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축소 이어 경증환자 2차병원 이동에 대학병원 ‘휘청’
빅5병원 병상 가동률 약 60% 수준…암 병원 주차장 ‘여유’
연구 중단 대학병원 기능 잃어…교수들 ’심리적 사직‘ 상태

전국에서 모여 든 환자들로 북적였던 빅5병원 중 한 곳인 A병원도 환자들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지하 주차장도 한산해졌다. ⓒ청년의사
전국에서 모여 든 환자들로 북적였던 빅5병원 중 한 곳인 A병원도 환자들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지하 주차장도 한산해졌다. ⓒ청년의사

전공의 집단사직이 한 달째 계속되면서 경영난을 겪고 있는 대학병원들이 ‘줄도산’ 위기에 놓였다. 오는 25일부터 교수 사직이 본격화될 경우 문을 닫는 대학병원들이 속출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대학병원 파산은 결국 의료체계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병원계에 따르면 대학병원 병상 가동률은 절반 수준으로 급격히 하락했고 이로 인한 하루 적자만 7억~10억원 수준이다. 발 디딜 틈 없던 빅5병원 중 한 곳인 A병원의 텅 빈 암 병원 지하 주차장은 전공의들이 떠난 대학병원 경영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심각한 경영난에 빅5병원조차 흔들리고 있다. 인력 공백으로 인한 진료 축소로 매출은 줄었지만 거대한 공룡이 된 병원을 유지하는데 투입되는 비용은 그대로다. 하루 수 억원대 적자를 막겠다고 한도를 늘린 ‘마이너스 통장’은 2~3개월이 한계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서울 주요 대학병원 병상 가동률을 살펴보면 서울대병원은 약 60% 수준이다. 세브란스병원도 이와 비슷하다. 고대안암병원의 병상 가동률은 50% 정도로 하락했으며, 수익은 평상시 매출의 60% 가까이 떨어졌다.

지방 상황은 더 심각하다. 부산대병원 병상 가동률은 40%대로 급락했다. 수익은 기대할 수도 없다. 하루 적자만 평균 7억원 정도다. 이에 600억원 규모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지만 한 달 인건비 150억~200억원을 고려하면 최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3개월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대학병원에서 보는 중증환자는 30~40%고 60% 정도가 경증환자다. 경증환자를 보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서서히 의료전달체계가 전환됐다면 충격이 덜했을 텐데 지금처럼 갑자기 경증환자가 빠져 버린 상황에서 대학병원이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진료에 매몰된 대학병원…교수들은 심리적 사직 상태

의대생과 전공의가 떠난 후 진료에만 매몰된 대학병원은 연구와 교육이라는 본연의 역할도 잃어가고 있다.

부산대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사직 이후 120억원 넘게 적자를 봤다. 신규 장비 등에 투자는 꿈도 못 꾼다. 진료에만 집중하기 바쁜 교수들은 연구도 전혀 못하고 그간 진행하던 국책연구와 임상연구도 모두 중단됐다”며 “그냥 중증환자 좀 더 많이 보는 병원으로 전락해 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좀 더 진행되면 대학병원은 사라질 것 같다”며 “의대생들은 모두 유급되고 전공의 수련도 중단돼 내년도 전공의와 전문의 배출이 제로가 된다. 은퇴하는 의사들도 있기 때문에 2,000명 정도 전문의가 유입돼야 하지만 향후 몇 년은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이미 대학병원 교수들은 상당한 체력 저하를 호소하며 한계에 달했다. 심리적 사직 상태다. 미래가 없다는 절망감이 크다. 고생하며 버텨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번에 느끼게 됐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무엇보다 이대로 대학병원 경영난이 이어지면 3개월 이내 파산하는 곳들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도 나온다.

고대안암병원 관계자는 “기존에 적립금을 많이 쌓아 놓은 곳들은 어느 정도 버티겠지만 3개월 정도 지나면 파산하는 곳들도 생길 것”이라며 “이번 사태가 잘 수습된다 하더라도 내후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직원 월급은 줘야하나 고금리시대 돈 빌리는 것 자체가 부담이고 곧 대규모 구조조정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의료계가 대화를 해야 한다. 자존심만 세우고 있다가는 의료체계가 완전히 붕괴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3차병원 환자 2차병원 분산…‘의료사고' 걱정도

반면 2차병원은 입원과 수술환자가 늘면서 병상 가동률이 약 10% 늘었다. 대학병원 전공의 사직이 2차병원 환자 이동으로 이어진 결과다. 특히 심뇌혈관 질환 환자 등 중증환자 수술이 가능한 일부 전문병원의 경우 상급종합병원에서 치료 받지 못한 환자들을 흡수하면서 응급실과 입원 환자가 큰 폭 상승했다.

뇌혈관질환 전문병원인 명지성모병원의 경우 전공의 사직 이후 외래와 응급실, 입원환자가 15% 정도 증가했다. 수술 환자가 늘면서 중환자실 입원환자 병상 가동률은 96%에 달한다. 상급종병에서 전원 문의가 오거나 이송된 환자 비율 역시 60% 이상 늘었다.

전공의 사직으로 인해 수도권 대학병원에 쏠렸던 환자들이 2차병원으로 분산되자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의료전달체계가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환자들의 의료 이용 행태도 조금씩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현장 목소리도 들린다.

경기도 한 종합병원 A원장은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료대란은 없다”며 “전공의 사직 이후 경증환자가 의원급과 병원급으로 분산됐고 3차병원에서 응급·중증환자 치료에 집중하면서 의료전달체계가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A원장은 “얼마 전 정부와 의료기관장들 간 회의에서 빅5병원 중 한 곳인 B병원장이 이제야 병원 같다고 언급했다”고 했다.

또 다른 종합병원 C원장은 “대학병원에서 수술이 안 되는 환자들이 늘면서 입원환자가 10% 정도 늘었다”며 “복합골절 환자 등 대학병원이 전원 받지 못하는 환자들도 수용하고 있다. 일부 대학병원 역할이 2차병원으로 넘어온 것 같다”고 전했다.

C원장은 “전공의 사직 이후 환자들의 의료이용 행태도 변화를 보이는 것 같다. 과거 지나가다 (건강 상태가) 궁금해 들렀다는 환자도 있었지만 요즘은 참다가 너무 아파서 왔다는 환자들이 더 많다”고 했다.

그러나 환자가 늘기 시작한 2차병원들은 웃을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대학병원 파산으로 의료체계가 무너지면 파장이 2차병원으로 몰려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부 병원들은 수술 환자가 크게 늘면서 오히려 ‘의료 소송’ 부담도 커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C원장은 “일부 전문병원 중 심뇌혈관 등 고난도 수술을 하는 곳들은 대학병원 역할도 대신하고 있어 환자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 지금도 환자가 늘면서 사실 힘든 게 더 많다”며 ”문제는 가용 자원이다. 인력을 120%까지 끌어다 쓰고 있다. 고난도 중증환자가 늘어나니 수술 하고도 의료사고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