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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33347011.bmp환자가 꽤 밀려있었다. 나는 바쁘게 환자분께 증상을 묻고 설명을 하고 처방을 내며 그렇게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여느 다른 날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여유로운 한때였다.새로운 환자가 들어오고 나는 그분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요즘 어지럼증이 심해졌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푸념에 어떻게 어지러운지 얼마나 자주 증상이 나타나는지 몇 가지 질문을 던졌고 문득 눈을 들어 환자를 쳐다보는 순간, 세상이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형용할 수 없는 낯선 감각이었다.‘뭐지? 이 느낌은?’멍하면서도 야릇한 기분이 들었는데, 뭐가 잘못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당황스러웠으나 진료를 중간에 그만 둘 수는 없기에 환자의 이야기를 계속 들으며 그
오피니언
권준우
2010.07.15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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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생님을 처음 뵈었던 것은 2000년 여름경이었다. 의약분업 시행에 따른 의약계의 마찰이 심화되고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져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결국 의약분업은 시행되었고,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았는지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또한 그러한 일들이 옳은 일이었는지 그른 일이었는지에 대해서도 내가 할 말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순간, 내가 새내기 의사로서 그 자리에 있었다는 기억을 할 뿐이다. 2000년은 나에게 매우 뜻 깊은 해다. 결코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밀레니엄의 시작이었고, 또한 그토록 염원하던 의사가 된 해였다. 그리고 절대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인턴시절로 얼룩진 해이기도 했다. 인턴으로 수련생활을 하다 보면 유난히 궁합이 맞지 않는 과가 있는데 나에게는 정형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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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우
2010.07.11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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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노보드를 좋아한다. 잘 타는 게 아니라 즐긴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굳이 최상급코스 타는 걸 고집한다거나 트릭 같은 것들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무들 사이로 굽이굽이 하얀 눈 위를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국내 스키장에서 시즌권을 산 적이 없다. 의사라는 직업적 신분 때문에 스키장에 자주 가지 못하는 이유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일단 내가 국내 스키장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말에 국내 스키장을 가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슬로프 전체에 사람이 개미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끔찍한 광경을. 처음 스노보드를 배울 때에는 당연히 그러려니 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 사람들 피하는 것이 너무 짜증이 났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나를 덮치거나 다른 사람을 피하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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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우
2010.07.07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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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 2학년 때의 일이다. 본과 진학 전에 무언가 추억에 남을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친구 두 명과 함께 지리산에 오른 적이 있었다. 사실 나는 운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등산은 더욱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친구가 꼭 가자고 꾀는 바람에 별로 원치 않는 지리산행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지리산에 오르기 전에 대충 코스를 정했는데, 노고단으로 가는 것은 너무 평범하니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지리산에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일단 뱀사골로 올라가서 정상에 오른 후 내려오는 길은 상황 봐서 정하기로 했다. 오후에 시작하는 3박4일의 일정이었다. 3박4일 동안 먹을 것을 마트에서 사서 배낭에 짊어지고 호기롭게 지리산으로 떠났다. 당시에는 승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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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우
2010.07.06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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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환자 그리고 환자 보호자와 대면하다보면 어느새 환자의 증상 호전이라는 하나의 목표에 대한 신뢰가 쌓이게 되는데 이것을 라뽀(rapport)라고 한다. 라뽀란 프랑스 말로서 상호 심리적 신뢰관계라는 뜻이며 환자와 의사 사이에 두터운 믿음이 있을 때 ‘라뽀가 좋다’ 라고 표현하곤 한다. 하지만 항상 서로 신뢰하는 사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끔 ‘라뽀가 나쁜’ 관계가 생기기도 하는데 이는 반사회적인 성향의 환자 때문일 수도 있고 의사의 설명이 불성실하거나 태도가 예의바르지 못한 경우 보호자의 불만이 쌓여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라뽀가 형성되지 않는 경우 사소한 문제로도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 다툼이 벌어질 수 있고, 이것은 환자의 치료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믿음이 없으면 나을 병도 낫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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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우
2010.06.3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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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할아버지께서 진료를 받으러 오셨다. 요즘 들어 걸음 걷는 것이 안 좋아지셨다고 호소하셨는데, 진찰을 해보니 걸음이 조금느려지신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관절통증과 노환에 의한 것일 뿐, 특별히 병적인 문제로 보이지는 않았다. 정형외과 치료를 원치않으신다면 일단 경과를 봐도 좋겠다고 설명을 드리자 할아버지를 모시고 온 아드님께서 파킨슨병이 아니냐고 꼬치꼬치 캐묻기시작했다. 파킨슨병에 걸리는 경우 걸음이 느려지는 증상이 있기는 하지만 할아버지께서는 그 이외의 다른 증상들이 없기 때문에파킨슨병을 의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설명을 드렸으나, 아드님의 눈빛에는 의심이 가득 서려있었다. 자신이 인터넷에서 보고 온파킨슨병의 증상을 나열하면서 나에게 동조를 바라는 것 같았지만 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하여 파킨슨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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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우
2010.06.23 2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