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욱 미래의료포럼 상임위원(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장)

1년의 수련이 마무리되는 2월의 어느 날, 전공의들은 더 이상 수련을 받지 않겠다며 사직서를 내고 전문의 자격 취득을 위한 길을 포기했다.

정부는 언론 매체들을 동원해 집단 사직, 파업 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과거에 있어왔던 정부 정책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집단행동을 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조병욱 미래의료포럼 상임위원
조병욱 미래의료포럼 상임위원

이미 4년 전 같은 소동을 겪었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탓일까? 이전까지는 그 어떤 집단행동에서도 시작부터 자신이 일하던 병원을 그만 두겠다고 사직서를 제출한 적은 없었다.

게다가 이번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은 어느 집행부나 지도부, 지도자의 지시나 선동에 의해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오히려 내부에서도 놀랄 정도의 움직임이었다(이후의 일 들을 수습하기 위한 대책 논의를 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의 일련의 행동은 마치 화재 사고가 난 고층 빌딩에서 대탈출하는 시민들의 모습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살기 위해 다 같이 뛰쳐나왔을 뿐. 그럼에도 자의로 수련을 포기하겠다는 이들을 정부는 왜 끝까지 파업이라고 부르며 붙잡고 있는 것일까?

'저비용 고효율'로 이뤄 낸 대한민국 의료의 핵심 자원

우리나라의 전문의 비율은 전체 의사의 80%가 넘는데 이는 우리나라 의료의 2가지 부분에서 고효율을 가져왔다.

하나는 매우 싼 인건비로 수련 병원의 중증과 고난도 의료에 다수 의사 인력을 확보하도록 전공의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줬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민들의 전문 의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줄 수 있도록 1차 의료 기관에 전문의들이 공급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의료가 저렴한 비용으로도 눈부신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전공의들의 낮은 임금 덕이라고 볼 수 있다.

‘기본급(주당 44시간 X 최저시급)+추가근무(당직 등)’와 기타 수당으로 전공의 급여가 책정되는 것을 보면 그들의 헌신으로 대한민국 의료가 유지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저시급을 받으며 전공의 수련을 하는 이유는 바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함이지만 이들은 이 수련을 포기했다. 한마디로 법이 정한 최소한의 근로 기준 급여를 받으며 일하던 노예가 도망간 것이다.

전문의 자격증 휴지장으로 만드는 '패키지 정책'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에 제시된 여러 정책 중 '병원의 전문의 고용 증대'와 '대안적 지불제도'는 보건복지부가 대한민국 의료를 변화시킬 방법에 대한 자세를 보여준다.

제시된 설명대로면 늘어난 의대 정원으로 인한 의사 수를 병원의 고용 인력으로 흡수하고, 지역 의료로 분산시키며 필수 의료에 대한 보상을 위해 대안적 지불 제도를 적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책을 하나하나 분리해서 읽어보면 병원 전문의 고용 증대를 위한 지원 또는 수가 변화는 정해지지 않았으며, 대안적 지불제도는 필수 의료에 대한 보상을 위한 기전은 개발이 되지도 않았다.

현재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제시된 대안적 지불제도는 의원급에 적용될 ‘총액계약제+인두제+네트워크형(묶음형) 1차 의료기관 통합지불제’이다.

정부 의도는 전문의를 양산해 인건비를 강제적으로 낮춰 병원에서 고용이 쉽도록 유도하고, 1차 의료 기관 진료 기능은 그동안 해오던 전문 의료 공급을 제한하고 다른 국가들처럼 일반의 수준의 의료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앞서 복지부 박민수 제2차관이 전공의를 대상으로 한 간담회 자리에서 밝혔던 내용과 일맥상통하다.

정부의 이같은 의료 정책은 건국 이래로 대한민국 의료를 눈부시게 발전시켜온 의사들과 이 의사들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전공의 수련을 하며 희생한 것들을 송두리째 짓밟아버리는 것이다.

그동안 전문의 고용을 하지 않아도 상급종합병원을 비롯한 수련병원들이 유지될 수 있도록 방관해 오다 더이상 전공의 수급이 어려워지자 아예 의사 숫자를 늘리고 1차 의료기관의 기능을 평가 절하하는 정책을 쓰는 것은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것이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해도 미래가 없는 지금의 전공의는 당연히 수련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당장 몇 년 뒤 전문의가 되고 나서도 병원은 채용을 하지 않을 것이고, 개원한다 해도 대안적 지불제도로 인해 전문의 진료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우리의 후배들을 환자들 곁에서 떠나가게 한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대한의사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 이들이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은 바로 대한민국 정부다.

집단행동 교사 처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바로 복지부 장·차관과 대한민국 정부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일 것이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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