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현준호 교수
1차 치료에도 악화된 환자에 위험 감소 효과 제공
“현장서 내약성 뛰어나…일부 환자에서 증상 소실”

고령화로 인해 국내 심부전 유병률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대한심부전학회가 지난해 발간한 팩트시트 2022에 따르면, 국내 유병률은 2022년 0.77%에서 2020년 2.58%로 크게 증가했다. 심부전 환자의 입원도 2015년 743건에서 2020년 1,166건으로 늘어났다. 특히, 심부전은 증상 악화로 인한 입원을 거듭할수록 예후가 나쁘다. 심장 기능이 저하된 박축률 감소 심부전(HFrEF) 환자에게 입원 위험 감소를 목표로 치료가 진행되는 이유다.

현재 ▲RAAS 억제제(ACEI, ARB, ARNI) ▲베타차단제 ▲염류코르티코이드 수용체 길항제(MRA) ▲SGLT-2 억제제 등 네 가지 약물로 HFrEF 환자 1차 치료가 이뤄지지만, 그럼에도 일부 환자는 증상 악화를 경험해 재입원하거나 응급 외래 진료를 받아야 했다. 때문에 그간 임상현장에서는 4제 요법에도 증상이 악화된 환자들을 위한 새로운 치료 옵션이 요구돼 왔다.

이 가운데 기존 치료제와는 다른 기전을 지니고 있으며, 심부전 악화를 반복하는 환자에서 증상 개선 효과를 확인한 ‘베르쿠보(성분명 베리시구앗)’가 등장했다. 지난해 9월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처방이 시작된 상황. 이에 본지는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현준호 교수를 만나 1차 표준치료에도 증상 악화를 경험한 HFrEF 환자의 미충족 수요와 베르쿠보의 임상적 가치, 처방 경험 등에 대해 들었다. 인터뷰는 의대 정원 확대 논란이 불거지기 전인 지난달 초 진행됐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현준호 교수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현준호 교수

- 심부전은 예후가 나쁜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치료 환경은 어떠한가.

20세기 후반까지도 심부전은 걸리면 죽는 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980년대와 1990년대부터 좋은 심부전 약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베타차단제, ACE 억제제, ARB, MRA가 등장하면서 3제 요법을 통해 심부전 환자의 생존율이 증가했다. 2014년에는 ARNI의 PARADIGM-HF 연구 결과로 또 한 번 패러다임이 전환되며 생존율이 증가했다. 2020년대에 들어서는 SGLT-2 억제제가 등장하고 1차 약제로 승인되면서 이른바 ‘판타스틱 4’라고 불리는 4제 요법을 구성하게 됐다. 덕분에 심부전 환자의 생존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다만, 일부 심부전 환자가 겪는 부담은 아직도 큰 편이다.

- 4개 약제가 1차 표준치료로 자리를 잡았음에도 환자 부담이 남아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1차 약제를 통해 예후가 개선된 것은 분명하지만 미충족 수요가 존재했다. 4제 요법을 전부 최적으로 사용해도 악화를 겪는 환자가 있다. 최근에 나온 SGLT-2 억제제 연구를 보면, 7명 중 1명은 여전히 심부전 악화를 경험한다. 1차 표준치료에도 증상이 악화된 환자에게 선택할 수 있는 2차 치료는 제한적이다. 2016년 유럽 심부전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보면 ‘이바브라딘’ 또는 CRT(심장 재동기화 치료) 외에는 딱히 선택지가 없다. 문제는 악화(Worsening)를 경험한 환자들은 다시 악화될 확률이 높고, 악화가 반복될수록 사망률이 계속 증가한다는 것이다.

입원을 경험한 심부전 악화 환자들이 느끼는 경제적 부담도 크다. 입원을 할 경우 단순히 약물 조정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양한 추가 검사를 해야 하고 입원 기간도 긴 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입원 환자의 보험 청구 비용이 외래환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 지난해 2차 치료 약제인 베르쿠보가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받게 되면서 처방권에 진입했다. 심부전 환자들이 어떤 치료 혜택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적응증 조건을 만족시키기가 쉽다. 예를 들어, 신기능만 놓고 보면 MRA나 ARNI, 사쿠비트릴‧발사르탄(제품명 엔트레스토), ACE 억제제는 대부분 eGFR이 30mL/min/1.73ml2 이상 돼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데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환자가 꽤 많았다. 반면, 베르쿠보는 eGFR 15mL/min/1.73ml2 이상이면 사용할 수 있다.

혈압 관리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다. 기존 1차 약제를 사용하면 대부분 혈압이 떨어진다. 약제에 따라 떨어지는 정도가 달라지지만 용량을 올릴수록 혈압이 점점 낮아진다. 그래서 실제 권고되는 목표 용량에 도달하는 환자 비율이 절반도 안 된다. 베르쿠보는 처방 시작 기준이 100mmHg 이상으로, 낮은 편에 속한다. 현저한 저혈압이 아니라면 처방해볼 수 있는 것이다. 데이터 상으로 볼 때도 혈압 강하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다. 3상 임상시험 VICTORIA 연구에서 베르쿠보를 사용한 환자들의 수축기 혈압이 베르쿠보를 사용하지 않는 환자군과 비교했을 때 0.3mmHg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급여 기준이 넓은 것도 장점 중 하나다. 기존 약제 급여 기준은 좌심실 박출률 40% 미만이지만 베르쿠보는 45% 미만을 기준으로 한다. 예를 들어, 좌심실 박출률이 41%~42%가 나오면 엔트레스토는 급여 적용이 안 된다. 베르쿠보가 기존 약제가 커버하지 못하는 환자군을 커버한다고 볼 수 있다.

- 베르쿠보 허가 및 급여 근거가 된 VICTORIA 연구 결과를 기존 약제들의 임상 연구 결과와 비교할 때 어떤 차이가 있나.

상대위험감소율(RRR)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SGLT-2 억제제의 상대 위험 감소는 약 20%, 엔트레스토도 약 20%가 나왔는데, 베르쿠보는 10% 정도의 상대위험감소를 보였다. 그러나 절대위험감소(ARR)는 4.2%로 거의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았다.

그 이유는 환자군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SGLT-2 억제제나 엔트레스토 연구는 굉장히 안정된, 외래를 다니고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반면 VICTORIA 연구는 심부전 악화를 경험했던 고위험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한 것이기 때문에 상대위험감소 효과는 떨어질 수 있지만 절대적인 환자 개선을 이룰 수 있는 정도는 높았다. VICTORIA 연구 결과 몇 명을 치료해야 한 명의 사건(event)을 감소시킬 수 있는지를 보는 NNT(Number needed to treat)가 높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 내약성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다. 베르쿠보의 안전성 프로파일은 어떻게 되는가?

VICTORIA 연구 기준으로 보면, 내약성 프로파일은 굉장히 좋은 편이다. 심부전 약물의 내약성 프로파일을 볼 때 주요하게 보는 것이 어지러움증이나 기립성 저혈압 같은 저혈압 관련 증상, 신장 기능 저하, 전해질 이상, 고칼륨혈증 등이다. 베르쿠보를 보면 안전성 프로파일이 주요 측면에서 위약군과 거의 다 유사하다. 지난해 9월 베르쿠보가 우리나라에서 급여 적용된 뒤 실제 임상 현장에서 쓰기 시작했는데, 입원한 환자에게 베르쿠보를 처방했을 때, 혈압이 생각보다 떨어지지 않았고 환자의 내약성이 좋았다.

- 베르쿠보 처방 시 주의해야 하는 점은 무엇인가.

체액량을 적절하게 잘 유지한 상태에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입원한 환자들은 체액 과다 상태인데, 이때 이뇨제를 써서 증상을 완화하고 난 뒤 그때부터 베르쿠보를 추가할 수 있다. 만약 체액을 너무 많이 제거한 상태에서 베르쿠보를 추가하게 되면 어지러움을 많이 느낄 수 있다. 또 베르쿠보의 기전이 일산화질소-가용성 구아닐산 고리화효소-고리형 구아노신 일인산(NO-sGC-cGMP) 경로인데, 이 때 주의해야 할 점 중 하나가 PDE-5 억제제를 병용해서 투여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두 약제를 같이 쓰면 혈압이 저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데나필’이 대표적이다.

- 임상 현장에서의 베르쿠보 처방 경험을 공유 부탁드린다.

국내 급여가 적용된 지 4~5개월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히 체감된다고 말하기에는 이르지만 악화를 경험한 심부전 환자에 베르쿠보를 쓰고 나니 쓰기 전보다 상태가 좋다는 얘기를 듣는다. 처방한 환자 중에 NT-proBNP 수치가 크게 떨어진 경우가 있었고, 베르쿠보 처방 후 퇴원했는데 증상이 거의 소실된 환자도 있다.

- 새로운 2차 치료 약제가 등장한 상황에서 고위험 심부전 환자를 치료할 때 악화를 방지하고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고위험 환자를 분명히 정의하고 빠르게 찾아내야 한다. 환자는 굉장히 다양하다. 1차 약물 치료에 반응이 굉장히 좋은 환자군이 있고, 적당히 효과를 보이면서 증상이 크게 나쁘지 않은 정도로 유지되는 환자군도 있다. 그런데 일부 환자는 상태가 계속 악화된다. 이러한 고위험 환자군을 잘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위험 환자군에 대한 정의를 내리자면, BNP, NT-proBNP 수치가 높은 정도에서 계속 떨어지지 않으며 증상이 심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무엇보다 고위험 환자군은 입퇴원을 반복하고, 응급실을 자주 방문한다. 그런 환자들은 예후가 안 좋다. 이런 고위험 환자는 빨리 개입해 치료해줘야 한다. 1차 약제를 제대로 써 보는 것이 우선이고, 1차 약제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악화되거나, 목표 용량까지 도달했는데도 악화된다면 2차 치료제를 빨리 써야 한다.

<코리아헬스로그 자매지 청년의사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