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청 제1회 '희귀질환 극복수기 공모전' 출품작

희귀난치병 환자들은 정확한 병명을 진단받기까지 평균 5년 동안 병원을 8번 정도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진단에 성공하더라도 제때 정확한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질병관리청은 희귀질환에 대한 대국민 인식도를 제고하고 희귀질환자들의 정서적 지지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제1회 '희귀질환 극복수기 공모전'을 개최했다. 이번 공모전에는 총 25편의 수기가 접수됐다. 이에 코리아헬스로그는 희귀질환자들이 질환을 극복해 나가는데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희귀질환 극복수기 공모전에 도전한 다양한 환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편집자주>

희귀난치성질환 혈우병 중증A와 소아마비 중복장애를 가진 지체장애인인 나는 강원도 홍천 농촌지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지체장애와 함께 원인도 이름도 모르는 병을 앓아 제대로 걷기조차 못하고 이유도 없이 매일 몸이 아픈 관계로 학교는 어머니의 등을 빌려 공부를 해야만 했다. 매일 아들을 등에 업고 다닌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으로 초등학교는 졸업했지만 중학교에 입학하자 병세가 악화됐다. 결국 중학교 3개월이 마지막 학창시절이 됐다. 학업을 향한 집념으로 겨우 한글을 깨우쳤다. 

어려운 가정형편과 혈우병 장애인으로서 집안 생활이 전부였던 내겐 외출이란 엄두도 못 내고 집안에서만 생활했다. 양치질을 하다가 잇몸에서 피가 나는 등 일상생활 중 입은 가벼운 상처만 나도 피가 멈출 줄 몰랐다. 강원도에 있는 병원에서는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했다. 희귀난치성질환 혈우병 중증A은 잘못 넘어지거나 작은 충격으로도 타박상의 상처가 생기면 지혈이 되지 않아, 한번 병원에 가면 수혈 링거를 몇 개씩 맞고 퇴원해 오기를 반복 했다.

30세가 되어서야 서울에 있는 한 병원에서 내가 앓고 있는 병이 희귀난치성질환 혈우병 중증A이란 걸 알았다. 혈우병은 피가 응고되지 않는 난치병이며 인구비례 1만 명 중 한 명꼴로 발생하는 출혈성 희귀난치성질환이다. 예전에는 혈우병 환자의 대부분이 뇌출혈 등 합병증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평균 수명이 약 25세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런 병을 앓고 있는 나는 일상생활 중 입은 작은 상처도 지혈되지 않아 반복적인 출혈로 관절 기능에도 이상이 생겼다. 방황과 함께 세상을 등지고 싶다는 마음을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먹었던 칠흑과도 같았던 그 시절, 하지만 인생을 포기하기엔 너무 아깝고 젊은 나이, 나의 팔 다리 관절은 차츰 굳어가고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40세가 못 되어 세상과 이별 할 것이라 여겼다.

좌절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매번 굳건해지고자 노력하지만 모진 삶의 풍파 속에서 달관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좌절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게 아파본 적이 있겠지만 장애인들에게 있어 아프다는 것은 익숙한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감히 모든 장애인들의 아픔과 고통을 일반화하진 않겠다. 다만 나의 작은 경험을 통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시절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유일한 친구는 각 방송사의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장애는 단지 불편일 뿐 불가능은 아니다. 현실에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조건을 탓하지 말자”라는 멘트가 가슴에 와닿았다. 

나에게 딱 하나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KBS라디오 '내일은 푸른 하늘' 프로그램이었다. 매일 오후 6시부터 7시까지 방송되는 '내일은 푸른 하늘' 프로그램은 나의 친구이자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으며 나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해 준 소중한 천사였다. 청취자 참여란에 나의 처지와 일상생활 속의 소소한 이야기를 글로 표현한 원고를 투고하며 꼭꼭 숨겨진 마음들을 세상과 소통해보려고 시도하였다. 그렇게 방안에서의 생활이 15년을 넘어서고 있을 즈음 나의 딱한 사정을 안 듯 1997년 어느 봄날 한국혈우재단에서 향긋한 봄 내음과 함께 희망을 주는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서울로 하루에 몇 시간씩 걸리는 불편한 교통편을 이용하여 버스에 몸을 맡기고 살기 위한 사투를 시작했다. 나는 반복된 운동이나 한곳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다. 언제 몸 어디에서 핏줄이 내 몸 어디에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질병을 떠안고 살아가는 건 괴롭기만 했다. 

요즘은 서울혈우재단에서 외래진료로 한 달에 한 번 홍천의 집을 방문해 간호 서비스를 지원해 준다. 덕분에 정말 생각지도 못한 25년의 생을 덤으로 살고 있기에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다짐했다. 하루에도 스스로 5개의 약물 주사를 맞고 고통을 이겨내지만,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하루가 주어짐에 신께 감사의 기도 또한 잊지 않는다. 

그리하여 생각해 낸 것이 주어진 생이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나보다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과 가족이 그리운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따뜻한 지원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하게 된 봉사가 어느덧 25년이 지나간다. 나와 같은 고통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어 내가 느낀 감사와 삶의 의미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욕심을 낼수록 삶은 오히려 고행이 됩니다. 모든 고뇌로 부터 벗어나고자 하면 먼저 스스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요즘 이 글을 머리맡에 붙여 놓고 산다. 살아갈수록 행복은 저 멀리, 저 높은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곳곳에, 오히려 대단하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한 일들 속에 있다는 걸 느낀다. 

행복은 내 마음먹기에 달렸다. 단순하게는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사에 거스르지 않고 순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 이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이처럼 모든 것이 잘 될 것을 믿으며 매사에 긍정적인 사고로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데에는 많은 분들의 위로와 격려, 그리고 사랑이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더 감사한 마음으로 나 또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도움을 받는 사람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 느끼는 행복감이랄까. 

부족한 나이지만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뿌듯함을 항상 느끼며 산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가 가진 것을 나눌수록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늘어나는 기적을 체험했다. 하나를 내놓으면 그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열 개가 되어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아마 봉사활동을 많이 해본 분들은 내 말에 백배 공감할 것이다. 

또한 봉사를 하며 세상에는 나보다 신체적, 경제적으로 연약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에서 꼼짝을 못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 장애에 대한 주위의 시선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사람들, 그들에게 대화로 다가서고, 용기와 위로를 북돋아 주려고 노력하면서 이제는 그들 모두가 나의 친구가 되었다. 나 또한 그동안 주위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왔던 만큼 다른 어려운 이들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며 받은 만큼 되돌려주고 싶다.

때로는 나도 몸이 불편하기에 그 일들이 힘들기도 하고, 피곤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동안 나도 많은 도움 덕분에 살아올 수 있었잖아” 라는 마음으로 고단함을 이기고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고 나면 항상 잘했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그렇게 내가 받은 혜택을 다른 어려운 이들과 나눌 수 있어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이제 더 이상 나 자신이 남에게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누고 베풀 줄 아는 선한 이웃,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삶에 자신감도 생겼다. 남을 도우며 오히려 내가‘보람’이라는 큰 선물을 받은 것이다. 내가 받은 것에 대한 감사로 시작할 수 있었고, 나눔의 기쁨을 느끼며 지속할 수 있었다.

기부를 하고 봉사를 하며 “나눌 수 있어서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늘 생각한다. 이처럼 내가 받은 게 많은 데도 감사하게도 지역에서는 나를 기부천사라고 불러주신다. 이런 나의 작은 실천이 많은 이들에게 울림이 되어 그 파장이 넓게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봉사현장이 좀 더 많은 사람들로 붐볐으면 좋겠다. 

순수한 선행은 또 다른 선행을 낳는 법이기 때문이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다. 희망과 꿈은 나이와도 상관없고 장애인에게나 비장애인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작은 꿈이 있다면 하늘이 허락하는 그 순간까지 장애인 가족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며 봉사함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더불어 장애라는 역경을 극복하여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에게도 긍정적인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도 나는 일기장에 “내 휠체어 가득 사랑과 희망과 꿈을 싣고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리라”라고 쓰고, “남은 인생을 외롭고, 소외되고, 병든 이웃과 장애인을 위해 지원군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라는 바람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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