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에 구리 쌓이는 유전성희귀질환 '윌슨병'

간에 구리가 과도하게 축척되면서 간을 망가뜨리는 유전성희귀질환이 있다. 부모 모두에게 병이 없더라도, 부모 두 사람 모두에게 'ATP7B 유전자' 돌연변이 보인자만 있으면 25%의 확률로 자녀에게 유전되는 상염색체 열성유전질환 '윌슨병'이 그것이다.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과 이범희 교수는 유튜브 채널 '의대도서관-[월간 이.범.희] 몸에 구리가 축적되는 윌슨병'에서 "ATP7B 유전자는 구리를 전달해주는 전달체인데, 간에 주로 있어서 간에 구리가 들어오면 그 구리를 ATP7B가 끌고 다니면서 구리를 필요로 하는 단백에 주기도 하고, 구리가 많다고 하면 담즙에 보내버린다"며 "그것이 고장나면 간에 구리는 들어오는데 구리를 간 밖으로 빼내지 못한다"고 윌슨병에 대해 설명했다.   

근육긴장이상증·용혈성 빈혈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윌슨병은 상염색체 열성유전질환 가운데 가장 흔한 희귀질환으로, 인구 3만명 당 1명꼴로 발생한다. 이범희 교수는 "국내 수천명의 윌슨병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윌슨병 유전자 보인자는 50~100명에 한명 꼴로 동아시아에 좀 더 흔하고, 백인에는 드물다"고 말했다. 

현재 윌슨병은 신생아스크리닝검사로 걸러지는 유전성희귀질환이 아니다. 혈액에서 구리를 끌고 다니는 단백 '세룰로플라스민(ceruloplasmin)' 수치가 떨어졌을 때 윌슨병 위험이 있는 것인데, 신생아는 기본적으로 이 수치가 낮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이 어려운 탓이다. 때문에 윌슨병이 의심될 때는 유전자검사를 더 많이 하고 있다.

윌슨병은 대개 우연히 발견된다. 이 교수는 "아기들이 감기에 걸리거나 폐렴이 올 때 병원에 입원했는데 간수치가 생각보다 너무 높고 안 떨어지면서 그 원인을 찾다가 발견되는 경우가 제일 많다"며 "네다섯 살 정도일 때 진단되는 것이 좀 빨리 진단되는 것이고, 그 외에는 간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간경화까지 와서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윌슨병은 성인이 된 뒤 진단되는 경우도 있는데, 성인일 때는 더 늦게 진단될 위험이 높다. 이범희 교수는 "성인 대부분은 간수치가 올라가면 간염으로 치료를 하고 끝나기도 한다"며 "술을 좀 줄여야겠다고 하다가 늦게 진단되는 경우도 있다"고 현실을 짚었다.

윌슨병을 앓는 모두가 간수치가 간염을 의심할 만큼 높은 것도 아니다. 이 교수는 "어떤 경우는 간수치는 별로 안 높은데, 신경학적 증상으로 발현하는 경우도 있다"며 "20~30대 보통 사회생활을 하던 사람이 약간 손이 떨리다가 이제 손이 뻣뻣해지고 발음이 잘 안 되고, 침삼킴도 잘 안 되고, 팔도 뻣뻣해지고 약간 디스토니아(근육긴장이상증) 같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 드물게는 용혈성 빈혈로 이런저런 검사를 하다가 우연하게 윌슨병이 찾아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윌슨병 여부를 파악하려면 세룰로플라스민 수치를 측정하면 되는데, 병원에서 이뤄지는 일반적인 혈액검사에서는 세룰로플라스민 수치를 측정하지 않는다. 즉, 윌슨병을 의심해야만 이 검사를 할 수 있고, 그래야 윌슨병을 진단할 수 있다. 이범희 교수는 "바이러스성 간염으로 보기에는 조금 오래가거나 설명이 안 되는 간수치라고 하면 윌슨병을 의심하고 세룰로플라스민 수치를 측정하는 검사를 해보라"고 권했다. 

진단이 늦으면 간경화로 인해 황달이 생긴 상태에서 윌슨병이 발견되기도 한다. 소아의 경우도 윌슨병이 전격성 간염과 겹쳐지면서 진단될 때도 있다. 이 교수는 "윌슨병을 갖고 있다가 바이러스감염이 겹치면서 확 나빠지는 것"이라며 "거의 간부전 수준으로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사실 윌슨병 때문에 생명이 굉장히 위태로워지는 경우가 소아 때도 있기는 있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윌슨병이 발견이 너무 늦으면 치료를 해도 증상이 잘 회복되지 않는다. 이범희 교수는 "신경학적 증상은 치료를 해도 잘 안 돌아온다. 아주 서서히 조금씩 돌아온다"며 "또 간경화까지 간 간은 구리를 빼내면 일부는 돌아오기도 하고 약물치료로 몇 십년 동안 관리되는 환자도 있다. 진행이 되면 그때는 간이식을 한다"고 말했다. 

'구리 제한식이'와 '구리 배출·흡수 조절제'로 치료

윌슨병은 구리를 제한하는 식이요법과 구리를 몸에서 빼내거나 흡수를 못 하게 하는 약물로 치료한다. 초콜릿, 견과류, 간, 버섯 등과 같이 구리가 많은 음식을 피하면서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치료가 주로 이뤄진다. 치료 약물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이 교수는 "하나는 체내에서 구리를 소변으로 빼주는 페니실라민"이라며 "그런데 골수억제(Bone marrow supression)나 단백뇨 위험성이 있어서 이런 것들을 모니터링하면서 쓰는데, 몇 십년 동안 안정적으로 약을 쓰는 환자도 있다"고 말했다. 또 페니실라민과 작용은 유사한데 약간 부작용을 줄인 약이 있다. 트리엔틴으로 간에 쌓여있는 구리를 소변으로 빼내는 작용을 한다. 

이범희 교수는 "또 하나는 아연이 포함된 약을 먹는 것"이라며 "그 약은 장에서 구리가 흡수되지 않도록 하는데, 장에서 구리랑 붙어서 아예 체내로 못 들어가게 하는 작용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 세 가지 약제 중 윌슨병 환자에게 가장 맞는 약을 선택해 현재는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 

이 교수는 "신경학적 증상이 있는 경우는 페니실라민이나 트리엔틴은 신경학적 증상을 좀 악화시킬 수 있다는 보고가 있어서 이런 환자는 아연이 들어간 약을 쓰고 있다"며 "대개는 약은 공복에 미리 먹어서 장을 준비시키고 그 다음에 음식을 먹는다"고 윌슨병 약물의 복약법에 대해 설명했다. 

모든 윌슨병 환자에게 반드시 약물치료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범희 교수는 "아기에게 구리가 결핍되면 뇌 발달에 안 좋을 수 있기 때문에 대개는 2~3년 정도 뇌가 발달하는 기간 동안에는 치료는 가능한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윌슨병 환자에게 구리 섭취를 완전히 차단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 교수는 "윌슨병이 구리가 축적되는 질환이기는 하지만 구리를 필요로 하는 효소들의 결핍으로 또 여러가지 증상들이 생긴다. 그래서 구리를 어느 정도는 주기는 해야 한다"며 "약물치료를 해서 어느 정도 안정되면 구리를 조금씩 먹어도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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