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종양내과학회 최원영(국립암센터 희귀암클리닉) 전문의

하루가 다르게 암에 대한 정보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대부분 암 환자의 절실함을 이용한 정보들일뿐 정작 암 환자에게 꼭 필요한 정보는 많지 않다. 이에 코리아헬스로그는 근거 없는 치료에 현혹돼 시간을 소비하는 암 환자들이 없도록 대한종양내과학회와 함께 정확한 정보 전달에 나선다. 국내 암 전문의들이 연재하는 <종양내과 의사에게 듣는 암 이야기>는 암 치료를 앞두고 있는 많은 환자들에게 암 극복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편집자주>

희귀암이란 전체 인구에서 상대적으로 발생률이 낮은 암을 뜻한다. ‘낮다’라는 기준은 사실 정하기 나름이어서 어느 정도까지 희귀암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국가별로 조금씩 다르다. 미국의 국립암연구소(National Cancer Institute)는 인구 10만명 당 15명 미만에서 발생하는 암종으로 정의했고, 유럽의 RARECARE 컨소시엄에서는 인구 10만명 당 6명 미만을 기준으로 희귀암을 정의하고 있다. 

희귀암의 정의를 이렇게 정한 기준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암을 치료하는 표준 치료방침은 임상시험을 통해 정립됐고, 특히나 항암제는 임상시험의 성공여부가 표준 치료로 인정되는지 여부의 기준이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상 환자가 일정한 기간 내에 임상시험에 충분히 등재되어 새로운 항암제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근거를 수립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됐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구가 5,000만명 정도인 나라에서 3년 이내에 500명의 환자가 임상시험에 등재되려면 최소한 해당 암종의 발생률이 인구 10만명 당 6명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유럽의 연구자들이 이 기준을 채택한 것이고, 인구가 더 많은 미국에서는 기준을 높게 잡은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인구가 5,000만명 정도인 우리나라에서도 유럽의 기준과 마찬가지로 인구 10만명 당 6명 미만으로 발생하는 암종을 희귀암으로 분류하고 있다. 

인종별로, 지역별로 암 발생률이 다르기 때문에 외국에서는 희귀암으로 분류되는 암이 국내에서는 비교적 발생빈도가 높은 암인 경우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피부암의 일종인 악성흑색종은 미국에서 인구 10만명 당 20명 정도의 발생률을 보이는 호발암인 반면, 국내에서는 10만명 당 3명 이하로 희귀암으로 분류된다. 반대로 담도암의 경우에는 미국에서 10만명 당 5명 정도로 희귀암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10만명 당 15명 정도여서 희귀암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따라서 나라 별로 희귀암의 종류나 발생 빈도 등의 통계적인 수치가 다를 수밖에 없고, 이에 기반한 정책적인 지원이나 연구에 대한 관심 등에 있어서도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2011년 발간된 유럽의 RARECARE 컨소시엄 연구에 의하면 유럽에서 진단되는 전체 암 환자의 약 22%가 희귀암으로 분류된다고 했으며 국내에서도 2018년 발간된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희귀암으로 분류되는 암은 전체 암 발생의 16%를 차지한다. 각각의 희귀암으로 진단된 환자의 수는 비록 적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희귀암으로 진단된 환자의 수가 결코 적지 않다는 의미다.

하지만 희귀암은 임상시험을 수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수립된 근거가 많지 않고, 그러한 이유로 치료를 하는 의사의 입장에서도, 또 환자의 입장에서도 호발암에 비해 어려운 점이 많다.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희귀암 환자의 생존율이 호발암과 연령별, 성별 생존율이 모두 낮으면서 평균 의료비용 지출은 더 높다고 한다. 희귀암을 치료하는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연구에서도 희귀암 환자를 진료한 경험이 많지 않고, 치료 가이드라인이 부족하다는 점 등을 어려운 점으로 꼽았다.

희귀암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는 많은 협력과 공조가 필요하다. 그 중 하나는 희귀암 환자들의 임상 자료들을 모아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일이다. 최근 암 정밀의료가 발전하면서 각각의 암 환자들의 유전정보를 분석하여 이를 신약개발이나 임상시험을 위한 기초자료로 사용하는 일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대부분의 호발암에서는 종양 조직의 유전정보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자료들이 연구목적으로 공개되어 있다.

하지만 희귀암에서는 이러한 자료도 많지 않은 실정이어서 이러한 한계들을 극복하고자 여러 나라의 연구자들이 함께 희귀암 환자들의 유전정보와 임상정보를 모아서 레지스트리 형태의 자료들을 구축하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이 기초가 되어 향후에는 여러 나라에서 희귀암 환자를 모집하여 진행하는 임상시험 등을 시행함으로써 신약 개발과 검증에 조금 더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에도 여러 연구소와 병원에서 희귀암을 극복하고 더 좋은 치료법들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호발암에 비해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암 연구의 우선 순위에서 밀려 있기도 하고, 다국적 제약회사의 관심과 투자가 덜한 것도 사실이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제4차 국가암관리 종합계획(2021–2025)에 희귀암에 대한 공적 책임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이를 실질적인 변화로 이끌기 위해서는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 경제성을 떠나서 이러한 연구들을 계속 지원하는 사업이 지속되어야 하고, 희귀암에 대해서는 환자들에게 실질적으로 치료제의 접근성을 확대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약제의 허가 및 급여사항에 대해 규제를 완화하려는 정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적인 지원의 밑바탕에는 국민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최원영 전문의

최원영 전문의는 전남대 의과대학을 나와 전남대병원에서 내과를 수련했으며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서 기초 및 중개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립암센터에서 종양내과 전문의로 희귀암 및 위암에 대한 항암치료를 담당하고 있다. 대한종양내과학회, 대한암학회, 항암요법연구회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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