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병원 소화기내과 양기영 과장

오늘은 췌장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제가 전문의 취득 후 전임의로 췌담도분과를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췌장은 일반인에게나 의사들에게나 그다지 주목받는 장기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처음 췌담도학회에서 연구발표를 했을 때도 생각보다 작은 컨퍼런스홀에 사람들이 모여있었는데, 전공학회 첫 발표라 긴장해있던 제게 어느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여기 폭탄 떨어지면 내일부터 당장 한국에 췌장을 진료할 사람이 없어요”. 이건 외국의 학회도 비슷해서 DDW(Disgestive Disease Week)라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소화기관련학회에 참석하니 좋은 컨퍼런스룸 자리는 죄다 위장관, 간 파트가 다 차지하고, 췌담도는 호텔 반대편에 어디 찾기도 힘든데 있는 골방 같은 룸이어서 안되는 영어로 힘들게 물어물어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던 췌장이 요즘은 너무 유명해져서, 진료실에서 췌장 관련문제 (실제로는 췌장과 관계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로 방문하시는 분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아지셨습니다.

“내가 요즘 등이 아픈데 췌장암은 아닐까요?”,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췌장에 물혹이 있다 하네요”, “명치끝이 답답한데 위장약에도 낫지 않는데 인터넷에 찾아보니 췌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등등. 여기에 덧붙여 주변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분이 있기라도 한다면 그 충격과 공포는 상상을 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췌장이 어떤 장기인지 또 무슨 일을 하고 또 어떤 특성이 있는지 잘 모르지요. 심지어 의사들도 평소에는 췌장이 무슨 일을 하는지 생각을 잘 안하게 됩니다. 사실 췌장은 우리 몸에서 외분비와 내분비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매우 매우 중요한 장기랍니다. 그럼 하나하나 알아보도록 하지요. 

우리 몸의 여러 장기들은 각각 특정한 물질들을 만들어내고 체내로 분비합니다. 예를 들어 침샘에서는 침을 만들고, 위의 벽세포는 위산을 만들어 위내로 뿜어내며, 갑상선은 갑상선호르몬을 체내로 분비합니다. 이 중에서 특정한 관을 통해 분비되면 외분비라고 하며, 혈관을 통해 전신으로 분비되면 내분비라고 합니다. 그래서 침샘은 외분비, 갑상선은 내분비인 것입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면 노란색 췌장의 내부에는 췌관이라고 부르는 관이 있습니다. 췌장을 산이라고 생각하면 췌관은 산을 관통하여 여러갈래를 가진 터널 같은 구조인 셈이죠. 췌장 내부에서는 음식 소화에 필요한 다양한 소화액(소화효소)을 만드는데, 작은 냇물이 모여 강을 만들고 바다로 가듯이 췌관을 통해 소장으로 분비됩니다. 이것이 바로 소화효소를 분비하는 췌장의 외분비기능입니다. 

동시에 췌장 내부에는 빵에 건포도가 박혀있듯이 랑게르한스섬(Langerhans islet)이라는 특수한 조직이 흩어져서 존재하는데, 이곳에서 혈당조절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호르몬인 인슐린과 글루카곤을 만들어 혈중으로 내보냅니다. 그래서 췌장의 기능이 떨어지거나 췌장을 절제하는 경우에 인슐린이 부족해져서 당뇨병이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췌장의 내분비기능입니다. 이러한 두가지 기능은 췌장의 질환이나 치료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질환 두가지를 예로 들어볼까요? 췌장에서 만드는 내분비 호르몬인 인슐린은 잘 아시다시피 혈중 포도당이 높아졌을 때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만성췌장염과 같이 췌장기능이 심하게 저하되거나 췌장을 수술로 일부 절제하여 체내 인슐린 분비가 떨어지게 되면 그 무섭다는 당뇨병이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서히 진행하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갑자기 발생하여 빠르게 악화되는 당뇨병의 경우에는 췌장에 전에 없던 갑작스러운 문제가 발생한 것을 의심할 수 있고, 이러한 경우 중 가장 심각한 사안인 췌장암에 대한 검사를 꼭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외분비 기능도 연관된 질환이 있습니다. 췌장의 소화효소는 단백질, 탄수화물 그리고 지방을 모두 분해할 수 있는데 췌관을 통해 위장관으로 나가서 음식과 섞여야 할 소화효소들이 췌장조직을 파괴시키고 새어나가면 말 그대로 우리 몸을 소화해버리는 것입니다. 췌장과 주변조직을 녹이고 붓고, 더 심해져 녹은 게 많아지면 물이 고이고 거기 고름이 차기도 하는 무서운 상상을 해보세요. 마치 공포 SF영화에 나오는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염산통에 빠진 것’처럼 말이죠. 그러니 뱃속이 얼마나 아프고 괴롭겠습니까? 이게 바로 급성췌장염입니다. 물론 흔한 일들도 아니고, 췌장에 이런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췌장이 얼마나 중요한 장기인지는 좀 실감이 나시나요? 다음번에는 좀 더 췌장에 대해 자세히 또 재밌게 알아보도록 하지요.  

원자력병원 양기영 과장
원자력병원 양기영 과장

원자력병원 양기영 소화기내과 과장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내과 전공의, 소화기내과 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동시에 경영학 석사와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2009년부터 원자력병원에서 소화기내과, 췌담도파트를 전문분야로 진료중이다. 현재 진료 외에 학회활동, 연구와 논문집필 및 전공의 교육 그리고 다수의 외부강연 등을 하고 있다. 앞으로 '양기영의 췌담도암 진-료-후(진료-치료-예후)'를 통해 췌담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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