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신약 간 병용요법..."급여 해결에 정부가 나서야..."
'살클리사' 출시 포기..."국내 환자의 치료 선택권 줄어들어"

한정된 보험 재정으로 모든 약에 급여를 보장하기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가 항암제나 희귀질환치료제, 필수의약품 등을 위한 별도의 급여 트랙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수정해 가며 환자들의 접근성 제고를 위해 노력 중이지만, 의료 기술의 발전과 약이 개발되는 속도는 항상 그보다 한발 앞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결국 보험당국과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가야 하는 숙제와도 같다. 코리아헬스로그의 자매지 청년의사는 최근 얀센 '다잘렉스(성분명 다라투무맙)'라는 숙제를 푸는 과정에서 드러난 국내 보험제도의 맹점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의료계와 업계 관계자들의 제언을 들어봤다.

다잘렉스는 항 CD38 항체로, 다발골수종 치료에 승인된 최초의 단클론항체 의약품이다. 국내에서는 2017년 11월 '프로테아좀억제제와 면역조절제제를 포함해 적어도 세 가지 치료를 받은 재발·불응성 다발골수종 치료(4차 이상)'에 단독요법으로 최초 허가를 받은 후 현재는 재발·불응성 환자의 1차 치료(DVd, DKd, DRd), 새롭게 진단된 환자에서 다양한 관해유도요법(DVMP, DVTd, DRd)에 표준치료제로 허가돼 있다.

하지만 국내에 도입된 지 6년이 훨씬 지난 현재까지 다잘렉스가 급여 적용되고 있는 적응증은 최초로 허가 받은 '4차 이상에서의 단독요법'뿐이다. 새롭게 진단된 환자에서 DVMP, DVTd, DRd 요법은 다잘렉스를 제외한 나머지 병용요법(VMP, VTd, Rd)은 본인일부부담(5/100)으로, 다잘렉스는 전액본인부담(100/100)으로만 허용되고 있다.

때문에 다잘렉스 치료 비용을 온전히 부담할 수 있는 소수의 환자를 제외하면, 국내에서 대부분의 환자들은 수차례의 치료 실패로 상태가 악화된 후에야 다잘렉스를 사용할 수 있다. 국내 전문가들이 다발골수종 분야의 가장 시급한 문제로 다잘렉스 급여 확대를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로 진단된 환자에서 이미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잡은 다잘렉스에 대해 현재와 같은 급여 제한이 지속된다면, 장기적으로 국내외 환자들의 생존율 차이가 초래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초치료의 중요성을 주창하는 전문가들과 다르게, 정부는 늘 그래왔듯이 재발·불응성 환자에서부터 다잘렉스의 급여 확대를 검토 중이다.

한국얀센이 신청한 DVd(다잘렉스/보르테조밉/덱사메타손) 3제요법에 대해 현재 급여기준 확대 심사가 진행 중이며, 해당 안건은 지난 2월 암질환심의위원회를 통과했다.

DVd는 되고 DKd는 안되고...제도가 만들어낸 '촌극'

사실 재발·불응성 다발골수종 1차 치료에 다잘렉스 기반 3제요법에 대한 급여 심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22년 11월에는 DKd(다잘렉스/카르필조밉/덱사메타손)요법이, 2023년 3월에는 DVd, DKd, DRd(다잘렉스/레날리도마이드/덱사메타손)요법이 암질심에서 논의돼 급여기준 설정에 실패한 바 있다.

이제야 겨우 DVd 요법만이 암질심에 올라 통과된 것인데, 여기에는 웃지 못할 사정이 숨겨져 있다.

작년 3월 DVd, DKd, DRd 요법이 모두 심사 대상에 올랐을 당시 한국얀센은 그 중 DVd에 대한 급여 신청만 진행했다. 나머지 DKd, DRd 요법은 학회에서 의견서를 내 진행된 것이다.

임상의 입장에선 DVd 요법만 급여될 경우 진료 현장에서 일어날 혼선이 예상되고, 또한 DKd, DRd 요법이 필요한 환자들이 있는 만큼 급여 심사가 한꺼번에 이뤄지는 게 당연한 수순. 하지만 결과는 세 가지 요법 모두 낙방.

결국 한국얀센이 재도전한 DVd 요법만이 암질심 문턱을 넘었고, 이에 대해 학회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작 재발·불응성 1차 치료에 가장 급여가 필요한 치료법은 DKd 요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윤덕현 교수는 "새롭게 진단된 환자에서 레날리도마이드 유지요법이 급여 적용된 이후 재발·불응성 치료에 DRd를 쓸 수 있는 환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앞에서 레날리도마이드를 사용하고 치료 실패한 환자라면 내성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재발·불응성 1차 치료에 DKd와 DVd를 직접 비교한 임상 연구는 없지만, 현재까지 데이터를 종합해보면 DKd가 무진행생존기간 면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보여줬다"며 "세 가지 요법이 모두 급여 적용되면 가장 좋겠지만, 앞선 치료에 보르테조밉이나 레날리도마이드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DKd요법의 급여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DKd요법이 번번히 급여 심사에서 제동이 걸린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보험제도 상 예고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항암요법에 그간 사용돼 온 병용약물은 이미 특허가 만료된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 의료 기술의 발달로 신약 간의 병용요법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우려했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란 지적.

DKd요법에는 얀센이 보유한 '다잘렉스'와 암젠이 보유한 '키프롤리스'가 포함돼 있다. 결국 해당 요법이 급여를 적용 받기 위해선 두 제약사가 모두 동시에 급여 신청에 동의해야 한다.

예상 환자수와 그에 따른 소요 재정 증가, 각 제약사가 분담할 재정분담안 및 공단과의 약가협상까지 두 제약사가 모두 참여하지 않으면, 애초에 급여 논의가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제약사 대부분의 본사 방침은 타 제약사와의 논의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담합'의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

한국얀센과 암젠코리아가 의료진과 환자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먼저 나설 수 없는 말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경우엔 정부가 협상 테이블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전했다. 예컨데, 제약사 중 일방이나 학회 등에서 DKd 요법에 대한 급여를 요청할 경우 정부가 각 이해관계자를 한자리에 모아 담합에 대한 가능성을 제거하고 논의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

경쟁도 포기하게 만든 국내 시장…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다잘렉스의 급여 지연은 비단 환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시장에 대한 가치도 현저히 떨어뜨렸다.

사노피가 다잘렉스 후속약으로 개발한 '살클리사(성분명 이사툭시맙)'는 2020년 12월 식약처로부터 '이전에 레날리도마이드와 프로테아좀억제제를 포함한 두 가지 이상의 치료를 받은 다발골수종 환자에서 포말리도마이드 및 덱사메타손과의 병용요법(3차 이상)'으로 허가 받았다.

하지만 사노피는 사실상 국내 출시를 포기했다. 앞서 경쟁 제품인 다잘렉스가 급여 문제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만큼,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살클리사가 국내 출시를 포기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윤덕현 교수

윤덕현 교수는 "현재 해외에선 다라투무맙과 함께 이사툭시맙이 다양한 병용요법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국내에는 들여오지 않아 사용조차 할 수 없다"며 "이사툭시맙은 다라투무맙과 별개로 사용할 수 있는 병용요법이 있는데, 결국 국내 환자들은 해외에 비해 치료 선택권이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특허가 끝나지 않은 신약과 신약 간 병용요법은 앞으로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특히 고형암에서 면역항암제가 암종을 불문하고 기본(backborn) 약제로 사용되는 일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기전의 신약과 병용요법으로 긍정적인 데이터를 쏟아내고 있다.

일례로 방광암에서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는 항체-약물접합체(Antibody-Drug Conjugate, ADC)인 '파드셉(성분명 엔포투맙베도틴)'과 병용해 치료 성적에 큰 향상을 불러와, 현재 미국에서 수술이 불가한 진행성 방광암 1차 치료에 허가돼 사용 중이다.

추후 국내에 해당 적응증이 확대된다면 키트루다를 보유한 한국MSD와 파드셉을 보유한 한국아스텔라스 역시 동일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 같은 이유로 의료계와 업계는 다잘렉스 급여 심사를 반면교사 삼아 정부가 변화하고 있는 의료 기술을 반영한 새로운 급여 트랙을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아 제언했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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