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

대한민국의 모든 인재가 의과대학으로 몰리고 있다. 의과대학 교수로 살고 있고, 자식을 의사로 둔 아버지로 살고 있지만 믿기 어려울지 몰라도 나는 단 한 번도 반드시 내 자식을 포함해서 누군가에게 의사가 되라고 말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 인생에서 여러 차례 극단적 선택(자살을 왜 자살이라고 표현하면 안 되는지 모르겠지만)의 충동을 느꼈는데 그중 대부분이 의사라는 직업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골육종은 아주 드문 암인데 그 와중에 잘 발생하는 부위는 무릎 위, 아래 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사건은 대퇴뼈 말단부, 그러니까 무릎 바로 위 부위에 골육종이 발생한 아주 체격이 작은 9살 여자아이를 수술할 때였다. 이 부위 수술에서 조심할 것은 무릎 위로부터 10cm 정도 상방의 안쪽에 접근할 때인데, 그 이유는 그곳에 무릎 아래로 내려가는 중요한 혈관이 있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나름 조심하면서 대퇴뼈를 주변 근육으로부터 박리하고 있었는데 (종양이 있는 부위를 중심으로 다 드러내야 하는 수술) 문득, '어? 혈관이 왜 안 보이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근육을 쳐내고, 분명 확인하고 혈관을 주변 근육으로부터 깔끔하게 분리해야 하는데 혈관을 못 본 것이다.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떨리는 마음으로 가만히 수술 부위를 살펴보니, 어이쿠, 그 중요한 혈관이 잘린 것이다.

보통 성인의 경우 혈관 크기가 모나미 볼펜 몸통 정도라고 하면 이 아이는 볼펜 심 정도의 굵기였다. 워낙 체격이 왜소하니 그랬던 것인데, 그 점을 간과한 것이다. 분명 큰 혈관을 기대하고 전진했는데, 그 아이의 혈관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작았다. 상황을 확인한 순간, 흔한 말로 모골이 송연해지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면서 온몸에서 피가 전부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맞은편에 서 있던 4년차 전공의가 힐끔 나를 쳐다보는데, 얼이 빠져서 창백해진 내 모습에 섬찟했는지 아무 말도 못한다. 어떻게 하지? 그러고 보니 이런, 신경도 자른 것 같았다. 다리를 살리려던 수술이 다리를 절단할 상황이 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그저 상상으로만 느끼겠지만 당시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수술실을 나가서 병원 옥상으로 올라간 뒤 뛰어내려야 하나?'라는 생각뿐이었다. 수술을 잠시 중단하고, 가운을 벗었다. 전공의를 비롯한 수술 보조자들 보고 수술 부위를 잘 덮고 있으라 한 뒤, 가운을 벗고 나왔다.

탈의실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여기저기 연락해서 상황 설명을 하고, 조언을 구하면서–직접적인 도움은 못 받았지만–곰곰이 생각했다. 가만, 신경이 거기 있을 수가 없는데, 왜 신경이 끊어져 보였지? 혈관이 동맥과 정맥이 다 잘렸던가? 가만 큰 동맥이 잘린다고 다리가 죽나? 분명 예전에 다 알던 지식인데 왜 멍하고 기억이 안 날까? 한 10분을 중단한 것 같은데 1시간도 더 고민한 것 같았다. 세수를 하고, 커피 한잔을 마시고 다시 들어갔다. 수술 부위를 다시 열고, 세척을 여러 번 하고, 시야를 깨끗하게 만든 뒤,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던가? 대퇴동맥은 확실히 끊었는데, 신경은 아니었다. 그렇지, 신경이 있을 자리가 아닌데, 당황하니 헛것이 보였나 보다. 혈관외과에 연락하고 혈관 외과 팀이 준비하는 동안 나머지 수술을 마무리했다. 끊어진 혈관을 잇고 무사히 끝나기까지 무려 6시간 이상 걸렸다. 통상적으로 3시간 이내에 끝날 수술을 두 배나 더 했으니 환자의 부모님은 얼마나 걱정을 했을까? 수술실을 나와서 환자의 부모님께 상황을 설명하고, 그날은 밤새 연구실에 있으면서 수시로 아이를 보러 병실을 들락거렸다. 제발 혈관이 무사하기를.....하는 간절한 기원을 담아서.

다행히 아이는 수술 경과가 좋았고, 암도 완치돼서 지금은 1년에 한 번 정도 내게 진료받으러 온다. 이제 대학도 졸업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는 '수술실을 나가서 해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내 인생은 여기까지인가?'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내 분야의 어려움은 이 놈의 암이라는 것이 사지 곳곳 안 생기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주로 발생하는 부위가 있기는 하지만 간혹 잘 안 해본 부위, 심지어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어려운 위치에 종양이 있는데, 그때마다 사고 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내 나이쯤 되는 대학병원급의 의사라면, 그것도 외과 의사라면 '나처럼 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사고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하는 일도 아니다. 그저 배운 대로 아픈 환자를 치료하려던 것뿐인데, 잘못되면 무한 책임이다. 누가 내게 의사로서의 스트레스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냐고 하면 이렇게 말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그런데 금쪽이에게 이런 직업을 권하겠다고? 그러니 아무도 힘들고 어려운 분야 전공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렇게들 의사가 되겠다고들 한다는데, 이 분야는 전임자도 없이 혼자 전공했는데 후임자도 없으니 걱정이다.

박종훈 교수
박종훈 교수

박종훈 교수는 1989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7년 정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세부 전공은 근골격계 종양학으로 원자력병원 정형외과장을 거쳐 2007년부터 현재까지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에서 근골격계 종양환자 진료를 하고 있다. 2011년 일본 국립암센터에서 연수 했으며, 근골격계 종양의 최소수혈 또는 무수혈 치료에 관심을 갖고 있다. 고대안암병원장과 한국원자력의학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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