 절단술을 하지 않고 종양 부위를 광범위하게 잘라내고 종양 대치물을 삽입하면 될 것 같은데, 메이요 클리닉은 도대체 왜 그랬던 것인지 의아했다.

혹시 다른 나라에서도 진료를 받아본 적 있냐고 물으니 영국과 독일에서도 진료를 본 적이 있고, 거기서는 내가 말 한 방식으로 할 것을 권했다고 한다. x-ray, MRI를 보고 또 보고, 아무리 생각해도 절단술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수술에 관해 설명하고 결정을 하게 되면 다시 오라하고 보냈다. 그리고 잊었다. 솔직히 내게 다시 오지 않았으면 했다. 메이요 클리닉에서 절단술을 권했다는 것도 못내 찜찜하고, 수술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였다. 여러 차례 이미 다른 곳에서 손을 댔고 (왜 그런 수술을 했는지 이해가 안 가는 수술을 두바이에서 했었다) 검사를 해 보니 전에 한 수술 덕분에 일부 암세포로 오염돼 보이는 부위도 있고, 무엇보다도 환자가 키는 작은데 체중이 꽤 나가는, 그래서 수술이 기술적으로 어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주일 만에 다시 와서는 수술을 받겠단다. 미국은 절단을 권해서 싫고, 영국과 독일은 왜 마다하냐고 하니, 설명을 잘 해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만나본 의사 가운데 내가 가장 자세하게 설명했다는 것이다. ‘Oh, my God’. 그렇게해서 수술을 하게 됐다. 정말 심혈을 기울였다. MRI 영상에서 암세포로 오염돼 보이던 피부와 피하 층을 포함해서 정성스레 대퇴골의 상당 부분을 제거하고, 대체물을 넣고 마쳤다.

여담인데,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통증에 대한 민감도는 서양인들이 한국인보다 덜 한 것 같다. 출혈 성향도 그렇고. 그런데 아랍인은 한국인보다 더 통증에 예민한 것인지, 아니면 여성이라 그런지 수술 후 병실에 가서 난리가 났다. 간호사가 애타게 찾아서 병실에 가보니 통곡하듯이 무지하게 서럽게 운다. 통증 조절 처치를 하고, 다음날, 그다음 날도 회진 돌면서 살펴보니 거의 통증으로 인해 멘붕이다. 그럭저럭 달래고, 통증 완화 주사를 주고, 그렇게 2주일을 보낸 뒤 경우 목발 보행이 돼서 무사히 두바이로 돌아갔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추적 검사를 위해 환자와 부모님이 한국을 다시 방문했다. 양손 가득 온갖 선물을 들고 내 진료실에 들어왔다. 대개 수술 후 6개월째에는 별 이상이 없기에 걱정하지 않고 이것저것 사전 검사를 시행했고, 그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 온 것인데, 진료실 컴퓨터 화면을 켜고 들여다보는 순간, 이런. 6개월 만에 시행 한 PET/CT 검사에서 대퇴부 안쪽으로 임파선 전이가 의심되는 소견이 나왔다. 이럴 수가 없는데.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 골육종 자체가 원래 임파선 전이를 잘하지 않는 데다가 고작 6개월 만에 전이라고? 분명 수술 후 시행한 조직검사에서 종양은 충분하게 제거된 것으로 보고서를 받았는데, 국소 부위 전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메이요 클리닉에서 절단을 하자고 했던 기억이 나면서, 내가 놓친 뭔가가 있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했다. 치료자인 나도 가슴이 철렁했으니, 환자와 그 가족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전이 여부 확인을 위해서 바늘로 찔러서 하는 조직검사를 하기로 하고, 1주일 뒤에 다시 보기로 했다. 그렇게 악몽의 나날이 지나갔다. 그 주 주말에 계획된 여행을 떠났는데 여행 기간 내내 환자 생각에 하루도 편치 않았다. 음식이 맛있는지도 모르겠고, 누우면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라고 되뇌기를 5일째 병리과 교수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보내주신 조직에서 암세포는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어휴....이때의 기분을 환자들은 알까? 자기가 치료한 환자에게 예상치 못한 일들이 나타날 때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다고 하면 믿어 줄까? 실제로 그렇다.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의사로서는 정말 괴롭다. 속된 말로 문제가 될 거라고 예상했던 환자에서라면 또 다른데, 결과가 좋을 것으로 생각했던 환자에게서 문제가 발생하면 죽을 맛이다. 그리고, 그렇게 고민되던 환자에게서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의 안도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의사로 산 세월만 어느덧 35. 암 환자의 운명을 늘 고민해야 하는 의사는 정말 스트레스가 심하다. 경제적인 여유를 누리기 위해서 선택할 직업은 절대 아니다. 환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설명을 듣고 내일 두바이로 돌아간다고 한다. 오늘은 두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다.

박종훈 교수
박종훈 교수

박종훈 교수는 1989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7년 정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세부 전공은 근골격계 종양학으로 원자력병원 정형외과장을 거쳐 2007년부터 현재까지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에서 근골격계 종양환자 진료를 하고 있다. 2011년 일본 국립암센터에서 연수 했으며, 근골격계 종양의 최소수혈 또는 무수혈 치료에 관심을 갖고 있다. 고대안암병원장과 한국원자력의학원장을 역임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