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분비희귀질환, 그 숨겨진 이야기] 유전성 당뇨병 ①
서울대병원 곽수헌 교수·건국대병원 최종한 교수

대한내분비학회

현재 알려진 희귀질환의 종류는 8,000종 이상이다. 하지만 치료제가 있는 질환은 전체 희귀질환의 5%에 불과하다. 더욱이 희귀질환은 의사들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환자들은 진단방랑을 겪기 일쑤다. 대한내분비학회 산하 내분비희귀질환연구회가 연재하는 <내분비희귀질환, 그 숨겨진 이야기>는 우리가 몰랐던 내분비희귀질환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환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하는 코너로 희귀질환 극복에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편집자주>

16세 여자가 혈당이 높아서 병원에 왔다. 평소 체중 변화 없이 건강하게 지내던 환자는 심한 감기 증상으로 동네의원에 내원했는데 진료 중 공복혈당을 측정했더니 145mg/dL로 나왔다고 했다. 다음(多飮), 다뇨(多尿)의 증상은 없었으며 키 160cm, 체중 54kg으로 체질량지수는 21.1kg/㎡이었다. 가족 중에 당뇨병이 있는 사람은 없었으나 어머니가 임신당뇨병, 당뇨병전단계 병력이 있었다고 한다.

검사결과 당화혈색소는 7.0%(정상범위<5.7%), 공복 시 인슐린은 정상이었으며 1형 당뇨병을 시사하는 자가항체는 음성이었다. 우선 메트포민 500mg을 하루 2회 투여했으나 3개월 후에 측정한 혈당은 여전히 138mg/dL로 높았으며 당화혈색소도 7.2%였다.

검사결과와 치료경과를 종합했을 때 1형 당뇨병은 아니었고 비만하지 않은 청소년에서 진단된 당뇨병이었기 때문에 단일유전자당뇨병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염기서열분석 결과 포도당인산화효소(glucokinase, GCK) 유전자변이가 발견됐다.

이 변이는 어머니로부터 유전됐으며 포도당인산화효소가 정상적으로 만들어지지 못해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 분비가 충분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혈당이 정상인에 비해 높은 유전성 당뇨병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이 유전자변이가 있는 경우에는 공복혈당은 높지만 식후혈당이 높지 않고 고혈당과 당뇨병 합병증이 진행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구약 혹은 인슐린 치료가 필요하지 않아 메트포민을 중단한 채 경과관찰 중이다. 가족 검사 결과 이모 및 외사촌들에서도 동일한 유전자변이가 발견됐으며 공복혈당이 높은 것을 알게 됐다. 이들 역시 치료를 받지 않고 경과 관찰하도록 했다. 

단일유전자당뇨병과 정밀의료

당뇨병은 혈당을 낮추는 유일한 호르몬인 인슐린의 분비 또는 작용 이상으로 인해 고혈당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대부분의 당뇨병 환자들은 자가면역에 의한 췌장 베타세포 파괴로 인슐린 분비능이 고갈돼 인슐린 치료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1형 당뇨병과 비만과 같은 대사질환에 의해 인슐린 저항성이 발생하는 2형 당뇨병에 해당한다. 보통 1형 당뇨병의 경우 30세 이전의 소아청소년기에, 2형 당뇨병의 경우 40대 이후의 중장년기에 발병한다. 그러나 30세 이전의 젊은 나이에 비만과 같은 대사질환도 동반되지 않았음에도 고혈당이 발생하고, 인슐린 치료도 없이 경구약만으로도 혈당 조절이 잘 되는 당뇨병 환자들도 있다. 

이처럼 당뇨병도 개인마다 다양한 특성을 보이며 기존의 분류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경우들이 있다. 의학의 발달로 유전적 특성에 따른 보다 세분화된 질병의 분류 체계와 그에 따른 맞춤치료를 제공하는 정밀의료가 미래 의학의 새로운 영역으로 제시되고 있고, 당뇨병 영역에서도 이러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유전체 연구 및 DNA 염기서열 검사법의 발전으로 최근 당뇨병의 유전적 원인 규명에 큰 발전이 있었고, 실제 임상에서의 검사도 훨씬 쉬워졌다. 단일유전자당뇨병은 유전적 원인에 의한 당뇨병 중에서 정밀의료의 주된 적용 분야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단일유전자당뇨병의 뜻과 고혈당의 발생기전

단일유전자당뇨병은 유전적 원인에 의한 당뇨병 중에서 하나의 DNA 염기서열변이에 의해 유발되는 당뇨병을 말한다. 유전자 이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강력한 가족력을 가지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30세 이전의 이른 나이에 발병한다. 이와 관련된 유전자들은 대부분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 베타세포의 발달이나 기능과 관련이 있다.

이들 중 최초 확인된 유전자는 베타세포의 포도당 센서 역할을 하는 포도당인산화효소를 암호화하는 유전자인 GCK로 1992년에 발견됐다. GCK의 결함은 췌장의 베타세포에서 포도당에 대한 감지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또한 췌장 베타세포에서 발현되는 전사인자인 HNF1A의 결함은 인슐린유전자인 INS의 전사를 감소시킬 수 있다. 이러한 유전자들의 결함은 인슐린 분비능을 감소시키고 결과적으로 고혈당을 유발할 수 있다. 이중 GCK 유전자 이상에 의한 당뇨병을 GCK-성숙기발병당뇨병(GCK-MODY, GCK-maturity-onset diabetes of the young)이라 한다.

GCK-성숙기발병당뇨병의 치료

GCK-MODY의 경우는 공복혈당이 다소 상승하지만, 고혈당 시 인슐린이 정상적으로 분비되는 경우가 많아 식후혈당은 정상에 가깝게 유지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망막병증이나 신장병증과 같은 전형적인 당뇨병 합병증의 위험이 증가하지 않으므로 일반적인 경우에는 특별한 치료 없이 경과관찰이 가능하다. 따라서 GCK-MODY의 정확한 진단은 불필요한 치료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을 극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다. 하지만 GCK-MODY 여성이 임신했을 경우에는 고혈당에 대한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실제로 임신당뇨병 환자의 약 1% 정도에서 GCK-MODY가 확인되고 있는데, 일반적인 임신당뇨병의 경우 모체의 고혈당이 태아의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태아의 과성장과 거대아(macrosomia)를 유발하지만 임산부와 태아 모두가 GCK-MODY일 경우에는 태아 또한 모체와 마찬가지로 포도당 농도에 따른 인슐린 분비의 역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태아에서 고인슐린혈증이 나타나지 않고 과성장 및 거대아의 빈도도 증가하지 않는다. 

반면, 임산부는 GCK-MODY이나 태아는 정상인 경우에는 태아의 포도당 농도에 따른 인슐린 분비 역치가 모체보다 낮아 과도한 인슐린 분비와 과체중이 유발될 수 있다. 따라서 GCK-MODY 임산부의 경우 태아의 유전형을 파악하는 것이 임신 중 고혈당의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비침습적으로 모체 혈장의 세포 유리 DNA(cell free DNA)를 이용해 태아의 유전자를 검사하는 기법이 개발되고 있어 MODY 환자가 임신 시 비침습적으로 혈당 조절의 목표를 결정하는 새로운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GCK-MODY는 소아나 청소년기에 진단되는 경우가 많으며, 잘못하면 불필요한 경구약물이나 인슐린 치료를 받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를 통해 정확한 진단을 받고 그에 맞는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예들은 당뇨병이 다양한 이질적인 고혈당 상태의 집합체임을 보여주며, 최신 유전자 검사를 통해 정밀의료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서울대병원 곽수헌 교수
서울대병원 곽수헌 교수

곽수헌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에 재직 중이다. 미국 Broad Institute of MIT & Harvard에서 2년간 방문교수를 역임했으며 다양한 대사질환의 유전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1형당뇨병, 임신성당뇨병, 2형당뇨병 및 그 합병증을 주로 진료하며 임상유전체의학과에서 유전성 당뇨병, 가족성 고지혈증, 미토콘드리아 이상에 의한 당뇨병 등을 진료하고 있다. 대한당뇨병학회 청년/임신성당뇨병 TFT이사, 한국유전체학회 학술위원장을 맡고 있다.

 

건국대병원 최종한 교수
건국대병원 최종한 교수

최종한 교수는 전남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건국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당뇨병과 비만을 포함한 대사질환을 중심으로 다양한 내분비질환 진료를 하고 있으며, 현재 대한내분비학회 산하 희귀질환연구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외에도 대한내분비학회 진료지침위원회, 법제위원회, 대한당뇨병학회 부총무, 진료지침위원회, 식품영양위원회, 보험-대관위원회, 대한비만학회 연수위원회, 정보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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