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사타구니 주변에 바늘로 찔른 듯한 '혈관각화종' 잘 생겨
땀 잘 안나 뙤약볕에 운동하면 열 크게 올라…"통증도 악화돼"
주로 혈관 내피세포에 문제 초래…뇌·심장·콩팥에 합병증 초래

20~30대 젊은 사람들에게 심근비대, 단백뇨가 있을 때 의심해볼 질환이 있다. 바로 유전성희귀질환 '파브리병'이다. 특히 땀이 잘 나지 않는 체질로 뙤약볕에서 조금만 운동해도 열이 잘 오르거나 손끝이나 사타구니 부위에 바늘로 찔러 핏줄이 터진 모양의 '혈관각화종'이 있으며 손발끝 부위에 바늘에 콕콕 찔린 듯한 통증이 있으면 그 가능성은 더 올라간다. 

서울아산병원 의학유전학과 이범희 교수는 유튜브 채널 '의대도서관-[월간 이.범.희] Ep.8 꾀병으로 의심받는 희귀질환 파브리병'에서 파브리병에 대해 "알파갈락토시다아제라는 효소에 문제가 생기면서 발병하는 질환"이라며 "당지질을 분해하는 효소 중 알파갈락토시다아제에 문제가 생기면 전구물질들이 쌓이게 되는데, 전구물질 중 글로보트리아실세라마이드(Gb3)가 축적되면서 생긴다"고 설명했다.  

 

우리 몸에 Gb3가 축적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우선 자율신경계에 문제가 생겨 우리 몸의 땀 분비가 감소한다. 땀 분비는 우리 몸의 체온조절시스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땀이 밖으로 잘 나가지 못하면서 무더위 속에 체온이 빠르게 오를 수 있다. 손끝이나 사타구니 부위에 혈관각화종도 잘 생긴다. 

이범희 교수는 "파브리병 환자의 특징이 피부에 바늘로 콕콕콕 찔러서 핏줄이 터진 것 같은 혈관각화종이 손끝에 생기기도 하고 사타구니 쪽에도 잘 생긴다"며 "통증도 굉장히 심한데, 환자들은 손끝, 발끝을 바늘로 계속 콕 찌르는 것 같거나, 칼로 긁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뙤약볕에 운동하면 막 열이 나는데, 땀이 안 나니까 열은 열대로 올라가서 통증이 확 심해진다"고 설명했다. 

파브리병을 앓으면 혈관 내비세포에도 문제가 잘 생긴다. 이 교수는 "정확히 왜 그런지 모르는데, 주로 혈관 내피세포에 문제가 생긴다"며 이런 까닭에 심장의 근육이 비후되면서 섬유화가 같이 오는 심근병증이 있을 때 꼭 생각해야 될 질환 중 하나가 파브리병이라고 짚었다.

지속적으로 심장이 두꺼워지면서 중년이 넘어간 파브리병 환자에게는 심부전이 생기기도 한다. 또 혈관이 많은 콩팥(신장)에도 타격을 줘 단백뇨가 나타나면서 만성 신부전이 생길 수도 있고, 일부는 뇌혈관에 문제가 생기면서 뇌졸중이 생기기도 한다. 심부전, 신부전, 뇌졸중이 대표적인 파브리병의 장기 합병증인 것이다. 

파브리병은 X염색체 관련 열성 유전되는 희귀한 유전성대사질환으로 여성에게도 생길 수 있지만, 주로 남성에게 땀 분비 감소, 손끝과 사타구니 부위의 혈관각화종, 손끝·발끝의 통증 같은 증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이범희 교수는 "여자 환자는 남자 환자보다 증상이 조금 적다"며 "남자 환자는 대개 20대만 되도 단백뇨도 나오고 통증 같은 것도 10대만 되도 굉장히 심한데, 여자들은 통증 별로 없다가 나중에 중년쯤 돼 단백뇨가 발견돼 진단된다"고 설명했다. 

파브리병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나는 남성도 빠른 진단이 쉽지 않다. 흔한 증상인 혈관각화종을 '피브 트러블' 정도로 보지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다 발병 초기에 통증 부위에도 큰 문제가 확인되지 않는 까닭이다. 이 교수는 "실제 10대쯤 학교 다닐 때 파브리병이 발병해 꾀병 부리는 것 같다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다행히 파브리병은 치료제가 나와 있어 조기 진단이 되면 뇌졸중, 심근병증, 만성콩팥병 같은 합병증을 막을 수 있다. 이범희 교수는 "효소를 외부에서 만들어서 넣어주는 치료가 있는데, 우리나라에 3가지 약이 들어와 있다"며 "최근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허가 난 것도 있어서 전 세계적으로 4가지 약이 있다"고 말했다.

첫 번째 약은 파브라자임이라는 효소로 동물세포 기반의 약제다. 두 번째 약은 레프라갈로, 사람 세포를 가지고 만든 제제다. 세 번째는 파바갈로 동물세포 기반의 약제이며 파브라자임과 아미노산 구성이 똑같은 바이오시밀러다. 모두 2주에 한 번씩 맞아야 하는 주사치료제다. 또 최근 미국에서 허가된 약제는 식물세포 기반의 효소치료제다.   

이외에 효소의 기능을 올려주는 경구용제제인 샤페론(거대 단백질의 합체나 해체를 돕는 단백질) 제제가 하나 더 있는데, 갈라폴드(성분명 미갈라스타트)가 그것이다. 하지만 샤페론 제제는 제한점이 있는데, 이 약에 듣는 돌연변이가 있을 때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 약이 파브리병에서 문제가 있는 효소에 붙기는 하는데, 효소의 기능을 올려줄 수 있는 돌연변이 종류들이 있고 못 올려주는 돌연변이가 있다"며 "이것이 듣는 유형이면 샤페론을 쓸 수 있는데, 이 샤페론의 장점 중 하나는 먹는 약이라는 것이지만, 샤페론 제제는 효소치료제에 비해 한참 뒤에 나온 약이어서 좀 더 장기적인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제한점을 설명했다. 

파브리병은 치료제가 있지만, 진단이 너무 늦으면 치료 효과가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다. 이범희 교수는 "단백뇨가 있는 파브리병 환자가 효소치료를 한다고 단백뇨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며 "신기능이 나빠지는 것이 치료를 안 했을 때보다는 '나빠지는 속도'가 더디다는 것"이 현재 기대할 수 있는 효과라고 말했다. 

또 "파브리병 환자의 심장벽이 두꺼워진 게 효소치료를 했을 때 얇아졌으면 좋겠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안 된다. 병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 치료하면 그때는 치료를 안 했을 때보다 '병의 경과를 더디게 하는 정도의 효과'인 것 같다"며 치료 효과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는 비가역적인 손상이 있기 전의 파브리병 환자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파브리병 장기 합병증이 생겼을 때는 합병증에 대한 치료도 같이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교수는 "콩팥이 이미 안 좋아진 환자는 효소치료를 하지만 이식준비는 이식준비대로 한다"며 "심장이 나쁜 환자는 위험한 것이 부정맥인데, 효소치료를 하다가 부정맥이 심해져서 굉장히 안 좋아지는 환자도 있어서 부정맥이 있는 환자는 제세동기 이식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파브리병을 조기 진단하기 위한 방안으로 '신생아스크리닝' 검사를 떠올릴 수 있지만, 파브리병의 신생아스크리닝검사는 윤리적인 측면에서 논쟁 지점이 있다.

이범희 교수는 "파브리병 환자들이 대개 증상이 10대 이후에 생겨서 신생아 수준에서 미리 이 병을 아는 것이 '가족에게 도움이 되느냐'라는 이슈가 있다"며 "그런데 신생아를 통해서 이미 성인기에 있는 다른 친척 중에 환자를 찾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며 아직 파브리병에서 신생아스크리닝은 논쟁적 측면이 있지만 그래도 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짚었다. 

이외에 파브리병을 조기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은 10대 청소년이 손끝, 발끝이 계속 아프다고 말하거나 땀이 안 나는데 조금만 뛰어도 열 오를 때 한 번쯤 파브리병을 의심해보고 검사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파브리병 환자마다 증상 차이가 굉장히 심해서 이를 통해 100% 환자를 걸러내기 어려울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좀 더 효과적인 것은 조기 발견법은 하이리스크(high risk) 스크리닝이다. 이 교수는 "젊은 나이에 단백뇨가 있거나 콩팥 기능이 떨어져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스크리닝을 하는 경우"라며 "젊은 나이에 심장근육이 비후가 있거나 뇌졸중이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스크리닝을 했을 때 그 환자들 중에서는 좀 더 찾을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이범희 교수는 "파브리병에서 하이리스크 스크리닝프로그램은 굉장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심장내과, 신장내과, 신경과 등에서 파브리병 환자들을 찾기 위한 스크리닝 프로그램은 굉장히 활발하게 진행해 파브리병 환자 숫자가 국내 많이 늘기도 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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