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양산부산대병원 전종근 희귀질환센터장 下편
“이른 진단으로 영아에 '졸겐스마' 처방한 기억 남아”
"선급여 후평가 또는 비용효과분석 유연화 등 논의 必"

의료계와 제약업계의 지속적인 노력 덕분에 과거 불치병으로 간주되던 희귀질환들이 점점 치료가 가능한 영역으로 넘어오고 있다. 척수성근위축증(SMA) 치료제 ‘졸겐스마(성분명 오나셈노진아베파르보벡)’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치료제가 개발됐음에도 불구하고 고가인 탓에 국내 환자들이 치료 기회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임상 현장에서 직접 희귀질환자들을 만나는 양산부산대병원 전종근 희귀질환센터장은 신약이 개발돼 조기 치료를 통해 후유증이나 합병증의 발생 가능성을 낮출 수 있음에도 현실적인 제한으로 인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으며, 정부와 의료계, 제약업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양산부산대병원 전종근 희귀질환센터장
양산부산대병원 전종근 희귀질환센터장

- 양산부산대병원 희귀질환센터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비수도권에 위치한 희귀질환 거점센터라는 점에서 역할이나 의미가 더욱 클 것 같다.

센터에서 근무하는 인원은 20명 정도다. 센터장인 본인과 부센터장, 실무 교수진과 희귀질환 코디네이터, 희귀질환 전문 임상 선생님들이 있으며, 유전자검사 지원기관도 운영 중이다. 2024년 기준 경남 권역 인구는 약 760만 명인데 권역 내 희귀질환센터는 본원이 유일하다. 실제로 많은 희귀질환자들이 본 센터를 이용해 도움을 받고 있다고 보면 된다.

희귀질환센터의 주된 역할은 지역에서 발생한 희귀질환 환자가 신체적, 물리적인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수도권 병원을 찾아가지 않아도 진단과 양질의 치료 및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파브리병, 고셔병, 헌터병, 폼페병 등과 같은 리소좀축적 질환의 경우 효소치료제를 평생 투여 받아야 하는데, 이러한 효소대체요법 약제는 질환에 따라 약 1~2주마다 내원해 4~5시간 동안 주사치료를 받아야 한다. 권역 내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전문가와 병원이 없는 경우에는 환자가 수도권 병원까지 장시간 오가며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따라서 환자가 수도권으로 이동하지 않고 가까운 권역 내에서 치료와 관리를 받을 수 있다면, 환자 입장에서 의료비가 절감되는 것은 물론이고 지속적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수도권 쏠림 현상을 해결하는데 기여한다고도 볼 수 있다.

- 유전성 희귀질환의 경우, 진단 후에도 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진단 이후에도 치료를 기피하는 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 일생동안 지속되는 반복적인 치료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기도 하고, 직장이나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일반인들에게 정기적으로 치료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기도 하다. 일부 희귀질환자들은 초기 증상이 뚜렷하지 않아 증상이 악화되면 치료를 시작하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가족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질환을 공개하기 꺼리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유전질환은 세대를 거쳐 전달되기 때문에 특히 결혼한 가정에서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부담감이 크게 작용한다. 때문에 본인이나 가족이 결혼을 앞둔 이들은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해 결혼 후 치료를 계획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희귀질환이 진단되면 보험 가입이나 직장 취업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

초기 증상은 경미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진행이 되고 늦게 치료를 시작하는 경우 치료 효과가 감소하므로,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관리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행히 최근 15~20년 사이에 사회적 인식과 치료에 대한 적극성이 많이 개선된 점은 긍정적이다. 치료 옵션의 다양화와 편의성을 중시하는 약물의 지속적인 개발도 환자 순응도가 높아진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 본인이 희귀질환인 줄 모르고 있다가 진단받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다른 증상으로 내원했다가 희귀질환을 진단받은 환자 사례가 있었나.

대부분의 환자가 다른 이유로 의료기관을 방문했다가 희귀질환으로 진단받는다. 예를 들어, 한 환자는 개인 안과에서 라식 수술을 받기 위해 검사를 진행하다가 안과 의사에 의해 각막 혼탁이 발견돼 본 센터로 의뢰됐으며, 파브리병 진단을 받고 현재까지 치료를 이어오고 있다.

또 다른 청소년 환자는 심한 말단부위 통증으로 류마티스 내과를 오랜 기간 방문했으나, 류마티스 질환과는 다른 경과를 보여 본원으로 의뢰돼 파브리병 진단을 받았다. 본원 내에서 질환이 의심되어 확진 받은 사례도 있다. 한 환자는 심장비대로 심장이식을 받았으나 자녀들에게도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 가족이 유전검사를 위해 방문했고, 검사 결과 파브리병이 진단됐다.

- 많은 희귀질환자들을 보셨을 텐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 사례가 있다면 공유 부탁드린다.

지난해 말 영아에 졸겐스마를 처방한 적이 있다. 생후 3~4개월부터 발달 지연을 보인 환자였는데 보호자가 소아신경과를 내원했다가 SMA가 의심돼 조기 진단을 통해 진단받았다. 진단 당시 생후 10개월 정도였고 곧바로 졸겐스마 사용을 신청해 생후 11개월 차에 급여 처방받을 수 있었다.

- 희귀질환 진단과 치료가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을 것 같다. 어떤 점을 꼽을 수 있을지.

다양한 희귀질환 치료제가 개발되고 급여화 되면서 국내 환자의 부담은 크게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국내 허가는 받았으나 여전히 보험 급여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는 희귀질환 약품도 존재한다. 제한된 급여 승인으로 혜택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희귀질환자들은 여전히 치료비 부담을 느낀다.

또한, 급여가 적용된 약제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증상이 심하지 않아 급여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환자들이 지속적으로 본인의 질환 진행 상태를 모니터링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의학적인 관점에서 조기 치료를 통해 후유증이나 합병증의 발생 가능성을 낮출 수 있음에도 현실적인 제한으로 인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고가의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별도의 기금을 마련하거나, 선급여 후평가 또는 비용효과분석의 기준 유연화 등과 같은 제도적 장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 유전성 희귀질환 환자를 치료할 때 유전상담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하다.

희귀질환은 유전상담이 필수다. 유전검사 전, 후 및 사후 관리에서 유전상담은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서비스로 제공돼야 하며, 이는 희귀질환 환자의 케어 만족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현재 유전상담사 수는 제한적이고 의료제도권 내에서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원활한 유전상담 서비스를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데는 한계가 많다.

국내에서 전문적인 유전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유전상담 서비스를 의료행위로 인정하고 이를 급여화 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유전상담 서비스 제도화에 대한 근거나 지원에 대한 법적근거를 마련함과 동시에 유관학회, 산업계, 의료계, 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협력해야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결국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 희귀질환 환자들과 소통할 때 어떤 점을 고려하는지 여쭤보고 싶다. 또, 마지막으로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린다.

진료 중 ‘희귀질환’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보호자들에게 종종 “우리 아이가 희귀한가요? 우리 아이가 정말 보고된 경우가 없나요?”와 같은 질문을 받는다. 드물게 발생하는 질병이라는 의미에서 '희(稀)'라는 한자가 사용되고, 영미권에서도 ‘Rare’라는 명칭을 사용하나 용어가 주는 느낌으로 인해 환자나 가족들이 진단을 수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진단 과정에서 "조금 혹은 드문 질환이다"와 같이 완곡히 표현해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인식의 저항감을 조금이나마 줄이고자 한다. 환자들이 자신의 질환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이고 자신감 있게 대화하기 위해서는 환자와 의료진을 포함한 사회 구성원 간에 올바른 인식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최근에는 여러 희귀질환 치료약물과 다양한 치료 옵션의 기회가 증대되고 있다. 환자들이 치료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질환을 널리 알리고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는 일이 중요하다. 이는 희귀질환에 대한 관심과 치료 연구 개발에 대한 동기를 촉진하게 될 것이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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