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상담사’ 자격·업무범위 규정미비 틈타 상담사 양성기관도 생겨
임상유전학 전문가들 “유전상담 제도화 노력에 찬물 끼얹는 격”

유전성 암이나 희귀질환자를 중심으로 한 유전상담서비스의 제도화가 지지부진한 사이 DTC(Direct To Customer, 소비자 직접 의뢰) 유전자검사 중심으로 유전상담 유료서비스가 등장하고, 비교적 짧은 교육기간을 통해 유전상담사를 양성하는 곳도 생겨나 혼란이 예상된다.

그동안 유전상담서비스 제도화를 위해 유전상담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유전상담 표준화에 공을 들여온 임상유전의학 전문가들은 이같은 상황이 유전상담서비스 제도화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유전상담이란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와 가족에게 해당 유전 질환이 무엇인지, 질환의 증상과 경과, 어떻게 유전되는지 등에 대한 의학적, 유전학적 정보를 제공하는 과정을 뜻한다. 국내에서는 유전상담서비스가 희귀질환과 같이 유전성 질환에서 제공돼온 만큼 임상유전의학을 전공한 의사와 전문 유전상담 교육을 받은 유전상담사들에 의해 의료기관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DTC 유전자 검사 기관과 항목을 확대, 유전자 검사를 받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질병과는 무관한 개인 유전자 정보들이 남발되고 검사결과를 과도하게 해석해 오히려 질병 가능성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사람들이 생기는 등 곳곳에서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유전상담사로 활동하며 네이버에 ‘유전질환의 모든 것’이라는 카페를 운영해온 김아랑 대표운영자는 DTC 유전자 검사를 받고 카페에 상담을 요청해온 사람들 때문에 곤혹스러웠다.

카페는 희귀질환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한글로 된 유전질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같은 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의 소통 창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무료로 상담을 시작했던 공간이었다. 하지만 DTC 유전자 검사 결과에 대해 무리한 상담을 요청해온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카페 회원들과 이들을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에 유료서비스를 시작하게 됐다고.

김아랑 운영자는 "카페는 유전질환 가족과 환자를 위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 DTC 유전자 검사를 받고 결과에 대한 상담을 해달라는 분들이 나왔다. ○○암에 걸릴 확률이 0.0068%로 나왔다는 것이었다. 여자가 평생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12%인데 그에 비해 0.0068%의 확률은 높은 것이 아니니 검사결과를 과도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설명해줬지만 집착에 가까운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돈을 내겠다는 등 막무가내였다면서 정작 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이들을 분리하자는 취지로 건강검진을 통해 유전자검사를 받은 사람만을 대상으로 상담을 유료화했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김아랑 운영자는 네이버 카페 유전질환의 모든 것유전자검사 상담 유료서비스를 모두 중단한 상태다.

DTC 유전자검사를 받은 사람들에게만 유료로 유전상담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유전상담 유료화에 의학계가 불편한 시선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김아랑 운영자는 미국에서 유전상담사로 일하며 그동안 카페를 운영해왔던 것은 유전상담 서비스의 제도화를 위해, 제도화될 때까지 한국의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하지만 최근 여러 곳에서 들려오는 우려의 목소리로 인해 카페를 중단하고자 한다. 카페와 더불어 제네틱스모드 상담서비스(네이버 유료 유전상담서비스)도 함께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는 “DTC 유전자 검사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유전자 검사 상담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과도한 해석으로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는) 이런 일이 더 많아질 것이라며 그렇다고 유전자 검사기관이 유전상담을 제공해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일부 대형병원에 개설돼 있는 임상유전의학과에서 상담할 수 있는 현실도 아니지 않나. 시장은 커지고 있는데 한국은 이에 대한 대비가 없다고 지적했다.

DTC 유전자 검사 시장 확대, '유전상담사' 자격 남발 우려

유전상담서비스의 제도화가 지지부진하는 사이 정부의 DTC 확대 움직임에 맞춰 1~2개월의 교육과정을 통해 유전상담사를 배출하는 곳도 생겨났다.

지역보건소 등의 공공기관에서 음주, 흡연. 영양, 운동부족 등 생활습관을 분석하고 건강관련 정보를 토대로 국민들에게 보건교육을 제공하는 보건교육사들로 구성된 대한보건교육사협회가 그곳이다.

보건교육사협회 김기수 회장은 보건교육사는 2003년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도입된 전문적인 보건교육 전문가로 현재 2만명이 배출돼 있다. 보건교육사들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면허를 받을 때 보건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다 할 수 있게 돼 있다그동안 개인의 환경과 유전적 특성을 보건교육의 주요 항목인 요구도 조사의 지표로 활용했기 때문에 보건교육사들에게 유전자분석과 상담은 오랜 기간 익숙한 직무라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보건교육사협회 김기수 회장, 나일수 부회장, 오동길 학술이사
왼쪽부터 보건교육사협회 김기수 회장, 나일수 부회장, 오동길 학술이사

김 회장은 더욱이 이러한 직무특성과 20여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2017년부터는 '유전상담 보건교육사' 직무를 신설, 그 역량 강화에 힘써왔다면서 국가가 인증한 유전자검사 기관에서 제공하는 유전자검사 결과보고서가 소비자에게 제시됐을 때 오용되거나 남용되지 않고 소비자에게 적절한 상담이 이뤄지기 위해서라도 우리같은 보건교육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김 회장은 보건교육사들도 보다 역량을 높이기 위해 교육이 필요했다면서 그 차원에서 실무교육과정을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협회는‘DTC/Mi-Bi 유전분석상담 과정이라는 실무교육 과정을 개설하고 DTC의 기본 과정 DTC의 심화 과정 마이크로 바이옴 3개 분야에 걸쳐 1개월간 온라인 강의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까지 13차 교육이 이뤄져 왔으며, 평가과정을 거쳐 PASS/NON-PASS를 정하고 PASS한 교육생들에게는 교육이수증을 교부하고 있다.

하지만 김 회장은 보건교육사들의 유전상담 업무는 DTC 유전자 검사에 국한된다면서 희귀질환 환자들을 위한 유전상담사가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 보건교육사들에 대한 정확한 명칭은 유전상담 보건교육사이며 같은 명칭을 쓰더라도 각자의 영역이 있으니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 (희귀질환)유전상담사들은 그 영역에서, 유전상담 보건교육사들은 DTC 영역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면 된다. 보건교육사들의 경우 의료법에 제한되는 것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전상담에 대한 비용을 받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유전상담사로 개업을 한 게 아니어서 비용을 받고 있지 않지만 협회가 유전상담 보건교육사를 양성하는 이유가 보건교육사들의 직업 활동을 위한 것인 만큼 앞으로는 개업을 하도록 지원하고 상담료를 받도록 안내할 예정이라고 했다.

의학계 "유전상담서비스 제도화 걸림돌" 우려

하지만 유전상담서비스의 제도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유전상담 유료서비스는 물론 유사 유전상담사 양성기관이 늘어나고 있는데 대해 의료계는 제도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우려를 표했다.

대한의학유전학회 한 관계자는 유전상담서비스의 제도화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라며 학회에서는 2016년부터 유전상담사 자격제도를 운영하며 제도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유전상담사의 지위, 업무범위, 자격, 수가 등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유전상담서비스에 돈을 받는 것은 제도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유전상담이 의료행위는 아니지만 의사와 유전상담사가 되도록 한 공간에서 환자에게 동일한 내용으로 상담을 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분이 유료로 유전상담을 제공하려 한 것은 매우 유감이었다고 전했다.

한국희귀질환재단 김현주 이사장은 보건교육사협회에서 유전상담사라는 자격제도를 운영하려는 것은 유전상담을 이유로 DTC 유전자 키트를 환자와 가족들에게 팔기 위한 것 아니겠냐"이는 유전상담서비스의 제도화가 안됐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문제다. 앞으로 DTC 시장은 더 커질 것이다.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유전상담서비스가 제도화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