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청 제1회 '희귀질환 극복수기 공모전' 출품작

희귀난치병 환자들은 정확한 병명을 진단받기까지 평균 5년 동안 병원을 8번 정도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진단에 성공하더라도 제때 정확한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질병관리청은 희귀질환에 대한 대국민 인식도를 제고하고 희귀질환자들의 정서적 지지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제1회 '희귀질환 극복수기 공모전'을 개최했다. 이번 공모전에는 총 25편의 수기가 접수됐다. 이에 코리아헬스로그는 희귀질환자들이 질환을 극복해 나가는데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희귀질환 극복수기 공모전에 도전한 다양한 환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편집자주>

 2015년은 여러 가지로 큰 변화가 있었던 한 해였다. 

11년간의 아프리카 콩고에서의 생활을 접고 같은 대륙이지만 언어도 문화도 다른 잠비아로의 이동, 매년 정기검진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었던 나인데 갑상선 암 진단,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우리 둘째 재서의 당원병 진단. 

콩고는 의료 환경이 좋지 않아 출산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나라이다. 그래서 난 재서의 출산 후 9개월이 지난 2014년 10월에 온가족이 함께 콩고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6개월까지만 해도 늘 통통한 아기였었는데, 10개월 만에 본 재서는 핏기없이 하얀 피부에 영상으로만 봤을 때보다 더 마르고 아랫배는 볼록한 아기였다. 

와이프도 늘 소아과 검진 때마다 배가 너무 크다고 문의하면 “배꼬래가 큰 아기에요”라는 늘 같은 대답을 받았다. 

늘 성격이 순한 아이로만 알았고, 가끔씩 잘 멈추지 않고 한참을 흘리는 코피와 유독 이유식을 먹지 않아 2돌이 지나도록 모유를 계속 물리는거 빼고는 일상 생활을 했었다. 그땐 몰랐다. 참 위험했었던 순간이었다는 걸.

갑작스런 잠비아 발령으로 4월 가족들은 이른 귀국을 하고, 5월 난 갑상선 수술 후 6월 잠비아로 홀로 들어와서 사업과 가족들 맞을 준비 후 8월 정기 검진 및 가족들을 데리러 잠시 귀국을 했다. 

아이들 상비약 처방 및 검사를 위해 늘 다니던 소아과를 방문해서 또 같은 질문을 했다. 역시나 대답은 같았다. 그리고 출국 이틀전 영유아 검진을 위해 다시 찾은 소아과에서 늘 보던 선생님이 아닌 다른 선생님과의 진찰에 역시나 같은 대답을 들었지만 한번 더 배가 너무 큰대요라고 했더니 처음으로 촉진을 한번 해보신다. 

그때 선생님의 표정과 초음파 한번 해봐야 될 것 같다는 말에서 심상찮은 느낌은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는 것 같다. 간이 치골 아래까지 내려와 있어서 큰 병원으로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한다. 바로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고, 소아과 선생님은 대학병원으로 가길 추천한다. 가까운 ○○대 병원으로 바로 예약을 하고 만난 선생님은 당원병이 의심되고 검사를 해줄 수 있지만 서울쪽으로 가서 한번에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추천서를 써주셨다. 

당원병? 인터넷에 검색을 했고, 자료는 많지도 않고 대부분이 암울한 내용이 전부였던 시기인 것 같다.

○○병원에서 기본 검사들을 하고 거의 당원병일 확률이 높고, 확진을 위해서 간 생검을 진행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다행히 선생님은 암울한 인터넷의 내용들과는 달리 치료제는 없지만 관리를 잘 해주면 잘 크고 성인 환우들도 많으니 크게 걱정은 말라는 위로가 정말 큰 위안이 됐었다.

간 생검을 위해 입원한 당일 와이프와 아이를 입원시키고 홀로 출국을 해야 했던 나는 공항에서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렸던 거 같다.

당원병에는 치료제가 없다. 옥수수 전분을 정해진 시간마다 정해진 양을 섭취해줘야 하고 당 성분이 있는 음식은 제한하고 탄수화물의 양도 일정양 이상을 섭취하면 안된다. 

우린 한국에서의 생활보다는 온 가족이 함께 잠비아에서의 생활을 선택했고, 이 시기의 재서는 한참 커진 간압으로 매일 코피를 쏟아야 했고 매일 밤 애를 안고 이제야 몇 단어를 하는 아이는 밤 하늘의 달을 보며 “코피 안나게 해주세요”, “안 아프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반복했다. 유독 밤이면 보채고 아프고 코피가 심했던 아이를 안고 나 또한 빨리 날이 밝기만을 기도했다. 

미국, 프랑스, 영국 등 각국의 당원병 관련 모임이 있는 곳이면 가입을 하고 문의를 하며 정보를 얻었었고, 의료진 보다는 환우 부모들과 경험을 공유하며 아이를 살폈다.

우연찮게 미국에서 오랫동안 당원병을 연구하던 웬스턴 박사와 같은팀에 소속된 ○○○ 박사와 개인적인 연락을 하면서 관리를 해주니 밥 한 숟가락 삼키기 힘들어 했던 아이는 이제 더 먹지 말라고 자제를 시켜야 하고 볼록했던 배는 들어가고 간도 키도 모든 게 평균으로 돌아왔다.

아직은 항상 정해진 시간에 매일 7번의 전분을 섭취를 해야되고 정량의 식사를 해야되지만, 이제는 사소한 것 특히나 남들에겐 평범하게 사용되는 ‘일상’이라는 단어에 감사하게 되었고 모든 부모의 바람처럼 치료제가 개발 되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새벽에도 전분을 잘 먹어주는 아이를 보며 웃고 감사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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