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병원 소화기내과 양기영 과장

지난 시간에 급성췌장염에 대해 설명을 드렸어요. 다시 짧게 정리해보면 우리가 먹은 음식을 소화해야 할 소화액이 여러 이유로 인해 췌장 밖으로 터져 나와서 주변장기를 녹여버리는 것이었죠.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하지요.

급성췌장염이 발생하는 원인은 굉장히 여러 가지가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 진료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급성췌장염 원인의 대부분은 술과 담석입니다. 술이 소화액을 모아두고 있던 췌장의 벽을 파괴해서 그 안에 담긴 소화액을 흘러내리게 하고 그리고 담관으로 내려온 담석이 인접한 췌관을 막아서 소화액이 췌관을 역류하여 벽을 뚫고 넘치게 하는 방법으로 급성췌장염을 일으키게 됩니다.

 정상췌장
 정상췌장
급성췌장염: 췌장과 췌장주변의 부종과 염증이 심함
급성췌장염: 췌장과 췌장주변의 부종과 염증이 심함

급성췌장염의 주 치료는 금식입니다. 우리가 음식이나 물을 먹으면 위장관이 “앗 음식이 들어왔다” 감지하고 췌장에 소화액을 만들어 분비하라고 신호를 주거든요. 그런데 췌장벽에 구멍이 나서 소화액이 졸졸 밖으로 새고 있는 상태에서 음식물을 먹으면…소화액이 “일해야 하나보다” 하며 갑자기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깨진 벽의 구멍으로 소화액이 콸콸 새어나가고 병이 급격히 악화되겠지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보다 더 무서운 염산 붓기) 그래서 급성췌장염에선 하다못해 물만 먹어도 배가 심하게 아프고, 반대로 금식을 하면 통증이 나아지는 것이랍니다. 

자, 그렇다면 급성췌장염은 금식과 여러 가지 치료를 하고 나면 어떻게 될까요? 일부 심각한 경우는 괴사성 췌장염이나 췌장농양(고름주머니) 등으로 진행하고 오래 입원을 하며 내시경적 치료 혹은 수술적 치료까지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의 환자들은 깨끗하게 낫습니다.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우리 몸은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회복력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래서 평생에 급성췌장염이 1회만으로 끝나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급성췌장염의 주된 원인이 술과 담석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래서 이 두가지를 해결하면 재발을 막을 수 있을 텐데,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일단 담석은 체질적, 해부학적 또 여러 원인들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이라, 약제나 수술(담낭절제술 등)로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술은…네, 그렇게 심한 통증으로 병실을 데굴데굴 구르던 분들이 평생 다시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퇴원하셔도 불과 몇 주 후 응급실에서 눈물의 재회를 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이게 한 번, 두 번 그리고 수없이 반복하게 되다 보면 급성췌장염은 다른 길로 진행합니다. 

우리가 손등에 가벼운 화상을 입었다고 생각해봅시다. 처음엔 깨끗하게 잘 낫겠죠. 하지만 같은 자리에 반복되어 화상을 입는다면 원래의 부드럽고 잘 늘어나던 피부가 아닌 딱딱하고 쭈그러들어 아무런 탄력이 없는 흉터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땀이 난다든지 하는 피부 본연의 기능도 거의 못하게 될 것입니다. 급성췌장염의 상처가 반복되어 췌장조직이 다시 회복되지 않는 흉터로 바뀌는 게 바로 만성췌장염입니다.

만성췌장염
만성췌장염

이 단계가 되면, 이미 흉터가 되어버린 부위의 췌장의 기능은 영구히 돌아오지 않습니다. 마치 용수철을 조금 당기면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너무 심하게 당기면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듯이 말입니다. 

지난 글에 설명 드린 췌장의 기능이 떨어져서 생기는 현상들 기억나세요? 만성췌장염이 바로 그 확실한 예라서 외분비기능인 소화효소가 안 나와서 음식물 소화에 문제가 생기고, 내분비기능의 장애로 혈당이 높아져 당뇨병으로 이어지지요. 그리고 주변 신경을 계속 자극하고 췌장액의 분비가 막혀서 심한 통증이 발생하게 됩니다. 급성췌장염은 통증이 심해도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는 희망이나 있지, 만성췌장염은 통증이 일단 시작하면 저절로 낫지도 않습니다. 심각한 일이지요. 생각해보면 의학에서는 급성이 붙는 질환과 만성이 붙는 질환들이 모두 지금의 사례와 매우 비슷합니다. 급성위염과 만성위염, 급성간염과 만성간염 만성이 붙으면 수술적 제거 혹은 아주 특별한 치료가 아니고는 일반적으로는 잘 낫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르실 거에요. 

우리는 지금까지 췌담도의 해부학적 기본 위치부터 시작해 췌장의 내외분비기능을 거쳐 급성/만성췌장염까지 왔습니다. 이제 이 자리, 만성췌장염에서 더 진행되어 가는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췌장암입니다. 그 무섭다는 췌장암. 요즘 너무 유명해진 췌장암. 그 췌장암의 수많은 위험요인 중에서도 만성췌장염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만성췌장염을 가진 환자는 췌장암이 발생할 확률이 일반인보다 10배 이상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본격적으로 췌장암과 관계된 이야기들을 풀어보도록 할게요. 

 

 

원자력병원 양기영 과장
원자력병원 양기영 과장

원자력병원 양기영 소화기내과 과장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내과 전공의, 소화기내과 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동시에 경영학 석사와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2009년부터 원자력병원에서 소화기내과, 췌담도파트를 전문분야로 진료중이다. 현재 진료 외에 학회활동, 연구와 논문집필 및 전공의 교육 그리고 다수의 외부강연 등을 하고 있다. 앞으로 '양기영의 췌담도암 진-료-후(진료-치료-예후)'를 통해 췌담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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