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 박종훈 교수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단정하게 생긴 중년의 남성분이 진료실에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소위 말하는 쥐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한번 맡아본 사람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고약한 냄새가 있다. 사람살이 썩을 때 나는 냄새인데, 아마 한국 전쟁 때 사방에 쥐 섞는 냄새가 진동했다고 하는데, 바로 그 냄새다.

외견상으로는 어디가 문제인지 알 길이 없을 정도로 외모가 반듯한 분인데, 엉덩이에 종양이 있다고 해서 커튼을 치고 엎드린 뒤, 바지를 내리고 보고는 깜짝 놀랐다. 커다란 참외만 한 혹이 엉덩이의 중앙에 떠억하니 있다. 게다가 종양이 썩어서 진물이 줄줄 흐른다. 거기서 나는 고약한 냄새가 진료실 가득 진동을 했다. 현직 고등학교 선생님이라는데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다. 어떻게 이 지경이 되도록 참았을까? 사정은 이랬다.

지성인 가운데는 우리의 전통(?) 민간요법을 신뢰하는 분들이 있다. 왠지 서양의학은 몸에 해롭고, 우리의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하는 것인데, 이분이 그랬다고 한다. 혹이 저렇게 커질 동안 부황과 침으로 치료를 했다고 한다.

환자 본인은 의사가 아니니 그렇다 치고 의학적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진즉에 병원에 가기를 권했어야 하지 않을까? 종양 위에 덮은 거즈가 흥건할 정도로 농이 섞인 진물이 마구 흐르는 환자를 무슨 배짱으로 계속 붙잡고 치료했는지, 어이가 없을 뿐이다.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 게티이미지

난감했다. 분명 암은 확실할 것이고, 암 수술은 종양의 바깥에서 최소 2~3cm 이상을 제거해야 하는데, 이 경우는 종양이 참외만 하니 실제 수술은 수박 만큼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제거하게 되면 엉덩이가 그야말로 대포를 맞은 듯 휑하니 비게 되고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재건술이 필요한데 이 과정이 만만치가 않다. 또 하나의 문제는 종양이 안으로도 괴사가 돼서 주변의 조직을 죄다 오염시켰으니 완전하게 종양이 제거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100% 재발한다.

칼을 댔다. 예상대로 종양은 안쪽에서도 진물이 주루륵. 그래도 어찌어찌 제거하고 그 넓은 부위를 재건술로 덮었다. 재건술 때문에 환자는 2주간 엎드려서 모든 생활을 해야 했으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그 고생을 겪고 어느 정도 상처가 나아갈 무렵, 아니나 다를까. 스물스물 원래 종양이 있던 부위 근처에서 작은 종양들이 재발되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만져지면 떼 내고, 검사상에서 나타나도 떼 내고.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는 새로운 종양을 떼어내는 속도보다 새롭게 자라서 올라오는 잡초 같은 재발성 종양이 나타나는 속도가 빠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또 한 번 광범위한 제거술이 요구됐다.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 나보다 더 경험이 많은 다른 병원의 전문가에게 치료 의뢰를 부탁했다. 환자와의 사이가 너무 가까워지면 치료자가 객관적인 판단을 해서 때로는 밀어붙여야 하는 순간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한 6개월이나 되었을까? 내게 다시 왔다. 그동안의 경과를 물어보니 내가 지시한 대로 다른 병원에는 안 갔다고 한다. 왜 안 가셨냐니까 다른 의사에게 보이기 싫었고, 다시 민간요법 치료를 시도했다고 한다. 아뿔싸. 내가 단단히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데, 환자는 내가 포기한 줄 알았나 보다. 바지를 내려보니, . 이런. 어마어마하게 자랐다.

그렇게 한 반년 치료했을까? 결국은 돌아가셨다. 치료 과정 내내 환자는 아내와 치료 문제로 다투곤 했다. 왜 병원 말을 안 듣고 민간요법에 의존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안주인과 무슨 이유인지 민간요법을 신뢰하는 환자와 의견 대립이 계속된 것이다.

49재에 갔었다. 가족들이 오열한다. 지극정성으로 간병하던 아내분의 슬픔이 느껴진다. 고인이 마지막에 '자기가 어리석었다고, 진즉에 병원을 갔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셨단다.

작은 종양으로 시작했고, 초기에 수술했으면 사실 충분히 완치할 수 있던 경우라 두고두고 기억이 난다.

그런데 바로 지난주에 감자만 한 혹을 달고 온 할머니가 있었다. 6개월 전에 땅콩만 했는데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치료를 받다 보니 커졌다고 한다. 종양을 포함해서 주변 조직까지 확실하게 제거했는데, 이번에는 재발 없이 잘 낫기를 기대한다.

박종훈 교수
박종훈 교수

박종훈 교수는 1989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7년 정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했다. 세부 전공은 근골격계 종양학으로 원자력병원 정형외과장을 거쳐 2007년부터 현재까지 고대안암병원 정형외과에서 근골격계 종양환자 진료를 하고 있다. 2011년 일본 국립암센터에서 연수 했으며, 근골격계 종양의 최소수혈 또는 무수혈 치료에 관심을 갖고 있다. 고대안암병원장과 한국원자력의학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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