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선 Northwestern Memorial Hospital 유전상담사

유전상담이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가 기억이 난다. Genetic Counselor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았다.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이거다! 난 유전상담사가 돼야겠다!"라고 그 순간 결정했던 것 같다. 

그때까지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무언가를 간절히 원해본 적이 없었다. 해보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 이것도 재밌을 것 같고, 저것도 재밌을 것 같고, 갈팡 질팡. 다른 사람들은 목표를 정하고 착실히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데, 나 혼자 물 위에 둥둥 떠서 정해진 목적지 없이 부유하는 느낌이었다. 그랬던 내가 무언가에 그렇게 열정적으로 에너지를 쏟아 본 건 처음이었다. 나는 닥치는 대로 유전상담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고, 몇 달 남지 않은 지원서 데드라인에 맞춰서 필요한 서류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

미국에서는 유전상담 대학원에 지원하기 전에 거의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유전상담 클리닉에서 참관을 하곤 한다. (지금은 코로나의 여파로 대면 참관 기회가 많이 적어지긴 했지만) 참관을 통하여 유전상담사들이 환자의 의료서비스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이 일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 그 때문에 석사 과정 디렉터들과 입학 위원회가 지원자들을 평가할 때 이런 경험들이 있는 지원자들을 더 우선시하게 된다. 

대학교 4학년 막바지에 유전상담 석사과정에 지원하기로 결정한 후, 나는 감사하게도 모교의 클리닉에서 참관을 할 기회를 얻었다. 이틀에 나누어서 진행되었던 참관은 하루는 산전, 그리고 하루는 암 유전상담사와 함께였다. 참관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설레고 떨렸는지 기억이 난다. 글로만 읽었던 유전상담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니! 

그때 만났던 유전상담사분들이 능숙하게 가계도를 그리고, 유창하게 유전 질병과 유전검사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환자분을 상담해 주던 그 모습이 너무 빛나 보였다. 그로부터 약 8년 후 지금 나는 4년 차 암 유전상담사다. 

참관을 마치고 석사 과정에 입학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소아 유전상담이 제일 하고 싶었다. 원래부터 아이들과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도 있지만, 지원 준비 중에 연락이 닿은 감사한 인연의 도움으로 참석했던 'National Society of Genetic Counselors Annual Educational Conference'도 하나의 동기가 되었다.

컨퍼런스에서의 여러 세미나 중 리소좀 축적 질환 환우의 부모님이 오셔서 토크를 해주시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대중들 앞에서 발표하시는 게 어색하신지 조금은 떨린 모습이었지만, 차분히 본인의 경험을 얘기해 주시는데 그분이 담당 유전상담사분을 얼마나 신뢰하고 의지하는지가 깊히 느껴졌다. 똑같은 질병으로 아이를 셋이나 잃으셨는데,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과정 안에서 유전상담사분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그분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렇게 잘 견뎌낼 수 없었을 거라는 그 말이 큰 감동의 울림으로 내 마음속에 퍼져나갔다. 내가 유전상담사로서 일하며 단 한 분에게도 저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석사 과정에 입학 후, 모든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산전, 소아, 그리고 성인/암 유전상담 실습을 하게 된다. 학교와 연계된 클리닉들의 사정에 따라 다른 분야의 클리닉에서의 실습 기회도 주어지지만, 석사 과정 졸업 후 자격증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위 세 가지 진료과에서 정해진 양의 케이스를 기록해야 한다. 석사 과정 교육을 받으면서 나는 15주의 산전 유전상담, 5주의 심장질환 유전상담, 11주의 소아 유전상담, 그리고 11주의 암 유전상담 실습을 했다. 실습을 시작하기 전에 소아 유전상담사가 되고 싶었던 나는 졸업 후 암 유전상담사가 되었다. 

처음 암 유전상담 실습을 배정받았을 때, 새로운 분야의 실습을 시작한다는 게 설레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많은 걱정이 있었다. 사실 석사 과정 교과과정 중에서 태생학, 의학 유전학, 역학 등 많은 과목을 공부했지만, 암 유전학에 배분된 시간은 상대적으로 많이 적었기 때문에 내가 환자분들을 제대로 상담해 줄 수는 있을까라는 막막함이 앞섰다.

예상대로 실습을 시작하고 나서 내가 배워야 했던 정보의 양은 산더미였다. National Comprehensive Cancer Network(NCCN)에서 발행된 가이드라인 및 여러 가지 유전 검사 기준, 각 유전 암 신드롬마다 연계된 암 또는 다른 징후들, 병리학, 그리고 암 신드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검진 지침들까지. 

처음 환자분을 만나서 상담을 진행할 때는 많이 버벅거렸고, 겉으로는 환자분들의 말에 반응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얼마 전 외운 정보를 까먹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엄청난 양의 정보들을 숙지하고 익숙해지면서 환자분들에게 점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니, 만나게 되는 많은 환자분들에게 공통점이 보였다 - 본인이 암에 걸린 것이 본인 탓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이었다.

내가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어서, 내가 술을 너무 좋아해서, 내가 건강검진을 제대로 받지 않아서 등등. 물론 생활습관이나 환경적 요인 때문에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맞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누가 봐도 건강한 식습관에 운동습관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 어린 나이에 암에 걸리는 사례들도 있고, 평생 줄담배를 피우시고 애주가 이심에도 불구하고 80세, 90세까지 건강하게 사시는 분들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암에 걸린 자녀분들과 함께 오시는 부모님께서 본인이 뭘 잘못해서 내 자식이 암에 걸린 건 아닐까 하며 자책하시는 모습도 많이 보게된다. 이런 생각을 가지신 분들께 정말 별것도 아닌 말일 수도 있지만, “본인 탓이 아니에요"라고 한마디 해드렸을 때, 많은 분들이 그 말이 큰 위안이 된다고 하신다. 또한 암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계셨다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시면서 안도하시는 분들도 더러 있었다. 그렇게 한 분, 한 분 상담을 해드리면서 나는 암 유전상담사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굳혀 나갔던 것 같다. 

평균 수명이 점점 늘어나는 현대 사회에 암은 흔한 질환이 되었다. 통계학적으로 보았을 때 심장질환 다음으로 사망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암이라는 질병에 대한 공포를 가지게 되고, 여러 가지 정보들, 특히 잘못된 정보들이 쉽게 퍼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암 유전상담사로 일하면서, 내가 암을 이겨낼 수 있을까, 내가 자식에게 암에 걸리게 만드는 유전자를 넘겨준 건 아닐까, 또는 암이라는 질병에 대한 전반적인 두려움을 가진 분들에게 개인 병력과 가족력을 토대로 알맞은 정보를 전해드리고, 또 힘들고 외로운 상황에 의지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시 생각해 본다. 

박민선 유전상담사
박민선 유전상담사

박민선 유전상담사는 시카고에 위치한 Northwestern University 대학원의 유전상담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2018년 미국 유전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졸업 후 같은 지역의 Northwestern Memorial Hospital에서 암 유전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Northwestern University의 faculty로서 유전상담 석사과정 입학 심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유전상담 석사과정 학생들 실습과 논문 지도를 맡고 있다.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