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청 제1회 '희귀질환 극복수기 공모전' 출품작

희귀난치병 환자들은 정확한 병명을 진단받기까지 평균 5년 동안 병원을 8번 정도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진단에 성공하더라도 제때 정확한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질병관리청은 희귀질환에 대한 대국민 인식도를 제고하고 희귀질환자들의 정서적 지지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제1회 '희귀질환 극복수기 공모전'을 개최했다. 이번 공모전에는 총 25편의 수기가 접수됐다. 이에 코리아헬스로그는 희귀질환자들이 질환을 극복해 나가는데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희귀질환 극복수기 공모전에 도전한 다양한 환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편집자주>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그때는 잠이 많은 게 당연한 줄 알았다.

고3 시절, 모두가 바쁘게 지냈고 수능 대박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달렸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고등학생들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공부했다. 

피곤함은 일상이었고 쏟아지는 잠은 친구였으며 인생에 동반자였다.

이 피곤함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끝이 없는 듯했다. 

아침이면 늘 전쟁이었다. 맞벌이로 나보다 더 고단하고 바쁜 어머니가 아침마다 나를 깨워주셨고 나는 너무나 일어나고 싶었지만 늘 잠과의 사투에서 처참하게 패배했다. 내 평생 아침에 일어난다는 건 경험하지 못하는 일이라 생각했고, 아침마다 어머니께 수도 없이 많은 상처를 남겼다. 

고등학교 때 내 별명은 공주님이었다.

수학을 좋아하던 나였지만, 오후 5시에도 수업 때 원치 않는 잠을 자기 일쑤요. 심지어 졸지 않겠다며 뒤에 나가 서도 또 잤다. 전날 일찍 잤어도, 다음 날 저녁이 될 때까지 못 일어나고, 24시간씩 잔 날도 많았다. 시도 때도 없이 잠은 들이닥쳤고, 파도에 모래성이 부서지듯 내 정신력은 잠이라는 적군으로부터 나를 지키지 못했다.

나는 ‘잠’ 앞에서 만큼은 패배주의가 팽배했다.

나는 나이 30에 연봉 1억 3천을 받을 정도로 커리어적으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회사에 꼭 요구하는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자율 출퇴근제. 아침은 내게 존재하지 않는 선택지였다.

대학교 1학년 때는 12시 이전 수업의 70%를 자느냐고 못 갔고, 이 때문에 학사 경고를 맞을 정도였고 이런 모든 요소는 나를 오랫동안 낮은 자존감과 우울증 속에서 살게 했다.

‘내가 기면증일까?’ 생각했던 날이 명확하게 기억난다.

학교가 끝나고 340 버스를 타러 걸어가던 도중 블랙아웃(Black Out)이 있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까 전과 다른 풍경을 본 바로 그날이다. 기억에도 없는 50m 이동은 귀신을 본 느낌이었다. 나를 정말 무섭게 했고 집에 와 인터넷으로 관련 

증상들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찾아본 기면증의 증세는 수많은 고3는 제외하고 내가 평소에 경험하는 증상과 비슷했다.

나는 거의 3일에 한 번씩 가위에 눌렸고, 매일 귀신을 마주했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내가 진짜로 귀신을 보는 능력이 있는 줄로 알았다. 하지만, 그 시절엔 수많은 탈력발작을 해 갑자기 쓰러져 자는 사람만이 기면증인 것처럼 미디어에서 방영됐고 나는 그저 공부 때문에 피곤해서 잠을 많이 자는 것이라며, 한국에 있는 여느 고3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현상을 경시했다.

‘게으르다. 의지박약이다.’

대부분의 기면증 환자들이 자신의 상태를 모를 때 주위 사람들에게 듣는 나쁜 말들이다.

오랜 기간 나는 내 의지를 믿을 수 없게 됐고, 모든 걸 다 돈과 남들의 힘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운동하고 싶으면 헬스장 회원권이 아닌 PT 회원권을 끊었고, 뭔가 이루고 싶다면 내기를 했으며, 주변에서 양압기가 수면의 질을 올려준다는 말에 오랫동안 미뤘던 수면 클리닉을 방문하게 됐다.

사진 게티 이미지
사진 게티 이미지

그렇게 기면증을 확진 받았다.

나는 수면다원검사를 무려 두 번 했는데, 처음 검사 결과가 이상함을 감지한 의사선생님이 반복적 입면 잠복기 검사(MSLT)를 함께 제안하셨고 최종 결과는 기면증이었다. 병을 처음 인지하고 지난 10년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물어봐 주신 선생님의 말씀에 마음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나 자신한테 정말 미안해서..그래도, 밤늦게까지 덕분에 인정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증상은 원래부터 계속 있었기 때문에 진단 이후 치료방법이 생겨 더 좋아지는 것 뿐’이라고 마인드 컨트롤한 게 아주 큰 도움이 됐다. 운동하면 2가지로 자신의 상태를 체크하는 것처럼 다음 날 저녁이 다음 날 저녁이 생각했다. 실제로 약을 

먹으면 업무 시간에 더 높은 효율로 생활할 수 있었고 브레인 포그 등 기존 증상이 많이 개선돼 똑똑해졌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한국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작년 한 해 미국, 싱가포르 등 약 10곳의 나라를 다녀오면서 한국의 인프라가 마냥 대단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난치병 확진이 된 뒤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산정특례 등 수많은 실질적인 정책을 알게 됐고 한국의 멋진 인프라에 다시 한 번 반하게 됐다. 

네이버 ‘한국 기면병 환우 협회’ 카페에 가입해 나와 같은 증상을 겪는 수많은 환우를 만났다.

외계행성에 있다가 고향별을 찾은 사람 마냥 이들이 매우 반가웠고 이런 멋진 카페를 운영해준 운영진에게 너무 감사했다. 게다가 환우들이 다음 환우들은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수많은 단체와 협력하고 귀한 정보를 공유했다. 

2018년에 법이 개정되는 데도 큰 힘을 썼고 그런 작은 날갯짓들이 2023년 내게 큰 도움이 됐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받은 감사함, 그 이상을 전파하기로 했다. 

노션(Notion)에 기면증에 관한 내용을 조사해 적기 시작했고, 나의 루틴을 정리해 카페에 공유했다. 이번 하반기에는 시간이 될 때마다 돈을 버는 방법, 비즈니스를 잘 운영하는 방법, 마케팅 24시간씩 등 무상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특히 증세로 직장생활이 어려운 환우들이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더 많은 수입을 벌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세계 3대 심리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이야기했다. 집단에서 열등감을 극복하는 것이 건강한 자존감을 만드는 길이라고, 남을 돕는 게 결국 나를 돕는 길이라는 걸 난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치료 후 나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만족스럽다.

난 군대에서조차 루틴을 만들지 못해, 평생 루틴을 만들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현재는 살면서 처음으로 규칙적인 삶을 살고 있다. 원하는 대로 사니, 자기 효능감이 꾸준히 높아지는 게 가장 만족스럽다. 내가 내 힘으로 무언갈 해낸다는 감정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감정이다. ADHD, 우울증, 조울증, 메니에르 등등 스트레스와 함께 생긴 합병증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좋아지고 있고 무엇보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날 계속 달릴 수 있게 만든다.

불면증 아닐까? 하며 고민하던 과거는 생각도 안 난다.

12시 취침, 7시 30분 기상의 수면패턴이 잡히니 활기찬 하루가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나면 영양제와 기면증 치료 약을 먹고, 이불을 정리하고, 내 손으로 나를 위한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이 모든 게 30분 안에 끝나며, 이후엔 필라테스와 PT를 하러 간다. 매일 2시간의 운동으로 만들어진 건강한 도파민은 내 의지를 더 강력하게 만들어준다. 불량식품 같은 도파민을 만드는 SNS는 모두 삭제했고, 피곤해 자극적인 음식만 끌리던 내가 건강한 음식을 먹고, 자연스러운 식욕에 행복감을 느꼈다. 특히 6월 4일 그날에 먹었던 저녁은 잊을 수 없다. 

희귀질환, 모두 내 잘못이었다.

문제는 인식한 것만으로 절반은 해결하고 시작한다고 했는데, 그동안 내 안에 소리에 집중하지 않았다. 나를 아끼지 않았던 내 잘못이었다. 나를 더 마주했어야 했고, 내 깊은 이야기를 믿어주고 들어줬어야 했다.

난치병 진단받은 이들은 공감할 것이다. 진단 받고 그 어떤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가혹하게 굴었던 과거가 너무 미안하다는 점을..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알기에 그간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하지만 앞으로 내게 남은 일은 치료 잘 받고, 좋은 루틴과 긍정적인 사고 이 모든 걸 바탕으로 행복해지는 일뿐이다.

주인공은 모두 시련을 겪지만 끝내 행복해진다.

어두운 터널 속 방황과 고통은 성장의 밑거름이 되고 길을 걷는 동안 쌓인 작은 성공들과 학습은 깨달음으로 바뀐다. 끝끝내 터널의 끝을 마주하고 잠깐의 행복과 또 다른 터널을 마주한다.

영원한 행복은 없다. 영원한 불행도 없다.

그래서 우리 잊지 말자.

불행의 깊이만큼 행복해진다는 점과 내 마음 가짐에 따라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이 길은 모두 행복을 향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관련기사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