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장준호 교수에게 듣는 '한랭응집소병'
냉방 상태 실내·겨울철 실외에서 '적혈구' 파괴되는 용혈 현상 촉발
국내 환자 약 100명 예측…병 의심하기 쉽지 않아 조기진단 힘들어
신약 허가됐지만 고가 비급여 약제로 사용 불가…대증치료 이뤄져
평소 추위 피하고 몸 따뜻하게 해줘야 용혈 현상 촉발 막을 수 있어

한랭응집소병(Cold Agglutinin Disease, CAD)은 아주 독특한 희귀질환이다. 사계절 끝 겨울 한복판에 찬바람을 좀 맞은 것 뿐인데 혹은 여느 여름과 다름 없이 에어컨을 켰을 뿐인데 아무런 예고 없이 몸 속에서 '적혈구'가 파괴되는 용혈 반응이 나타나면서 빈혈이 초래되고 혈전이 생겨 뇌경색, 심근경색과 같은 치명적인 상황에 맞닥뜨리게 하는 병인 까닭이다.

더 문제는 대부분의 한랭응집소병이 만병이 찾아드는 60~70대에 갑자기 나타나는 데다 국내 100여명에 불과할만큼 환자 수가 적어 의료진조차 쉽게 떠올리기 어렵고 별도의 질병코드조차 없이 '기타 자가면역성 용혈성 빈혈'로 분류돼 조기 진단이 힘들며 신약이 국내 허가됐어도 고가 비급여 약제로 실제 투약이 어려워 암보다 낮은 치료 성적을 당분간 반전시키기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원인 불명으로 생기기도 하지만 림프종·다발골수종·발덴스트롬 마크로글로불린혈증(Waldenstrom Macroglobulinemia)과 같은 혈액암에 동반돼 생기는 경우가 더 많은 '한랭응집소병'의 모든 것에 대해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장준호 교수를 만나 들어봤다. 장준호 교수는 한랭응집소병 국내 환자 데이터를 모아 연구를 계획 중이며, 국내에서 가장 많은 한랭응집소병 환자를 진료하는 전문가로 꼽힌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장준호 교수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장준호 교수

- 한랭응집소병은 추운 환경에서 인체 면역체계가 자신의 적혈구를 공격하는 자가면역혈액질환이다. 진단 5년 내 사망률이 35%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적혈구가 공격 당하면 우리 몸에 어떤 일들이 발생하기에 이처럼 예후가 나쁜가?

우선 적혈구가 깨지면서 빈혈이 심하게 올 수 있다. 헤모글로빈(적혈구에서 산소 운반 역할을 맡는 단백질) 수치가 갑자기 3~4mg/dL까지 떨어져서 일어서지 못할만큼 심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정상 헤모글로빈 수치 남성 13mg/dL 이상‧여성 12mg/dL 이상). 이같은 상태가 되면 심장에서 우리 몸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한 3배는 더 빨리 펌프질을 하면서 심부전이 올 수 있다.  

또한 적혈구 파괴로 혈전(피떡)이 생기는데, 혈전이 주요 장기의 동맥을 막아서 심장마비, 뇌경색 등을 초래할 수 있다. 심장이나 뇌의 혈관만이 아니라 신장(콩팥) 등 여러 장기의 혈관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각종 장기의 기능부전을 초래해 여러가지 합병증을 초래할 수 있어 한랭응집소병의 예후가 좋지 않은 것이다. 

- 한랭응집소병은 '한랭' 환경에서 자가 항체가 적혈구의 특정 항원에 결합, 체내 면역시스템인 보체(complement)가 활성화되면서 적혈구가 파괴되는 현상인 ‘용혈’을 일으킨다고 하는데, 보통 어느 정도 온도에서부터 이같은 문제가 유발되나?

한랭응집소병이 발현되는 온도는 환자마다 차이가 많다. 에어컨만 켜도 실내 온도가 16~18도 정도로 내려가는데, 이 정도의 온도에도 응집이 촉발되기도 한다. 겨울과 같은 특정 계절에 노출돼 이같은 반응이 나타날 수도 있다. 

- 한랭응집소병 원인으로 림프종·다발골수종·발덴스트롬 마크로글로불린혈증 등이 꼽히기도 하는데, 이같은 이차성 한랭응집소병은 전체 한랭응집소병의 어느 정도를 차지하며 혈액암 이외에 어떤 것들이 한랭응집소병의 발병 원인으로 추정되나? 

한랭응집소병은 특별한 원인 없이 생긴 경우를 일차성 한랭응집소병이라고 하고 림프종, 다발골수종, 발덴스트롬 마크로글로불린혈증 등에 동반해 나타나면 이차성 한랭응집소병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연구된 수치는 없지만 3 대 7 내지, 4 대 6 정도의 비율로 이차성보다는 일차성 한랭응집소병이 적은 걸로 알려져 있다. 

한랭응집소병은 국내 환자 수가 약 100명에 불과한 극희귀질환으로 원인 불명의 일차성 한랭응집소 환자도 극히 적지만, 림프종, 다발골수종, 발덴스트롬 마크로글로불린혈증 등의 환자에게 생길 확률도 1% 미만으로 굉장히 낮다. 또한 연구를 통해 한랭응집소병 환자에게 가족력이 없다는 것은 확인했다. 때문에 미리 한랭응집소병이 누구에게 나타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까지 어떤 특정 유전자가 한랭응집소병에 연관돼 있다든지, 어떤 병리(특정 원인에 의한 인체의 구조, 형태, 기능 등의 변화)인지 등은 정확히 확인된 것이 없다. 이 병은 후천적으로 생기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생길 위험이 높고, 실제 60~70대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발병 전까지 낮은 온도에서 적혈구가 파괴되는 반응을 일으키지 않다가 60~70대 나이가 들어 어느날 갑자기 발병하는 특징이 있다.    

- 인구 100만명 당 약 0.5~1.9명에게 발생하는 극희귀질환인 한랭응집소병은 국내에서 진단은 잘 안 되는 병으로 안다. 어떤 병으로 환자나 의료진이 오인하기 쉽나? 또 어떻게 해야 이 병을 조기 진단할 수 있나?

사실 이 병을 의심만 한다면 진단은 어렵지 않다. 한랭 응집소 타이터(Cold Agglutinin Titre) 검사를 해서 타이터가 높고, 뚜렷한 한랭응집소병 임상 증상이 있으면 진단할 수 있다. 이 검사는 위탁검사를 통해 동네병원에서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이 병이 극희귀질환이기 때문에 의료진과 환자 모두 의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에 진단이 어렵다. 

흔히 한랭 환경에서 빈혈 증상이 있고 손끝이 창백해지거나 푸르스름해지면서 차가워지는 증상이 있으면 류마티스질환인 '레이노증후군'을 의심하기 쉽다. 실제 한랭응집소병인데 레이노증후군으로 치료받는 환자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미 심부전이 온 환자는 심장내과에서 치료를 받기도 하고 뇌에 혈전이 생겼으면 신경과에서 치료를 받는 등 증상에 따라 다양한 진료를 받고 있을 것으로 본다. 

조기 진단을 위해서는 빈혈, 레이노증후군 등이 있을 때 용혈 반응이 있는지 의심하고, 이같은 증상이 언제 심해지는지 살펴보면서 LDH(젖산 탈수소효소, 인체 대부분의 세포에 존재하는 효소로 세포가 손상되거나 파괴될 때 유출되면서 세포 손상 지표로 사용) 검사 등을 추가해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하지만 LDH 검사가 병원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검사가 아니어서 쉬운 문제는 아니다.  

- 한랭응집소병은 현재 별도의 질병코드조차 없이 국내에서는 '기타 자가면역성 용혈성 빈혈'에 묶여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것이 조기 진단에도 여러 모로 어려움을 더할 것 같다.   

질병코드가 있어야지만 한랭응집소병 환자가 왔을 때 병명을 넣고 그에 따른 치료를 하고 보험도 이에 따라가지만, 현재는 질병코드가 없기 때문에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다. 최근 한랭응집소병 신약(수팀리맙)이 국내 허가됐기 때문에, 병에 대한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이 같은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준호 교수
장준호 교수

- 한랭응집소병은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치료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신약 수팀리맙이 국내 허가됐지만 의료현장에서 쓰지 못하기 때문에 현재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는 상황이다. 환자에게 빈혈이 생기면 수혈을 하고, 혈전이 생기면 혈전용해제를 쓰거나 혈전을 제거하는 시술을 하고 있는 정도이다.  또한 용혈 현상이 오면 이차적으로 우리 몸에 부족해지는 성분인 엽산 등을 복용하게 한다.

리툭시맙(체내 B림프구를 제거하는 면역치료제)을 쓰는 경우도 있는데, 허가 초가 약제로 신청한 다음 써야 하지만 실제 치료 반응이 좋은 환자들이 있다. 리툭시맙이 한랭응집소병 치료에 효과가 좋다는 연구 보고는 아직 없지만, 몇몇 환자에게 썼을 때 효과가 있었다는 케이스 보고가 있어서 반복적으로 빈혈이 생기거나 혈전이 생길 위험이 높은 '아주 심각한 환자'에게 리툭시맙을 써보는 상황이다.  

근본적으로 빈혈, 혈전 등의 합병증을 막아줄 수 있는 치료가 현재 불가하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한랭응집소병 환자에게 적혈구 파괴를 촉발하는 추위를 피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라는 교육을 주요하게 하고 있고, 증상이 생겼을 때 빠르게 병원에 오라고 설명하는 정도이다. 또 정기적으로 진료를 봐서 그때 그때 증상에 맞는 대증적인 치료를 하고, 심하면 입원치료를 하기도 한다. 

- 지난 7월 12일 한랭응집소병 신약 수팀리맙이 국내 허가됐다. 이 약은 어떤 치료 원리이고, 기존 치료에 비해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나? 

세균 같은 외부 물질이 몸안에 들어왔을 때 보체를 활성화시켜서 외부 물질을 없애는 역할을 하는데, 한랭응집소병은 그 보체가 한랭한 환경에서 과다하게 활성화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수팀리맙은 보체(C1s)를 억제해 용혈을 막아주는 효과를 낸다. 일종의 표적치료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약제가 나온 지 얼마 안 돼 장기간 생존 개선에 대한 보고는 아직 없지만, 일단 빈혈과 삶의 질 개선은 수팀리맙 투여 그룹에서 뚜렷한 것으로 나왔다. 수팀리맙은 부작용을 따져봤을 때도 안전한 약제다. 다른 희귀질환에서 다른 보체억제제들을 많이 사용해봤기 때문에 부작용들이 알려져 있는데, 수팀리맙은 심각한 부작용은 없었다. 하지만 너무 고가여서 보험 급여가 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점이 한계이다. 

- 한랭응집소병 환자는 수혈도 특수한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데, 병명을 몰라 일반적인 방식의 수혈을 하다가 더 큰 문제가 촉발되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한랭응집소병 환자들은 수혈할 때 따뜻한 관을 통해 혈액을 넣어줘야 하는데, 그것을 모르고 일반적인 수혈을 하다가 이차성 용혈이 발생해 증상이 더 심해지기도 한다. 이런 부분이 상당히 치료에 어려운 부분이다. 

- 현재 한랭응집소병 환자들은 어떻게 병원에서 관리를 받고 있나?

한랭응집소병 환자 중에는 증상이 전혀 없는 환자도 있고 반복적으로 자주 증상이 오는 환자도 있기 때문에 치료와 관리가 환자마다 천차만별이다.

한랭응집소병 환자의 증상에 따라 진료 일정을 정해서 그때마다 혈액검사, 소변검사 등과 같은 기본검사를 통해 용혈 여부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대증치료를 한다. 또, 환자에게 새로운 증상이 나타나면 그에 맞춰 추가적인 검사와 치료를 진행한다. 

- 집에서 한랭응집소 환자들은 어떻게 건강관리를 해야 하나?

현재까지 다른 특별한 방법이 나와 있는 것이 없다. 추위를 피하고 몸을 따뜻하게 해주면 된다. 

- 한랭응집소병 환자와 가족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랭응집소병은 치료제가 나와있고 앞으로 보험 급여가 된다면 치료를 통해 좋아질 수 있다. 희망을 버리지 말고 기다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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