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모병원 위장관외과 송교영 교수

젊은 의사들이 떠난 병원은 휑하다. 시끌벅적했던 의국은 스산하고, 5인실 병실은 환자 1~2명이 채우고 있다. 빅5를 포함한 전국의 대학병원에 근무하던 인턴, 레지던트라고 불리는 전공의들과 전임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났다. 하지만 응급실, 수술실, 병실에는 교수 등 선배 의사들이 남아 있다.

대학병원 밖, 개인의원들이나 중소병원은 큰 변화 없이 돌아가고 있다. 감기 같은 가벼운 병으로 가까운 의원에서 진료를 받는 일은 아무 문제가 없으나 암과 같은 중증질환으로 수술이나 항암치료 같은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일정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청년의사+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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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에 가면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이 모두 같은 의사는 아니다. 대학병원은 의과대학에 소속된 병원(affiliated hospital)으로 의대 학생들이 임상실습을 하고, 그들이 졸업해 의사가 되면 전문의가 되기 위한 교육과 수련을 시키는 그야말로 수련병원(teaching hospital)으로 진료와 함께 교육·수련이 이뤄지는 곳이다.

의사가 되기 위해 의대(예과 2년+본과 4년) 본과 3~4학년 학생은 2년간 임상실습을 해야 한다. 매년 1월 의사국가고시를 치러 합격하면 의사면허증을 받고 비로소 의사가 된다. 갓 의사가 된 초보 의사는 대부분 대학병원에서 1년간 모든 과를 한 달씩 도는 수련을 하는데 이들을 인턴이라고 부른다.

인턴 1년이 끝나갈 무렵 자신이 평생 일할 과를 정하게 되는데 이때 내과, 외과, 피부과 등 운명이 정해지고 정규 시험과 인턴 성적을 바탕으로 원하는 병원에 지원을 하게 된다. 합격하게 되면 비로소 이들을 레지던트라고 부르고 3~4년 간 수련을 받게 된다. 보통 둘다 전공의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인턴은 레지던트와 구분해 '수련의'라고 부른다.

인턴들은 의사면허증이 있으므로 사회에 나와 개업을 해도 되고, 일반 병원에 취직도 가능한데 이들을 '일반의(general physician, GP)'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의사들은 이런 일반의가 아니라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전공과를 표방한 전문의의 길을 택한다. 

3년 또는 4년간의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하면 전문의 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지고 시험에 합격하면 비로소 전문의가 된다. 이때부터 내과전문의, 외과전문의, 또는 성형외과전문의 등 전문의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다. 의대 6년, 전공의 4~5년을 보내면 10년이 걸리는데, 남자의 경우 군대 3년까지 하면 13년이다. 

18세에 대학에 입학한다고 가정하면 전문의가 됐을 때 28~31세가 되는데, 요즘의 의대 입학 과정을 보면 재수, 삼수가 기본이고, 다른 전공과를 하다가 의대에 오는 경우도 흔해서 대부분의 전문의는 30대 중반에 시작한다. 전문의가 됐다고 해서 바로 전문적인 진료를 잘 보기는 어렵다. 

전문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이른바 필수의료과라고 불리는 외과, 내과, 산부인과, 소아과, 응급의학과 등의 초보 전문의는 실제 현장에서 자기 환자를 보기에는 아직 미숙해 전문의 취득 후에도 2~3년 더 수련 받는다. 전문의가 되어서도 더 배운다는 뜻이다. 이 사람들은 '전임의'라고 칭하는데 병원에서는 펠로우(fellow) 또는 임상강사라고 부른다.

전임의는 좀 더 세부적인 전공을 택해 집중 수련을 받는다. 예를 들어, 외과 전문의를 취득한 뒤 세부전문과로 위장관외과를 선택하게 되면 위암 등 상부위장관 질환 수술과 치료만을 전문적으로 수련 받게 된다. 대장암 수술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면 대장항문외과에서 2~3년간 전임의를 더 해야 한다. 전임의 과정을 종료할 때쯤 비로소 정규 교수로 지원할 수 있으며 병원의 사정, 본인의 업적 등을 토대로 교수가 될 수 있다. 

전공의나 전임의 모두 환자 입장에서는 실습 나온 학생 같기도 하고 어려 보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의사면허증이 있는 의사이고 병원 내에서 책임과 의무를 갖는다. 의대 교육을 통한 지식 습득과는 차원이 다른 매우 오랜 시간 동안의 경험과 실제 수련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어느 병원에서 어떤 교수에게 수련을 받았는지는 아주 중요한 커리어가 된다.

병원 입장에서 이들은 매우 중요한 인재들이다. 장차 병원과 대학을 이끌 미래의 리더가 이들 중에서 나오기 때문에 항상 평가하고 관심을 기울여 지켜보게 된다. 또 전공의나 전임의는 배우는 사람의 입장이라는 특성 때문에 상상을 초월한 격무와 스트레스를 감내하게 된다.

과거 필자가 전공의 수련을 받을 때에는 한달에 약 20일 정도 당직을 서고 다음날 수술방에 들어가는 일이 허다했지만 200만~300만원 정도의 월 급여를 받았다. 격무로 인해 전공의가 피로로 인해 환자 진료에서 문제가 생기는 일이 발생하고, 외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 꼭 필요한 과의 전공의 지원이 몇 년째 미달됐다.

무엇보다 전공의는 일을 시키는 대상이 아닌 '교육을 받는 수련의사다'라는 인식의 확대되면서 이른바 전공의 특별법 등으로 근무시간을 제한하고 급여를 향상시켜 왔으며, 최근 필수의료과 중심으로 체계적인 수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의사가 약 30년간 일한다고 생각해 보면 인턴, 레지던트 기간의 5년은 그리 긴 시간은 아닐 수도 있다. 전공의들은 이 시간 동안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는 장시간의 노동을 하며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지 못하지만 전문의가 된 이후의 보람된 삶을 그려가며 사는 것이다.

미래의 그 삶이 그닥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으면, 즉 일한 것에 비해 대접을 못 받는다고 느끼면 전공과목으로 택하지도 않는다. 외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이 그렇다. 미래가 달콤해 보인다면 비록 몇 년이 걸리더라도 경쟁을 해서라도 그 길을 택한다. 소위 말하는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 정재영(정신건강의학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등이 그렇다.  

외과의사로서 지난 20여년간 학생, 인턴, 레지던트들을 지도해 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 대다수가 외과에서의 실습, 수련, 수술방 경험 등을 좋아하고 자랑스러워 한다. 그렇지만 내가 할 일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지방 의대를 졸업한 소위 상위 몇 프로 의사들은 앞 다투어 빅5병원에 인턴으로 지원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문의가 되고 싶어 한다. 많은 젊은 의사들은 일을 많이 해서 돈을 버는 것 보다 일을 덜하고 자기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싶어 한다. 1~2년 정도 쉬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여행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외과 지원이 아무리 줄었다고 해도 매년 150명 정도는 항상 지원자가 있었다. 하지만 소위 인기과에 최상위권 젊은 의사들의 지원이 몰리면서 필수의료과 수준은 자연스레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한때 필수의료과에 최상위권 젊은 의사들이 몰렸던 시절이 있었다. 2024년 한국의료 상황이 왜 이같이 반전됐는지 깊히 생각해볼 때다.

서울성모병원 위장관외과 송교영 교수
서울성모병원 위장관외과 송교영 교수

송교영 교수는 1995년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메모리얼 슬로언-케터링 암센터에서 연수했다. 송 교수는 위암 복강경수술과 로봇수술로 명성이 높다. 현재 서울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외과 과장, 위암센터장과 로봇수술센터장을 맡고 있다. 국제위암학회, 미국소화기내시경외과학회, 대한암학회, 대한소화기학회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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